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1학번이고 올해 2월 졸업을 앞둔 졸업예정자입니다. 최근에 책이 손에 잘 잡히지가 않아서 사람들이랑 이야기 나누면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동기부여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독서모임을 찾고 있었는데, 마이파티 게시판에 1월 7일에 올라온 독서모임 모집글 보고 괜찮겠다 싶어서 연락했습니다. 지금은 모집완료네요. http://mypnu.net/index.php?mid=party&page=2&document_srl=16280398 낚시글 링크입니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오늘 동래 이X야 커피에서 간단한 OT를 겸해서 모집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걍 키 크고 인상 좋아보이는 까무잡잡한 20대 후반 남성이 나왔습니다. 파마를 하고 가르마를 타서 앞머리를 뒤로 넘긴 흑발이었고, 뿔테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청색 세로 줄무늬 셔츠에 앞지퍼 열린 진회색 정장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슬쩍 말해주려고 했는데 끝까지 열고 있어서.. 원치 않게 사이비 광신자의 팬티를 시야에 둔 채로 대화를 했네요. 자신은 생물 전공이었지만 건축 기획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라고 하더라구요. 처음 30분 정도는 진짜 독서모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슨 책을 읽게 되는지 등등 독서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전에는 그닥 이상한 징후도 없고 걍 잡담 잠깐 했을 뿐인데 40분쯤 지나니까 갑자기 수련, 수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내 앞에 앉은 사람이 개인적으로 어떤 여가를 즐기든 딱히 신경쓰고 싶진 않았기에 걍 간단간단하게 궁금한점 질문하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근데 제가 호기심을 좀 보이니까 '대순진리회'라는 곳에서 수련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즈음부터 핸드폰을 보거나 잠시 전화를 한다고 자리를 뜨기 시작했네요. 자기 윗사람 부르는 거였겠죠. 대순진리회가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걍 독서모임 모집하는 사람인데 전도를 하려고 하겠냐 싶어서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며 슬슬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슬슬 화제가 떨어져서 제가 일어나려는 기색을 보이려고 하니까 평소에 뵙기 힘든 자기의 영적 스승님(이하 대순)이 마침! 근처에! 우연히! 계신다고 하시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때부터 아 전도하려고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일단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녹음을 해 두자 싶어 핸드폰의 녹음 기능을 켰습니다. 잠깐 기다리니 한 40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등산복 아저씨가 와서 턱 앉으면서 무슨 이야기 나누고 있었는지 등등을 묻길래 짜증나는 기색은 숨기고, '한 10분 뒤에 일어나야 해서 아쉽다. 짧게라도 재밌는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다'라고 하니 슬 시동을 걸더라구요.
이하는 편의상 대화체로로 전개하겠습니다.
대순 "혹시 양자역학에 대해서 아느냐"
나 "잘 모른다."
대순 "양자역학이란 미립자 단위를 다루는 학문인데, 이게 무의식이랑 연관이 다 있다."
나 "(???)말씀 중에 죄송한데 양자역학이 역학인데 어떻게 심리나 의식이랑 관련이 있느냐. 혹시 무의식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시냐"
대순 "모든 학문은 하나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뉴턴 역학과는 달리 양자역학은 인간의 무의식을 다룬다. 이건 세상 학자들의 이야기를 빌려 하는 이야기이다."
나 "제가 알기로는 양자역학은 원자, 분자, 전자 등의 미시세계를 다룬다. '무의식'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연결점이 있냐"
대순 "그걸 지금 설명하려면 10분으로는 어렵고 한 3시간정도 필요하다."
나 "그럼 짧게 핵심만 간추려서 이야기 해 주시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대순 "말씀하셨다시피 곧 일어나신다고 하셔서 이렇게 결론만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나 "그럼 그 결론이 도출되는 과정이 있을 것 아니냐. 기본 가정이라든가 중간 과정 없이 결론만 이야기하니 혼란스럽다."
대순 "그럼 설명할 수 없다."
나 "당신은 양자역학에 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대순 "앞에 앉은 분께서는 의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신다."
나 "그럼 양자역학 공부하는 사람들이 다 틀에 갇혀 있는 것이냐. 양자역학이 무의식이나 인간심리에 관련된 학문이라면 왜 양자심리학이 아니라 양자역학이라고 하느냐."
대순 "이런 말 하기 죄송하지만 듣는 사람이 자세가 되어있지 않아서 대화하기가 어렵다."
나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화법 공부를 많이 했다. 어떤 점이 문제였느냐"
대순 "내가 앞에 앉은 분보다 인생이나 수련이나 더 앞서는데 그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 "내 자세는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충분히 개방적이고 문제가 없다. 그러니까 왜 양자역학이 심리학이랑 관련됐는지 설명을 부탁드린다."
대순 "지금 당신의 상태를 우리 수도자들은 '장애'라고 부른다."
나 "장애라고 치고, 저보다 인생을 더 사신 분께서 왜 양자역학을 심리학이라고 우기는지 모르겠다. 좀 있어보이는 말로 아무데나 갖다붙이면서 폭력적으로 믿음을 강요하는 사람들을 대체로 '사이비'라고 한다."
대순 "내가 이 자리에 온 게 별로 유익하지 못한 것 같다. 대화가 어렵다."
나 "양자역학이 뭔지 모르면서 아무데나 갖다붙이면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랑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다."
대순 "저는 제 제자랑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일어나시면 되겠다. 가시는 길에 한 말씀만 더 드리면 되겠냐."
나 "'다음에' 하시면 되겠다. 무식을 믿음으로 가장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는 더 못 듣겠고, 사이비라는 소리 기분 나쁘시면 다음에라도 제발 양자역학이 뭔지 알고 오면 좋겠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나왔습니다. 녹음한 파일이라 글로 옮기려니 뉘앙스나 느낌이 잘 전달되려나 모르겠네요 ㅎㅎㅎ 여튼 모든 독서모임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독서모임이나 스터디를 가장하여 순진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하려 한다니 효원인 여러분들도 조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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