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수도 캄팔라에 카다피의 이름을 딴 모스크를 관리하는 살림 압둘은 "우리는 카다피의 죽음을 슬퍼하는 '1%'의 사람들"이라며 "카다피는 우간다를 사랑했다"고 말했다. 카다피는 이곳 모스크 종사자 20명에게 향후 20년간 임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으나, 그의 죽음으로 모두 허사가 됐다는 것이다.
카다피는 아프리카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의 혁명을 이어받아 리비아에서 외세를 몰아내고 원유산업을 국유화한 그는 범아랍주의를 주창해왔으나, 세기가 바뀌면서 아랍국가들의 배척을 받자 아프리카로 관심을 돌렸다. 그는 자비와 국영기업을 통해서 아프리카에 모스크와 호텔, 통신회사를 설립하면서 아프리카를 현대화하는 데 일익했다. 더불어 '왕 중의 왕'으로 자칭한 카다피는 아프리카에서 최소 십수건의 쿠데타를 배후 조정한 혐의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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