11수능쳤던 사람으로 말해봄. 우선 그당시 분위기는 수시부터 시작이었음. 대부분 학생들의 미친듯한 하향지원으로 수시기준으로 한양대 기공 합격할 성적이 부대 기공에 떨어짐. 그리고 수능이 개터졌지. 샤프는 종이 닿는순간 부서지지, 첫 시험 언어부터 그레고리 율리우스 나오면 극헬.. 오죽하면 당시 감독관들이 개인샤프 허용해줬음. 수학도 요즘처럼 1컷 92점 이딴 수준이 아님. 당시 수학은 진짜 헬이었고. 걍 전체적으로 불지옥이었음. 덕분에 정시 입시도 개판이었고ㅇㅇ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