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신문

‘다 큰 놈’/ ‘더 클 놈’

부대신문*2012.09.05 18:25조회 수 203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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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어느 방송국 개그프로그램의 <네 가지>라는 코너를 봤다. 남자 4명이 등장하여 각자 자신의 결점을 당당하게 밝히는 식으로 진행됐는데, 그 중 ‘다 큰 놈이’라는 말로써 키가 작은 것을 열등함으로 여기는 사회를 신랄하게 꼬집는 말장난이 흥미로웠다. 평상시에는 ‘다 큰 놈이’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로부터 키가 작다는 면박을 받았다는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말이 ‘능력이나 됨됨이가 두드러지게 뛰어난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쯤이야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다 큰 놈이 그것도 모르냐?’에서 보듯이, ‘다 큰 놈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듣는 이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부정적인 내용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엄밀히 보면, 이 말에는 아이가 실제로 다 컸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더 크게’ 만들려는 어른들의 지나친 욕망이 들어 있다.
  수치는 사전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는 창피하고 부끄러움에서 유발되는 고통스런 감정을 일컫는 말이다. 아이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면, 대개의 경우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부끄러운 줄 알아라!”(“Shame on you!”)고 말한다. 이렇듯, 수치심을 자극하는 것은 아이로 하여금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그보다 나은 것을 하도록 닦달하는 얄팍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이 ‘더 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기보다는 ‘다 큰 놈이’ 하면서 그들의 꿈을 가로막는 곳이지 않을까 싶다. 난을 키우다 보면, 성급하게 꽃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가끔 있다. 물을 더 자주 주면, 꽃이 빨리 피게 될 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렇다고 물을 자주 주면 난은 죽어버리기 십상이다. 주위에 난을 잘 키우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난의 성질을 잘 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난초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를 뿐더러,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꽃이 피기를 닦달할 뿐이다.
  난을 대하듯, 젊은이들을 대하면 어떨까. 우리사회가 그들에게 해주는 것이라고는 키를 재듯이 온갖 잣대를 들이대며 그들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뿐이지 않은가. 그것도 모자라서 평가대상끼리 비교하며 각자에게 심한 수치심을 안겨준다. 요즘 들어 가정이든 학교든 사회든 이러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곳이 또 있는가. ‘다 큰 놈이’를 필두로 ‘바보같이,’ ‘누구누구는 뭘 했다던데’와 같은 말을 남발하면서 그들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젊은이들은 ‘다 큰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클 가능성이 다분히 있는 ‘젊은’이들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그들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보,’ ‘발전,’ ‘선진화’라는 어휘만 남발하며 그들을 무한 경쟁의 대열에 세우기 바쁘다. 이러다 보면, 청년실업이 모두 개개인의 문제로 환원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사실은, 청년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겠다며 거창한 공약을 남발한 사회의 책임이 더 큰 데도 말이다.
  돌이켜보면, 현재 대학생들은 더 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지 ‘다 큰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의 대학시절에는 모든 걸 잘 했다는 커다란 착각에 빠져있다. 그들이 지금 젊은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다 큰 놈이’라는 말을 앞세워 수치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뿐이다. 그들도 젊었을 때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처럼 고민이 많았고 모든 게 서툴렀다. 그런데도 그들은 모든 문제를 쉽게 해결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기성세대들이 대학생이던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특히 청년실업 문제가 그렇다. 그런데도, 그들은 올챙이 시절은 깡그리 잊어버린 망각의 개구리들 같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아픔을 알 리 없다. 아니, 그 아픔을 모른 척하는지도 모른다. 이게 현재 우리 사회의 풍속도다. <네 가지>의 코미디언이 자신을 ‘다 큰 놈이’라고 해서 더 클 수 없었다고 절규하는 데서 보듯이,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더 클 놈이’라고 말하며 더 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줘야 한다. 수치심을 자극하며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닦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따스한 보살핌으로 다가가는 공감의 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원문출처 : http://weekly.pusan.ac.kr/news/articleView.html?idxno=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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