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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회 부대문학상 소설부문 당선작] 순정

부대신문*2011.12.08 14:03조회 수 233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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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잎 클로버   -소현-

 시월의 무료한 토요일. 휴학을 하고 주5일제 회사에 아르바이트 겸 다니고 있어서 오늘은 오랜만에 집에서 빈둥빈둥 거렸다. 창문 바로 아래 놓인 침대에 누워 하늘을 보니 푸르다고는 하지 못할 서울의 맑은 하늘이 보였다. 경민의 문자가 온 것은 4인용 네모난 식탁에 앉아 지혜의 수저에 구운 햄을 잘라 올리던 참이었다. 19살이나 차이가 나는 6살배기 내 동생 지혜는 나를 닮아 햄을 좋아했다. 지이잉. 식탁 유리위에 있던 핸드폰의 진동에 젓가락까지 흔들려 지혜가 밥 먹기를 멈추고 손가락을 들어 그것을 가리켰다. 오늘은 다음 주 중간고사 때문에 시험공부를 한다고 했었기에 문자가 올 거란 생각은 못했다. 지혜의 수저에 조그맣게 자른 구운 햄을 올린 후 핸드폰을 확인했다. 오늘 할 공부가 빨리 끝날 것 같다며 오후쯤에 만나자는 문자였다. 약속시간은 내가 정하라고 했다. 우리는 데이트 장소와 시간을 잡을 때 한번 씩 번갈아 가며 잡았는데, 이것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충실하자는 경민의 의도였고 나는 그냥저냥 그렇게 하자고 했었다. [4시20분 자기네학교 내가 좋아하는 장소!] 간단히 문자를 보내고 다시 사랑하는 지혜의 식사 도우미에 열중했다.
 경민을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다. 데이트 약속 장소인 역까지 가려면 늘 복잡하고 환승거리가 먼 종로3가를 지나야 하지만 아직 시간은 넉넉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 사업을 따라 서울로 이사 왔을 때 처음 본 종로3가 대합실내의 무빙워커는 밀양에만 살던 내 요동치는 호기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후 종로3가역을 지나야 할 일이 생기면 약속시간 보다 약간의 시간여유를 가지고 나와 무빙워커에 두 발을 올리곤 했다. 이것은 누구나 이방인 이라면 한 도시를 생각 할 때 어렴풋이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나에겐 그것이 무빙워커였던 것이다.
 압정이라도 박힌 듯 종종 쇳소리를 내는 오래된 구두를 끌며 계단을 내려가는데 계단 끝쯤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여기 좀 도와줘요!”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직은 햇살이 뜨거운 초가을이라 흰색 양산을 접어든 아주머니가 서있고, 그 앞엔 할머니 한분이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끝에 앉아 있었다. 옅은 광이 나는 대리석 바닥위에 점점이 떨어져 있는 피를 보니 무슨 영문인지 알 것 같았다. 계단에서 넘어졌나 보다. 아주머니는 119신고 중이어서 나는 가방 구석에 언젠가 넣었던 구겨진 손수건을 꺼내 피가 흐르는 할머니의 이마를 지그시 눌러주었다. 아무런 대화도 없었고 어떠한 감정이랄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고요히 손수건에 그려진 네잎클로버 모양의 꽃들은 붉은 어둠으로 채색되어 갔다. 이상한 점은 할머니가 나보다 더 차분해 보였다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핏물이 고여 흐르는 주름, 그 주름의 끝에 혈소판의 작용으로 얼마간 응고된 핏덩이처럼 생각을 하는 뇌의 뉴런들도 응고된 듯 보였다. 손수건을 이미 다 적시고 팔로 흘러 팔꿈치에 핏물이 맺혀 한 방울 툭 떨어지는 순간 나는 그 요란한 침묵 속에서 적지 않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내 기억은 이미 수년전 밀양 영남루의 진한 나무 향을 쫓고 있었다.

2.   밀양 영남루   -성윤-

 “앗, 따가.”
 오늘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영남루에 오랜만에 올라왔다가 소현이 그만 튀어나온 나무가시에 찔리고 말았다. 별일 아니겠지 싶었는데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보니 마음이 조급 해졌다.
 “괜찮니?” 다행히 교복에는 묻지 않았다.
 “네, 괜찮아요.” 하지만 소현의 눈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이렇게 팔을 심장위로 올리고 있으면 금방 괜찮아 질 거야.” 내가 한쪽 팔을 들어 눈높이 근처에 손가락이 보이게 하며 말했다. “이렇게요?” 라며 가느다란 왼팔을 들어 보인다. 무언가 깨지기 쉬운 보석을 들고 있는 양 가만히, 그리고 신중하게 상처 났던 검지를 바라본다. 10월이라 학교마크가 왼편에 달린 자줏빛 카디건을 입고 있는 소현은 정말이지 교복모델을 해도 될 만큼 교복이 잘 어울렸다. 우리가 걸터앉은 나무난간 저 아래로 붉은색 띠를 두른 무궁화호가 규칙적인 소음을 내며 지나간다.
 “숨은 쉬고 있는 거야?”
 간혹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소현의 머리카락이 아니라면 누군가 지구의 관리실로 들어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게 아닐까하고 착각을 일으킬만했다.
 “네, 쉬고 있어요.”
 소현이 눈동자만 돌려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하고 나서야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걸 보니 아무래도 영 믿음이 가지 않는다. 나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살살 닦아주었다. 피는 금방 멎었고 선명한 핏자국만 손수건에 남았다.
 “미안해요. 손수건은 빨아서 다음에 줄게요.”
 정말 큰 죄라도 지은 듯 미안해하며 슬며시 내 손에 있던 손수건을 자신의 가방 작은 주머니의 지퍼를 열고 넣었다. 굳이 세탁해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녀에게 다시 달라고 하기도 뭐해서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제 집에 갈까?”
 “나 때문에 오늘 늦었지요? 오늘은 꼭 여기 와보고 싶었어요.
 “응. 나도 오랜만에 올라와봐서 좋았어. 오늘은 날씨도 아주 좋아서 학교 수업시간 내내 창밖만 보고 있었는걸.”
 우리는 한동안 더 앉아 있다가 밀양강변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로 접어들었다. 아직까지 짙은 푸름이 녹아있는 잔디를 밟으면서 그녀가 물었다.
 “영남루가 뭐하는 곳이었는지 알아요?”
 어릴 때 들었던 것 같았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르겠는데, 뭐하는 곳이지?”
 소현은 나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생겨서 들뜬 것처럼 보였다.
 “조선시대에 손님을 맞이하여 잔치를 열던 곳이래요.”
 “소현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어?”
 산책로에 듬성듬성 서있는 가로등에 우리 둘의 그림자가 늘었다 줄었다 하고 있었다.
 “잊고 싶지 않아서요. 사실, 내일 서울로 이사 가거든요.”
 나는 깜짝 놀라 제자리에 멈춰 섰다. 서있는 내 그림자가 밀양강의 표면위에서 이리 저리로 일렁이는 것이 내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소현, 왜 미리 말하지 않았지?”
 “사실 미리 말해야지, 말을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말을 꺼내기 쉽지 않았어요. 나도 며칠 전에 알게 되어서 혼란스러워요.”
 소현이 하얀색 운동화를 신은 두 발을 모으고 내 앞에 와서 섰다. 지난달 내가 신발을 사러갔을 때 자기도 같은걸 신겠다고 따라 샀던 사이즈만 다른 운동화였다. 나는 그녀를 다그치려다 이내 체념하게 되었다. 미리 알았다고 한들 달라질건 없었을 테니까. 내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줄 것은 언젠가 그녀가 좋다고 했었던 은근한 미소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소현은 나트륨등의 노란 불빛이 반사되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 기억 속 스크린에 영사되는 그녀의 마지막 필름이었다.

3.   꿈   - 소현 -
 
‘띵띵띵, 띵띵띵.’
 오전 6시 25분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다홍빛 바탕에 흰색으로 프린팅 된 벽지가 햇빛을 반사시켜 방안에 은은한 붉은빛이 감돌았다. 또 같은 꿈이다. 아니, 같은 꿈은 아니지만 같은 꿈이다. 이 꿈을 꾼 지 벌써 7년은 넘은 것 같다. 내가 기억 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이 꿈에 대한 기억은 유치원을 다닐 때였다.
 “안녕.” 항상 꿈은 그렇게 시작했다.
 “안녕.” 나도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베이지색 벽의 둥그런 아니 타원에 가까운 방에 내 또래의 7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맑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남색의 바지와 노란색 긴팔의 유치원 복을 입고 앉아있었다.
 “이리와. 같이 놀자.”
 그 남자아이의 손에는 어느 유치원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색의 블록 조립형 장난감이 들려져 있었고 무엇이 만들어질지 궁금증을 자극하는 블록들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쌓기 놀이도 하고 하얀 털실로 실뜨기도 하였는데 그때 나의 시점으로 본 세계는 꿈에 깨어서도 묘하게 현장감이 있었다. 그 시절 7살의 나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잠이 덜 깬 눈으로 그 털실의 진동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그 시절부터 14살인 오늘까지 그 꿈을 이따금씩 꾸게 되었다. 내가 차츰 성장함에 따라 꿈속의 나도, 그 아이도 함께 커갔다. 그 아이는 나만의 비밀스런 친구여서 매일 같이 등교하는 가장 친한 친구 민원, 윤주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 은밀한 나만의 기쁨 이었고, 크리스마스 날 아침 머리맡 선물상자 같은 기분 좋은 기다림 이었다. 언제나 미소로 날 맞이하는 상냥한 첫마디 “안녕”은 꿈에 깨서도 들리는 듯 했고 내가 교실에 앉아있든 운동장 의자에 앉아 친구랑 수다를 떨든 아니면 혼자 강 위로 떠있는 아치형 다리를 따라 집으로 걸어 갈 때도 그 아이의 봄날의 햇살 같은 포근함이 나를 감싸왔다. 그런데 유난히 신기한 점은 겨울날 습기 가득 찬 버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것과 같은 일반적인 꿈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명확히 그 세계의 그와 나를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손 흔드는 그 아이의 표정에서 앞으로는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일어나보니 연분홍색 배게 한쪽귀퉁이가 다 젖어있었다.
 “소현아 왜 울고 있니? 학교에 무슨 일 있는 거니?” 나를 깨우러 들어오신 엄마가 붉게 충혈 된 내 눈을 보고 물었다.
 “아니요. 무슨 일 있을게 어딨어요. 그냥 갑자기 슬퍼졌어요.” 그 말을 하면서 속에서 무언가 응어리 같은 것이 큰 배가 방향을 틀 때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리와, 우리 딸. 엄마가 안아줄게”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나니 마음속 긴장이 풀린 듯 다시금 펑펑 눈물이 흘러나왔다.
 “괜찮아, 엄마도 어릴 때는 그런 적이 많았단다. 우리 소현이도 착한 엄마 닮아서 그런가봐. 우리 소현이 누구 딸이지?”
 “엄마 딸이요”
 “그럼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아침 먹고 씩씩하게 학교 가는 거다.”
 “응”
 나는 정말 그날 씩씩하게 걸으려고 쿵쿵 발걸음 소리를 크게 내며 학교엘 갔다. 친구 민원이와 윤주가 말렸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나는 강단 있는 여자니까!]
 그해 여름 첫 생리를 시작했다.

4.   비눗방울   -소현-

 할머니는 손수건과 함께 119구급 대원들과 떠나갔다. 숄더백에서 물티슈를 2장을 꺼내 피  얼룩을 닦아내고 5호선 열차로 들어섰다. 열차가 캄캄한 어둠속으로 들어가니 내 앞 유리에 내가 비추어 졌다. 규칙적인 열차소음과 미니후레쉬를 파는 상인의 떠드는 목소리가 들린다. 눈동자를 깜박 깜박여 본다. 눈 화장이 번지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다음은 종로 3가, 종로 3가 역입니다] 안내 멘트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 본적이 없는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고 열차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간다. 역내의 화장품 가게를 끼고 돌아 무빙 워커위에 두 발을 올려놓는다. 실제로는 바로 옆에서 걷는 사람들의 속도보다 느리지만 그 느린 속도가 오히려 바쁜 인파속에서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하지만 오늘은 가슴속 무언가 텅 빈 공허함 속에서 내가 바닥과 3mm정도 떠있는 느낌이었다. 컨베이어 벨트위의 상품처럼 가만히 도착을 기다리며 3년 전 성윤의 전화통화가 떠올랐다.
 그때는 학교 도서관에서 교양으로 듣는 ‘서양 음악사’ 레포트에 필요한 책을 빌려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성윤은 이달 말 군 입대를 한다고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날 육교 아래로 보이는 도로는 가로등과 자동차들로 화려하게 빛나는데, 빛나야 할 밤하늘은 캄캄하기만 했다. 서울의 별들은 모두 세상 속으로 떨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5월21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지만 나는 끝내 약속장소인 서울역에 나가지도 그의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무빙워커를 지나 1호선 열차로 갈아타고 경민과 약속장소인 회기역에 내렸다. 우리 학교 앞도 그렇지만 경민이 다니는 이곳도 대학가라고 하기엔 거리의 분위기가 늘 어수선해 보인다. 하지만 정문을 들어서면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는 건물들과 바라보기만 해도 빨리 가서 앉아보고 싶은 나무 벤치들은 유독 내 마음에 들었다. 경민을 처음 만난 것도 흰색 한의대 건물을 지나 후문근처 원룸에 사는 친구 민원을 만나러 갈 때였다. 민원은 내가 학교를 1년 늦게 입학해서 대학생활에 궁금증을 가질 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날도 민원을 기다린다고 나무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누군가 와서 말을 걸었다.
 “저기요.”
 “네?” 나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옆에 앉아도 될까요?”
 경민과는 그렇게 만나 친해져 갔다. 경민은 K대 약학부 3학년으로 나보다 1살 더 많았다. 약학과 학부사무실에서 행정업무를 돕는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약대에만 있는 [심마니]라는 약초 캐는 동아리의 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항상 규칙적인 생활을 하였고 무슨 일을 하든 추진력 있게 행하는 모습에 점점 이끌려 사귀게 되었다. 대학생들의 연애가 의례 그렇듯 우리는 1주일 만에 키스를 하고 한 달이 되지 않아 섹스를 했다. 나는 그의 단단한 뿌리 같은 분위기가 좋았다. 왜냐하면 그에게 너무 일찍 알에서 깨어난 것 같은 불완전한 내 마음을 비스듬히 라도 기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민이 자취하는 4층 건물의 3층 301호 원룸에서 처음 섹스를 할 때 어찌할지 망설였지만 두 눈을 꼭 감고 “처음이라 무서워”라며 떨리는 거짓말을 했다. 알몸으로 누워있는 내 허벅다리 안쪽으로 그의 단단해진 페니스가 느껴졌다. 의도하지 않게 섹스 후 약하게 피가 묻어 나왔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경민의 얼굴은 만족스러워 보였다. 이번 달 생리가 시작하려나 보다. 창문 밖으로는 어떠한 종류의 저항이라도 하는 듯 바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초여름 밤이었고, 나는 그렇게 완벽한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째깍 째깍] 왼팔에 찬 시계소리가 무질서한 상념에 질서를 찾아 주었다. 4시 25분, 약속시간에서 5분 지났다. 무슨 학과 건물인지 모르는 회색건물 모서리를 따라 경민이 나타났다.
 “조금 늦었지? 도서관 열람실에서 나오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서 얘기 좀 하느라고.”
 “아니, 괜찮아.”
 누군가를 기다린 다는 걸 지루해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웃는 얼굴로 말하는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바닥에 있는 바싹 마른 나뭇가지를 발로 차 나무둔치로 튕겨내고 내 옆으로와 앉았다.
 “어쨌든 일단 밥부터 먹으러 가자. 점심을 거르는 바람에 무지 배고프거든.”
 그가 일어선다. 바람에 흔들리는 밤나무 그림자가 그의 셔츠 위를 어지럽힌다. 우리는 학교 앞 식당 중 한곳으로 가 밥을 먹었다. 계산을 하고 버튼 누름식 자동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멀리서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에, 방향을 찾는 나침반의 자침처럼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그 위치를 찾아본다.
 나는 다시 왼쪽어깨로 숄더백을 바꿔 매고 경민의 손을 잡고 걸었다. 한걸음 두 걸음 그리고 세 걸음 째부터 그와 발을 맞추어 걸었다. 속으로만 ‘하나’ ‘둘’ 그리고 ‘셋’ 구령을 붙인다. 구두에서 또 쇳소리 같은 것이 난다. 어서 새 걸로 하나 사야 하는데 싼 구두를 사자니 발이 아플 것이고 마음에 드는 구두를 사자니 10만원을 훨씬 뛰어넘는 가격이어서 구두가 이지경이 되도록 새 구두를 못 사고 있다.
 우리는 후문으로 빠져나와 경민이 사는 원룸의 계단을 발맞추어 올라간다. 2층엔 누군가 크게 영화를 보는지 복도에 프랑스어 대사가 들린다. 위쪽에서 회색에 검은 줄이 그어져있는 추리닝을 입은 남학생이 우리를 지나쳐 내려간다. 손에는 만화책 여러 권이 들려져 있다. 301호 앞에 도착하여 비밀번호 0911을 차례대로 누르고 손잡이를 돌린다. 우리는 그의 방 한쪽벽면 군데군데 싯누렇게 변한 꽃무늬벽지와 같은 지리한 섹스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며 경민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뚜두두두 뚜두두두...]보행등에 불이 들어오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소리가 난다. 바닥의 하얀 페인트칠이 탈모가 시작되는 중년 남성의 머리숱처럼 군데군데 벗겨져있다. 경민과 나의 관계도 중고차속 고요히 닳아가는 타이밍 벨트마냥 희미해지고 있었다. 분명한 메타포가 없는 사랑 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비눗방울 같은 행복을 유지하고 싶었다. 즐거운 척, 행복한 척, 유쾌한 척이라도 해서 비눗방울을 터트리고 싶지 않았다.

5.   하나 둘 그리고 셋   -성윤-

 알람소리에 눈도 뜨지 않고 양손을 더듬어 머리맡에 있을 핸드폰을 찾는다. 시험기간이면 늘 그렇듯 도서관 자리를 잡기위해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난다. 충전을 위해 꽂아둔 핸드폰을 뽑듯이 침대에서 재빠르게 나왔다. 힘들 때 일수록 벌떡벌떡 일어나지 않으면 더욱 견디기 힘들어 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고요한 어둠속에서 두 발을 모으고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펴면 내 입에서 흘러나온 짧은 신음이 방안 구석구석을 다녀온다. 세면대에 물을 틀었다. 상아색 세면대에 쏴아하는 수압만큼이나 차가운 온도에 금방 정신이 맑아졌다.
 밖으로 나오니 대학가에 많이 분포한 편의점들만 이 거리의 주인인 듯 불을 환히 밝히고 있다. 거리에는 나처럼 도서관 자리쟁탈을 위해 새벽녘에 일어난 대학생들만이 한 블록 한 블록 모퉁이를 지날 때마다 하류로 흐르는 강물처럼 많아져갔다. 길에는 지난밤 쌓인 쓰레기가 가득하였고, 그것을 버리는데 일조한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쓰레기 속에 잠들어 있었다. 환경미화원이 억센 빗질을 할 때마다 잠들어 있던 소음이 조금씩 잠을 깨기도 했다. 앞서가던 여학생이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하고, 스팸문자인지 바로 종료버튼을 누르고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잠시 동안 핸드폰 액정 불빛이 벽에 붙어있는 콘서트 포스터를 밝힌다. ‘마지막으로 콘서트에 가본 적이 언제였던가?’ 생각해 보고 이내 한숨을 쉰다. 희미한 담배연기 같은 입김이 나왔다가 꿈같이 사라진다. 어린 시절 핸드폰이 막 유행하던 시기 S텔레콤에서 제공하는 야외콘서트에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우리는 2학기 중간고사를 끝내고 2주 뒤쯤인 여유로운 중3이었다. 무궁화 호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했다. 리모델링이 진행 중인 부산역은 어질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왼쪽 통로 저편에서 서울행 새마을호 탑승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만 따라와요.” 소현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광안리에 도착하니 어둠이 자리 잡아가고 있었고 가로등이 지나가는 사람들 머리 위에 노란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었다. 왼쪽 멀리서 공연의 음향을 테스트하는 소리가 이제는 차가워진 바람의 등에 실려 왔다. 소현이 추운 듯 아까보다 더 바싹 달라붙었다. 미약하게 그녀의 샴푸 냄새가 내 코언저리에 머물렀다 사라진다. 공연장은 이제 어두운 바다의 등대처럼 환히 빛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불빛을 보고 불나방인양 모여들고 있었다. 우리도 그쪽으로 발걸음을 땠다.
 “하나, 둘.” 내가 말했다.
 “셋.” 그녀가 말했다.
 왼발에 셋 이었다. 사귀기 시작한지 얼마 후부터 우리는 함께 걸을 때가 오면 ‘하나’ ‘둘’ 그리고 ‘셋’에서부터 왼발을 시작으로 발을 맞추었다. 여느 커플들처럼 커플당사자만 알아듣는 몇 가지 암호 중 하나였다. 처음엔 나 혼자서 [하나] [둘] [셋] 을 말하면서 했었는데, 소현이 자기가 꼭 [셋]을 하고 싶다고 했었다. 나는 셋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니까 잘 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소현은 처음엔 종종 셋에 왼발대신 오른발이 나오기도 하고 빠르게 발을 바꾸려다 발이 꼬이기도 했다. 아니면 약속한대로 왼발이 나오긴 하지만 발에 집중하느라 [셋]을 빼먹기도 했다.
 우리가 도착 했을 무렵 이제 막 공연이 시작하려 하는 것 같았다. 어떤 남자가 무대 위로 올라오니 소란스러웠던 공연장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 남자는 오늘 초대 가수 리스트를 읽어 주었다. 사람들은 한층 격양되었다. 그때 무대 뒤로 폭죽이 하늘의 지퍼를 열듯 은색 잔상을 남기며 공중으로 치솟는다. 모두가 하나 된 눈으로 고개를 들어 그것을 쫒는다. 그 다음 있을 시원한 폭발음과 하늘의 지퍼를 열고 쏟아질 은하수 같은 불꽃을 숨죽이고 기다린다.

6.   순정   - 소현 -

 [펑!] 한강 원효대교 위로 첫 번째 폭죽이 터졌다. 사람들의 첫 번째 함성도 터져 나왔다. 매년 서울시에서 개최하는 세계 불꽃 축제에 친구 민원이랑 또는 남자친구랑 계획을 잡아놓긴 했지만 실제로 5호선 여의나루에 내려 참가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잔잔한 수면을 건너오는 바람에 한강 특유의 냄새가 난다. 바로 앞 가족단위로 앉아있는 돗자리 모서리가 바람에 날려 위에 있던 물 컵이 쏟아진다. 쏟아진 물위로 2번째 폭죽이 치솟았다. [펑!] 이번엔 노란색으로 수를 놓았다. 내가 으스스해져 반쯤 걷었던 소매를 내리자 경민이 뒤에서 나를 안아준다. 이제 한 번에 여러 개의 폭죽이 공중으로 그리고 한강에 비친 물속으로 빠르게 헤엄쳐나간다. 은색의 물고기들이 너무 깊이 헤엄쳐나가 보이지 않을 때쯤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음이 들려왔다. 공중에선 화학적 페스티벌이 열리고, 물속에선 고요한 만다라가 그려졌다. [펑! 펑!]하는 폭발음이 들릴 때마다 내마음속 비눗방울 같은 장막이 하나씩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 주위의 소음들이 점점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하늘을 뒤덮은 폭죽들이 깨어진 색색깔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되어 비처럼 내린다. 바닥으로는 모든 색이 희끗하게 지워지더니 거리가 온통 퇴색된 흑백의 화면으로 바뀌었다. 회색의 거리위로 깨어진 색색깔의 유리조각들이 음소거를 누른 텔레비전 콘서트 화면처럼 요란하게 쏟아져 내린다. 나는 점점 나를 컨트롤하기 어려워졌다. 감정이 몹시 불안정해져 내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리도 저리도 할 수 없는 감각 속에 숨죽이고 있었다. [안녕] 성윤의 환청이 들려온다. 나는 모든 것을 닫고 내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똑 똑 !] 닫힌 마음의 수면위로 누군가 노크를 한다. 성윤이다. 그의 말투, 그의 표정, 그의 걸음걸이 하나 하나 모든 기억이 되살아나 노크를 한다. 더 이상 어둠속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을 수 가 없다. 눈이 어둠속에 익숙해지기를 매일 같이 기다렸던 날 모두가 추악한 진창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위태로운 상념의 기억들이 진창위로 다시 떠오른다. 그때 우리는 중학생이었고 부산으로 콘서트를 보러 갔었었다.  
 
 “오늘 공연 괜찮았어요?” 나는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 인디밴드 음악을 전혀 듣지 않는 성윤으로서는 아마 생소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여기에 와서야 하다니,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표정을 살폈다.
 “응, 즐거웠어. 손들고 점프도 하고 무대 앞에서 다른 사람들 머리 흔드는 것도 보고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재미있었어.”
 ‘정말일까?’ ‘그냥 날 위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나는 왠지 칭찬을 받는 유치원생 마냥 으쓱해지는 기분이었다. 항상 나는 성윤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애가 되고 만다. 공연이 끝난 바닷가는 이제는 바닥에 놓인 마이크처럼 쓸쓸하게 다가왔지만, 도로 쪽 수많은 상가들은 꿈 많은 조명을 흩뿌리고 있었고 무엇보다 꼭 안고 있는 성윤의 팔이 따뜻했다. 나는 갑자기 나도 놀랄 질문을 던졌다.
 “나 얼마만큼 사랑해요?” 사랑이란 말이 처음 나왔다. 예상외로 성윤은 별로 놀란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생각하는 것 같더니 성윤이 입을 열었다.
 “이 세상 전등이 모두 한순간에 터져버릴 만큼 사랑해.”
 나는 그동안 목구멍 저 속에서 꽃피지 못한 말을 했다.
 “나도 사랑해요.”

 “자기야, 왜그래? 어디 아파?”
 경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주위의 소음들이 라디오 볼륨을 높이듯 점점 또렷해졌다.
 “응. 사실 오늘 점심부터 몸 상태가 안 좋았어.” 나는 또 거짓말을 했다. 그와 만나고부터 거짓말이 늘었다. 대부분이 사소한 거짓말 이지만 그것들은 항상 내가 잠들어 있을 때 나를 갉아먹었다.
 “오늘 그냥 집에 가서 쉬어야 하겠어. 미안해 오늘이 불꽃축제 마지막 날인데.”
 “그러면 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 불꽃 축제야 내년에 오면 되는 건데.”
 그가 이제 내 손을 이끌고 다시 열차를 타러 발길을 돌렸다. 우리는 사람들과 반대방향으로 걸어 나간다. 등 뒤로 불꽃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도 동시에 밝혀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한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앞에 서서 말했다.
 “오늘은 나 혼자 갈게요.”
 그의 등 뒤로 이제는 불꽃 축제가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경민 앞에 서있어서 그늘진 그의 표정을 읽어낼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가 무어라 말을 했지만 한번에 너무 많은 폭죽이 터지는 소리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의 왼손을 슬며시 놓고 혼자서 걸어갔다. 다행인지 경민은 나를 붙잡으려 들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더 이상 무력하고 차갑게 경민 곁에, 또는 다른 남자 곁에 있을 순 없다. 계속 이렇게 살아갈 순 없는 일이다. 나는 앞으로 누구를 만나든 사랑을 낳는 구조에서부터 문제가 생길 것이다. 강물이 흐르듯 뻔히 보이는 결과를 항상 반복할 순 없다. 지금으로 충분한 것과 영원히 계속되어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 나는 버스 부저를 누르고 다음 정거장에 서둘러 내린다. 아까 보았던 빵집으로 가 지혜가 좋아할 만한 빵들을 잔뜩 샀다. 주위를 돌아 팬시점을 찾아 들어간다. 연노란색 편지지 하나와 핑크색에 몇 가지 무늬가 들어간 편지지를 산다. 팬시점을 나오니 추절추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나는 택시를 기다리기로 했다. 불빛에 제 몸을 채색한 별들이 땅으로 곤두박질  친다. 하늘의 별들이 모두 쏟아져 내리는 듯 했다.
 집에 오니 벌써 11시가 다되어 갔다. 동생 지혜는 거실 소파위에서 자고 있었다. 가방을 소파 옆에 내려놓고 천사같이 잠들어있는 동생 볼에 찐하게 뽀뽀를 한다. 엄마가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씻고 내방에서 책상 위 스탠드를 켰다. 물도 한 컵 떠왔다. 팬시점에서 사온 편지지를 꺼내놓았다. 검정색 모나미 볼펜을 딸깍 눌러들고 핑크색 편지지엔 [경민에게]라 쓰고, 노란색 편지지엔 [성윤에게]라 썼다. 어느 것부터 써야할지는 문제가 아니었지만 어떤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귓속에서, 하늘에 움직이는 별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핑크색 편지지를 가슴 앞으로 가져와 경민에게 헤어짐의 편지를 간단히 썼다. 마지막 콤마를 찍었다. 투명하게 가라앉은 시간이 검정 잉크의 점과 함께 아려왔다. 스탠드 아래를 제외하고는 세상은 막을 내린 무대처럼 고요한 어둠에 잠겨있었다. 나는 지금 좁고 긴 동굴 속에 들어와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이제 성윤에게 보낼 편지를 쓰려한다. 아무도 해독할 수 없는 언어로만 써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만약, 고2때 우리 집이 서울로 이사를 가지 앉았다면 지금은 달라져 있을까? 하지만 그‘만약’은 성윤과 안보고 지냈던 시간만큼이나 아득하였고, 아득한 세월이지만 매일 밤 눈을 감으면 그 격렬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앗, 따가.” 부주의 하게 손을 놀리다 그만 튀어나온 나무가시에 찔리고 말았다. 오늘 너무 생각이 많아져 오히려 해야 할 말은 하지 못하고 있다. 손가락에 피가 방울져 맺히더니 이내 영남루 나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성윤에게 전해야 할 말도 이렇게 찔려서라도 한 방울씩 새어나왔으면 좋겠다. 가까스로 서울로 이사간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성윤이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 둘의 그림자는 이제는 가로등에 의해 길게 늘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놀래 킬 마음은 없었는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몇 일간 망설이고만 있었다. 성윤이 화를 내도 어쩔 수 없다. 오히려 나 자신을 대신해 왜 이제야 말하냐고 혼나고 싶기도 했다. 너무나 혼란스러운 내 마음은 산책로 위로 지나가는 트럭에라도 부딪혀야 정신을 차릴 것 같았다. 성윤이 잡고 있던 내 오른손을 놓고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소현, 왜 미리 말하지 않았지?”
 “사실 미리 말해야지, 말을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말을 꺼내기 쉽지 않았어요. 나도 며칠 전에 알게 되어서 혼란스러워요.” 그리고 성윤 앞으로 가 올려다보며 마음속 수면위로만 글을 띄워 보냈다. [지난달부터 더 이상 생리를 안 해요.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던 거예요. 내가 지금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성윤은 날 바라보더니 미소 지었다. 너무나도 환하게 웃어 내 앞에선 그 사람의 눈동자가 한층 가깝게 느껴졌다. 두 번 다시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우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이기 싫어 그대로 꾹 참았다. 성윤의 눈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 따뜻한 빛이 잔상처럼 여리게 그어지고, 그 반짝이는 틈을 따라 스르르 하는 소리도 없이 날것 그대로의 그의 마음이 생생히 살아 들어온다. 나는 내 눈동자를 통하여, 가슴 깊은 곳에 있는 뜨거운 덩어리가 그에게 이야기 한다.
 ‘그대, 영원처럼 동화 속에 살아요.’

 수 백 번이나 다시 떠올려 보고, 꿈에서도 생생한 기억이다. 늘 그렇듯 혼자 있을 때면 멍하니 추억하게 되고, 그 후에 여러 가지 상상을 덧붙여 보기도 했다. 그러다 상상의 연결 고리가 순간적으로 끊어지면 나는 길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날아다니는 박쥐가 되어 가장 어두운 곳에 들어가 숨었다. 성윤에게 서울로 이사 올 때 이미 아이를 가지고 있었고,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학교를 중단하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내 딸아이 지혜를 부모님 호적으로 넣어 내 동생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혜가 나를 언니라 부르며 안길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고 편지를 썼다. 차가운 물 잔을 집어 든다. 파삭파삭한 마음에 컵 한잔의 물이 스민다. 입을 앙다물고 긴 숨을 내쉬었다. 코끝으로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책상위에 풀어놓은 손목시계의 두 바늘이 숫자 2에서 아슬하게 붙어있다. 초침만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방정맞게 움직이고 있다. 벌써 2시 10분이다. 밖으로 노란 달이 지긋이 떠 있는데도 바람은 종잡을 수 없이 내방 창문을 때려왔다. 그 소리에 내 마음속 얇은 고막이 낮은 진동으로 숨죽여 떨었다.

 12월 5일 일요일.
 겨울 아침의 햇빛이 벌어진 커튼 사이를 느릿하게 파고들었다. 기대하지 않는 척 하면서 기다린 성윤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전에 경민의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몇 개인가 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성윤의 편지를 들고 내 방 침대로 들어가 어미 새가 금이 간 알을 품듯이 껴안았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성윤도 어릴 적 같은 꿈을 꾸었고 항상 꿈속에서 소현을 기다렸다고 한다. 어릴 때도 그랬든 소현이 어떠한 상태더라도 자신은 소현을 기다리며 어렵겠지만 함께 어지러이 놓인 부조화의 퍼즐을 우리 둘이서 천천히 끼워 맞추어 보자고 했다. 끝까지 다 읽고 책상 서랍에 넣었다. 무엇보다 편지에서 놀란 점은 나만 꾸었다고 생각했던 꿈 이야기였다. 그의 말이 사실이면 우리는 정말 중1때 만나기 전부터 다른 세계에서 만나왔던 것이다. 어떠한 언어로도 설명이 되지 않겠지만, 인연의 끈이 있다면 성윤과 내가 정말 하나로 묶여있는 것이라 느껴졌다. 다시 이불 아래로 파고들었다. 어쩌다 술에 취해 이 침대에 누울 때면 성윤과 어릴 적 추억의 출렁임에 잠겨들어, 아가미로 호흡을 했다. 나는 추억 속으로 빠르게 헤엄쳐 나간다. 그 속에서 성윤에 대한 추억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 한 겹, 또 한 겹씩 나에게 둘러 세상 속에 단절되어 이번엔 누에고치가 되었다. 이제 나는 번데기가 되어 주름의 수만큼 많은 질문을 내 속으로 던졌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안갈 때 쯤 다시 시간의 조류에 휩쓸려 침대로 돌아왔다. 이젠 어항 밖으로 튀어나온 금붕어마냥 아가미를 크게 벌리며 펄떡 거리지 않았다. 분명 편지를 한건 잘한 것인지 모르지만, 그것은 나에게 유일한 구원이 이었다. 슬리퍼를 끌로 거실로 나오니 동생 지혜가 TV에서 하는 뽀로로에 푹 빠져있다. 부모님은 아침 일찍 북한산으로 등산을 가셨다. 시리얼에 우유를 붓고 지혜 옆에 와서 앉았다. 뽀로로에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내가 한 숟갈 떠서 입 앞으로 가져가니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쏙 빨아 먹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나누어 먹고, 마지막 남은 우유는 지혜가 마셨다.

 성윤에게 쓰는 편지

[ - 성윤에게 -

 나는 당신에게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설명해야 할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도저히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나조차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정말로 신이 있다면, 어쩌다가 내가 당신이 없는 이런 곳까지 혼자 와서 나만 홀로 남겨져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낯선 냄새와 소음, 그리고 모자이크된 풍경들의 빛깔 속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데, 내가 한걸음도 못 움직일 거라는 걸 당신도 알잖아요. 나는 이제 다시 해맑게 웃는 당신 눈 속에 들어있는 햇볕을 따라, 당신의 손길을 따라 하나 둘 ‘셋’ 구령을 붙이며 옆에 서있고 싶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내 말조차 변명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 소현을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성윤이잖아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던 그냥 있는 그대로 날 바라봐 주었잖아요. 그래요. 우리는 아니, 나는 너무 먼 길을 돌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군대 가기 전 성윤이 날 찾으러 서울역에서 날 기다리며 전화를 걸때, 나는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붙잡고 얼마나 숨죽여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날 밤 너무나 슬프게 울어 가구마저 도망쳐버릴 집을 나와 정처 없이 걸었습니다. 말 그대로 자발적인 추억이 생생하게 떠올라 집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리 저리 발길 닿는 곳으로 걸으며 눈물이 흐르면 닦아내고 또 울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날 밤 12시가 넘어 나는 서울역에 도착 했었습니다. 어떻게 걸어 온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때 불 꺼진 서울역 저 앞으로 아직까지 나를 기다리고 서있는 당신의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던 눈물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 나왔습니다. 오랫동안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입고 있는 셔츠의 주름 하나까지 내 마음을 조각칼로 파서 음각으로 조각해 넣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아프지만 나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분명 착한 내 당신은 내가 무슨 일이 있어서 늦나보다. 아니면 약속날짜에 오해가 있어서 모르고 있진 않나 생각했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한참동안 당신의 모습을 보다가 발을 돌려 집으로 걸어갑니다. 당신의 등 뒤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조심스레 꺼내봅니다. 말을 배우기 전 안으로만 되뇌던 옹알이 같은  말이 나왔습니다. [안녕] 만남의 인사이자 헤어짐의 말을 하고 나서 더 이상 목이 메어 말을 이을 수 없었습니다. 그날 내가 당신의 등 뒤에서 하고 싶던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아직도 나는 당신을 만나서 무엇을 어디서부터 맞추어 나가야 할지는 정확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난 그동안 잘못된 조각으로 퍼즐을 끼워나가려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관계도 꼽추의 등처럼 굽어져 끝내 바로 잡지 못했지요. 나 오늘밤 다시 사춘기 소녀가 되어 뱀 같은 허공의 길을 따라 성윤에게 갈 거예요. 우리가 어릴 적 꿈에서 쌓다만 블록 조각을 오늘밤 다시 만들어 봐요. 그때의 그 하얀 털실의 진동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어요.
ps. 어느 날 오후 5시 당신 학교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을 게요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이요. 항상 그 시간엔 내가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

12월 9일
 밖으로 나왔다. 기온은 영하권이지만 바람이 없어 견딜 만 했다. 휴학 후 꾸준히 다니던 종각에 있는 비자발급을 도와주는 회사도 이번 주부터 그만 두었다. 얼굴에 햇볕을 쬐는 지극히 단순한 행위가 이렇게 소중하게 생각될 줄은 몰랐다.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를 이틀 전 예매해 두었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는 무궁화호 열차가 나와 어울린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고 곧장 서울역으로 가려다가 지하철과 지하2층으로 바로 연결된 H백화점 압구정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목요일이라 백화점 내부는 한가했다. 1층 구두매장을 전부 둘러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비싼 구두를 산다. 굽이 닳아 쇳소리가 나는 구두를 버리고 나니 체했던 것이 내려가듯 시원해진다. 버스를 타고 가려고 밖으로 나오니 기상예보대로 거리에 싸락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자신감 있는 정확한 발걸음에 스티로폼 날리듯 눈발이 바닥에서 굴러다녔다. 나는 좀 더 어깨를 펴고 턱을 잡아당기고 눈을 크게 뜨고 태엽이 잘 감긴 메트로놈처럼 정확하게 걸어 나갔다.
 [나는 강단 있는 여자니까.]

7. 만남

1999년 9월 어느 날, 밀양 M 패스트푸드점

 파란색 포스터 칼라 물감을 쏟아놓은 듯한 하늘과 가붓가붓 떠있는 구름. 긴팔을 입자면 덥고 반팔을 입으면 조금 쌀쌀한 날씨. 지나가는 어른들에게 밀양에서 가장 소란스러울 것 같은 곳을 꼽으라면 수일마다 큰 장이 열리는 시장을 말하겠지만, 교복을 입은 학생들에게 물어본다면 다른 대답을 얻을 수 있다. 그곳은 어른들이 말한 시장에서 우측 골목길로 내려오면 B시계점과 S레코드가게가 일렬로 늘어선 맞은편에 있는 M 패스트푸드점이다. 이곳 밀양에서 단일 매장으로는 가장 큰 곳으로 밀양 어느 곳에서 택시를 타더라도 M 패스트푸드를 말하면 운전기사는 집으로 가는 방향처럼 자연스레 운전한다. 그 패스트푸드점 앞의 삼거리는 밀양에서는 좀처럼 보기 쉽지 않은 교통체증도 간혹 보이곤 한다.
 가장 소란스러운 토요일 점심이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무리를 이루어 들어가고 나간다. 패스트푸드점 바로 아래에 있는 인디언 노래방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여러 노래가 섞여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쏟아져 흐르고 있다. 노래방의 상호처럼 인디언의 노래라면 이런 식으로 들릴 것 같기도 하다. 기분 좋은 따스한 햇볕이 이렇게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조용히 녹여 내렸고, M 패스트푸드의 통유리를 투과하여 한쪽 벽면에 붙어있는 거울에서 부셔져 실내 곳곳으로 흩어진다. 거울 옆엔 간단한 세면대가 붙어있었는데, 항상 그 거울 앞쪽은 소위 잘 나가는 아이들의 차지다. 집에서 가져온 엄마 화장품인지, 자기 것인지 모를 몇몇 잡동사니를 늘어놓고 한참 동안이나 거울 속 비친 자신과 눈싸움을 한다.
 가장 시끌벅적한 곳은 4인용 테이블에 5명이 끼어 앉아 연예인 이야기에 정신이 없는 여고생들이었고, 이와 반대로 바로 오른쪽으론 둘이서만 들릴 듯이 이야기 하는 여중생이 이제 막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었다. 갓 만들어진 따뜻한 햄버거를 먹는 민원이 함께 온 소현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한다. 아까보다 더 작은 소리로 혹시나 말이 새어 나갈까봐 오른손을 오무려 입에 대고 말한다.
 “소현아, 아까부터 창가 쪽 남자애가 너만 보고 있어.”
 “에이, 이제 안속아! 거짓말도 햄버거 다 먹고 해. 배고프단 말이야.”
 사춘기 소녀들이라 평소에도 자주 이런 식의 농담이 오갔는지 소현은 간단히 대답을 한 후 이제 햄버거를 한입 더 베어 물고 있다.
 “이번엔 정말이야. 아직도 보고 있다 말이야!” 소현은 궁금해졌지만 고개는 돌리지 않고 왼편을 슬쩍 쳐다본다. 유리창에서 산란되는 햇볕에 눈이 부셔 잘 보이지 않지만 정말 보고 있는 남자애가 있긴 있다.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을 하고 있는 교복을 입은 남자애가 있다. 소현은 은근슬쩍 보려 했지만, 마음속에서 별이 반짝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성윤은 자기의 시선이 들킨 것 같아서 당황하고 있었다. 눈길을 피할까 하다가 결국 베시시 웃어버렸다. ‘이런, 바보처럼 웃고 말았어. 이제 어떡하지? 가서 말을 걸고 싶은데.’ 그때 같이 온 친구들이 성윤의 모습에 뭐라뭐라 시덥잖은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주위의 소음에 묻혀버렸다.

 “소현아, 내말 맞지? 너 보면서 바보처럼 웃고 있잖아. 아는 사람이야?”
 “어디서 본 것 같기는 한데,,,” 소현은 어디서 만났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밀양으로 이사 오기 전에 본 사람인가?’ ‘그냥 지나치다 몇 번 본 사람인가?’ 소현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성윤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찌할까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성윤을 바라본다.
 “성윤아, 이제 저 애가 널 보고 있는데. 누구야?”
 옆에 있던 친구가 성윤에게 물어왔다. 성윤은 아주 잠시 생각하더니 탄산음료를 한번 쭉 빨아먹고 입을 열었다.
 “아는 사람인것 같은데, 이름은 모르겠어.”
 친구들이 성윤의 그 말에 더 당황해 한다. 하지만 당장은 가운데 한꺼번에 부어놓은 감자튀김을 서로 더 많이 주워 먹는 것이 더 급했다. 성윤은 티슈로 입가를 닦아내고 고개를 돌려 소현을 바라보았다. 은근슬쩍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면서 불꽃이 일어난다. 둘은 동시에 생각한다.

 [내 꿈에 나왔던 바로 그 아이다.]

 둘은 몇 초간 서로에게 눈을 때지 못한다. 나침반의 자침이 북극을 가리키듯, 해바라기가 태양을 바라보듯 서로에게 눈을 때지 못한다. 그때 성윤이 일어서서 낯설음의 미농지를 뚫고 소현이 있는 테이블로 걸어가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 한다.
 “안녕”
 소현은 코끝이 찡해져 오는 걸 느꼈다. 그 순간 그 둘 사이의 공기는 먼지하나 없이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언어가 눈앞에서 살아 신선하게 움틀 거렸다. 과장이 아니고 그 정도로 경이로운 만남이었다. 온 실내가 온실처럼 빛으로 가득했다. 달큰한 푸른색 하늘이 끝없이 내다보여 눈부셨다. 소현은 낭낭하게 말하는 성윤의 눈 속에 빛나는 햇볕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원문출처 : http://weekly.pusan.ac.kr/news/articleView.html?idxno=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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