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가 있다. 수퍼맨 시리즈.
개인적으로는 참 지명도에 비해 무척이나 허접한 영화 시리즈라고 기억을 하는데, 어려서 보다가 한가지 기억에 박힌 장면이 있다.
"수퍼맨 3"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리버리한 프로그래머가 악당의 한 축으로 등장하는 그런 내용이었던 거다.
36주나 실직 상태로 있으면서 맨날 실업수당이나 받아먹던 이 거스라는 친구는 어느 날 보통때와 마찬가지로 실업수당 받으러 갔다가 담당 공무원에게 구박을 받고 돌아서던 중, 프로그래머 교육생을 모집하는 광고를 보게 된다.
거기에 가서 교육을 받던 거스는 자신이 프로그램에 엄청난 소질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제가 했네요~ >
그리고 대규모 컴퓨터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는데,
예상보다 너무나 적은 주급에 실망하게 된다. 그나마 쥐꼬리만한 주급에 무슨 세금을 이렇게 많이 떼냐고 불평을 하다가..
동료에게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듣는다. 사실 당신이 받는 주급에서 1.5센트가 더 있다는 거다. 그런데 그 자투리가 계산 과정에서 사라지고, 그 돈은 어딘가에 떠돌아 다닌 다는 얘기.
그 말에 착안을 한 거스는 남들이 모두 퇴근한 뒤에 시스템을 해킹한다. 물론 해킹은 그저 "OVERIDE ALL" 이라고 치면 된다. 엄청난 보안시스템에 엄청난 해커다.
그리고 나서는 그 1.5센트의 자투리들을 모두 모아 자신에게 지급하도록 시스템에 명령을 내린다.
모든 작업을 마친 다음주, 거스는 무려 85,789 달러의 수표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행복하겠다. 거스..
이 장면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해킹을 잘 하면 떼돈을 벌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심어줬었고, 그 덕분에 컴퓨터에 취미를 붙이고 열심히 한 결과 그걸로 사업을 하면서 떼돈은 아니더라도 꽤 많은 성과를 올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저런 생각은 당신들만 하는게 아니다.
시스템 관리자들, 특히 돈이 오가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할 만한 거의 모든 구멍을 다 생각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들이 완벽하지는 않다. 헛발질도 잘한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실제 가동하는 시스템만 잘 만들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것과는 완전히 별도로 실행된 결과를 거꾸로 분석하는 시스템까지 만든다.
즉, 비정상적인 돈의 흐름 같은 것을 지속적으로 체크하면서 이상한 계좌들을 감시하는 루틴들이 수도없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수퍼맨3에 나왔던 그런 허접한 사기는 단언하건데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은행들에는 "휴면계좌"라는 것들도 있다. 통장 거래 하다가 몇백원 자투리 돈 남아 있는 통장을 귀찮아서 해지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경험은 많을 것이다. 이렇게 모인 잔돈들이 몇천억이 넘는다.
은행들은 이런 휴면계좌로 골치를 앓기 마련이다. 이걸 어떻게 좀 치워 버렸으면 좋겠는데, 소유자는 신경도 안 쓰고.. 심지어 천만원 이상이 들어 있는 휴면계좌도 몇백 계좌가 남아 있기도 한다고 한다. 참 돈도 많은 사람들이다.
이런 계좌들 마저도 철저하게 관리된다. 외부에서의 해킹으로 이런 돈을 빼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니 역산을 해 보시라. 저렇게 소유자와 은행 모두가 모르게 돈을 빼돌리는 사건이 수시로 발생한다면, 그 은행이 영업이 가능하겠냐는 말이다.
물론 은행 내부자들이 고객의 계좌에서 돈을 횡령해서 튀는 사건이 가끔 터진다. 이런 경우 은행들이 그 소식을 쉬쉬하면서 덮으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케이스는 온라인 사기나 해킹의 문제가 아니다. 은행 직원들이 고객들을 속여, 당신의 돈을 뻥퀴기 해 줄 테니 나한테 맡겨라~ 하는 식으로 비밀번호고 뭐고 해당 직원에게 다 맡겨 놓은 상태에서 발생하는 일 들이다.
이런 것은 해킹이 아니라 그냥 사람 사이의 사기사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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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으로 트윗질을 하다가 놀라운 기사를 발견했다.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009/11021009.html?ctg=1000&cloc=joongang%7Chome%7Cnewslist1
무려 중앙일보의 기사다.
[단독] "北 해커, 남한 계좌서 1000억 빼갔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3.03.24 03:56 / 수정 2013.03.24 07:54
SMS 안 쓰는 45세 이상 계좌만 골라…북한 해킹, 이젠 개인 맞춤형 공격으로 진화
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내용인 즉슨, 입출금시 SMS 문자 통보 설정을 안 해놓은 45세 이상 노땅들의 계좌에서 180원씩 돈을 빼내면 이 중년의 꼰대들은 지 돈 나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은행 수수료려니~ 하고 생각을 한다는 거다.
그걸 노리고 북한의 해커가 우리나라 은행 전산망에 침투해서 80원에서 180원씩을 빼돌려 무려 천억원이 넘는 돈을 인출해갔다는 호방하기 그지없는 수퍼 해커에 관한 스토리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아니 상식도 필요없다. 산수적으로 생각해 보자.
180원? 아니 계산에 편하게 200원씩 빼갔다고 치자. 그렇게 잔돈 모아서 천억을 만들려면 도대체 몇번을 빼야 될까?
200원씩 "500,000,000회, 5억 회"의 인출이 벌어져야 한다.
SMS 통보 지정된 계좌는 안 건드린다며. 45세 이상의 계좌만 건드린다며. 그러니 다 퉁쳐서 약 천만개의 계좌에서 잔돈을 뺀다고 쳐 보자.
천만개에서 한 계좌당 50번씩 인출을 해야 된다.
SMS 통보지정도 할 줄 모르는, 그리고 통장에 50번씩 180원이 인출되었다는 내용이 찍혀도 아, 이게 그냥 은행 수수료구나~ 하고 넘어가는 45세 이상의 인간들이 천만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45세 이상 경제활동 인구가 몇명이었지?
이렇게 졸지에 천만명을 바보 븅딱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기사의 호방함.
거기에 그 얘기를 기자에게 해 준 사람도 재미있다.
무려 "최근 북·중 접경지역을 방문한 탈북자 신호철(가명·46)씨가 정찰총국 소속 박모 중좌(가명)를 통해 들은 얘기다." 라고 한다.
그러니까 탈북자가 한 얘기도 아니고, 탈북자가 북중 접경지역을 방문해서 북한 정찰총국의 모씨에게 "들었다"고 주장하는 얘기이다.
호방하다.. 이 정도면 호연지기의 수준이 아니다. 이 정도면 수퍼 기자다. 수퍼 기자가 수퍼 구라를 치는 거다.
난 이 기사가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국내 모든 금융사들이 중앙일보를 상대로 "우리 시스템을 무슨 구멍가게 주판 수준으로 생각하는 거냐"고 화를 내면서 소송을 걸어서 진위를 확인해 봤으면 좋겠다.
뭐 조중동을 포함한 주류 언론들의 구라 기사가 한 두번 나오는 게 아니지만, 이것은 정말 해도해도 너무했다.
니들 짱 먹어라.
<이 정도면 사실 인간어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
뱀발 : 일베 게시판에 이 기사가 떴다. 팩트 중심주의를 얘기한다는 일베에서 이 기사에 대한 댓글 반응은.. 예상대로.. "큰일이다. 우리 사회의 좌좀들은 이 기사를 놓고도 구라라고 까겠지? " 뭐 이런 수준이다.
그래.. 내가 좌좀이라 이 기사를 깐다.
니들은 좌좀 아니니까 이 기사 믿고 지금 당장 은행 계좌에 들어있는 돈 몽땅 인출해서 사과박스에 넣어 장롱속에 보관해라.
북한 해커들이 훔쳐갈까봐 무서워서 은행에 어떻게 맡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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