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같으면서도 다른 의견입니다.
총학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좌우합작이라는 드립이 나올 정도로 전국민적인 공분이 있었기에 이에 대해 별도의 의견수렴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전국민적 합의가 있으니 의견수렴과정을 생략해도 될까?, 라고 묻는다면 또 다른 의문이 남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학생들의 과반수의 합의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만 정치적 의견을 밝힐 수 있다’라는 말에 대해선 저는 쉽게 동의하지 못하겠는 입장입니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의결과정은 우리 부산대 2만 학생들에게 전부 의견을 묻고, 다음으로 대의원총회? 중운위인가요? 그곳에서 의결을 거친 뒤, 마지막으로 결정을 하는 것이겠지요. 민주주의의 핵심은 절차에 있으며, 절차를 간과하는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독재와 다를바가 없다고 하며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느린거라고 합니다. 저는 이에 대해 동의하지만, 이 이상적인 바가 과연 대의제에서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 남습니다. 고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 일이 2만 학우가 있는 부산대에서 실현 가능한가? 나아가, 그렇다면 시국선언의 시의성과 실효성은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까요?. 학생 전체에게 다 의견을 묻고, 중운위 의결을 거쳐서 다음달 쯤에 시국선언을 하면 그 시국선언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는 총학이 학생들의 대표이지, 대리가 아니라는 점에 중점을 둡니다. 조직의 리더가 다수결인 의견에 따라서만 행동한다면 그는 훌륭한 대리자일진 모르겠지만, 대표자라고 볼 수는 없겠죠. 대표자는 그렇게 표류하는 수많은 의견들 사이에서 그 나름의 정치적인 선택을 하는 기구이고, 문제가 되는 시점은 그 선택이 구성원들의 이해관계와 지속적으로 일치하지 못하며 이해관계의 일치를 위한 소통의 노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을 때라고 봅니다. 과연 총학이 우리의 의견을 제대로 대변해주지 못하는 점은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정치시스템인 대의제의 맹점이고, 총학을 비판한다면, 이 맹점에 대해 비판하는 동시에 이를 어떻게 보완할지에 대한 고민이 같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고민이 동반된 비판이라면 모르겠지만, '왜 우리의 의견을 제대로 대리하기 위한 의견수렴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느냐'는 비판만 있다면 좀 무책임하지 않나싶습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