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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 인재니까!!"

부대신문*2012.05.03 18:28조회 수 89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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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실업이 전례 없이 증가했다고 한다. 일자리 없이 쉬고 있는 20·30대가 1월에 이어 2월에는 사상 최대라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취업자 수 증가만 강조하면서 정부의 일자리 창출 사업이 드디어 효과를 내고 있다고 알리기에 바쁘다. 고용지표를 곰곰이 살펴보면, 50·60대 일자리는 크게 늘어난 반면, 20대 고용률은 제자리걸음이고 30대 고용률은 오히려 감소한 상태다. 2월 청년 실업률이 무려 8.3%, 이는 전체 실업률의 2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고용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무엇보다도 대학에 갓 들어온 새내기들의 꿈이 시들해질까봐 걱정이다.
  학교 곳곳에 나붙은 구직 광고만 해도 여럿 된다. 마치 지원하기만 하면 누구든 취업시켜줄 듯한 태세다. 우리학교 독수리탑 아래에 내 걸린 어느 대기업의 취업설명회 광고 플래카드의 문구다.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넌 내 인재니까!!” 유독 인재라는 어휘에만 방점이 찍혀 있다. 인재를 모집한다는 말은 알겠으나, ‘이렇게 하면’은 그 의미가 도무지 와 닿지 않는다. 이제껏 대기업들이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한답시고 생색만 냈을 뿐, 그들을 위해 진정으로 애쓰는 걸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하면’은 너희가 ‘인재가 된다면’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 광고 문구는 20여 년 전에 방영된 인기 연속극, 일명 ‘귀가시계’였던 <모래시계>의 대사를 흉내 낸 것이다. 최민수(태수 역)는 고현정(혜린 역)에게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넌 내 여자니까”라고 내뱉는다. 혜린더러 자신의 여인이 되어달라는 태수의 호소가 절절하다. 이 말이 다소 신파조로 들릴지 몰라도, 취업 광고 문구에는 작은 감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회사가 눈길을 주는 곳이라고는 이미 스펙을 쌓아놓은 인재뿐이다.
  스펙(spec)이란 명세 사항, 세목, 내역을 일컫는 specification의 줄임말이다. 특히, 특허출원 시에 제출하는 ‘발명 명세서’라는 법률용어이기도 하다. 영어로는 흔히 복수로 쓰여 건축이나 기계의 특성을 기술하는 설계 설명서나 시방서를 의미하기도 한다. 컴퓨터하면 ‘사양’을 떠올리는데, 그 ‘사양’이 바로 이 스펙을 두고 한 말이다. 기계나 건축에 쓰이는 용어가 인간의 능력을 재단하는 지표로 쓰이다니 참으로 씁쓸하다. 고급 스펙을 요구받는 이 시대,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자유로운 영혼이 아니라 한낱 기계 부품으로 전략할 처지에 빠져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는 어디론가 무리지어 휘몰려가는 양떼 장면에서 시작된다. 곧이어 등장하는 군중도 양떼와 마찬가지다. 이런 군중을 두고 데이비드 리즈먼은 <고독한 군중>에서 현대 고도산업화 사회의 타자지향형 인간들이라고 진단한다. 전통지향형이나 도덕이나 가치관을 중시하는 내부지향형과는 달리, 타자지향형은 집단 또래나 이웃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영향을 받아 행동하는 인간들이다. 그렇다 보니, 자신들의 개성이나 가치관이나 창의력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고, 줄곧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 무엇을 하는지만 세심하게 살핀다. 스펙 지향의 사회에서 무리 속에 끼어있다는 것만으로 존재감을 느끼는 이들 군중은 내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다.
  스펙에서 남들과의 ‘보잘 것 없는 차이’(marginal difference)에서 나를 찾기보다는 오히려 그들과는 생각이 다르고, 걸어가는 길이 다른 데서 나만의 ‘다름’을 찾는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더 건강해질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남들과 같아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남들과 더 달라질 것인가에 눈을 돌린다면 말이다.
  시인 김선우가 인도 남부의 생태공동체 마을 오르빌에서 그곳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기록한 책,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그들에게 “당신은 무슨 일을 하느냐, 무얼 해서 돈을 버느냐 물었을 때 모두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먹고산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자들이야말로 ‘하고 싶은 일’에서 삶의 경이를 느끼는, 스펙만으로 재단되지 않는 ‘참’ 인재가 아닐까 싶다.


원문출처 : http://weekly.pusan.ac.kr/news/articleView.html?idxno=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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