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글 광주 민주화 운동에 북괴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증거에 대한 군사적 의견.
carber
- 2013.06.02. 15:02
- 610
1. 민주화 운동과정 정부군과 교전당시 전투에 참여한 인원이 침투할 규모의 침투수단이 부족하다.
2. 당시 현용 북괴군 화기들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며 7.62X39mm 탄 또한 발견되지 않았다.
3. 광주는 전술적인 요충지가 아니며, 그정도 대규모 인원을 광주보다는 서울로 침투시키는 편이 더 빠르고 쉽다.
광주 민주화 운동간 총상을 입은 장병들과 시민들은 대부분이 5.56X45mm 탄과 .30cal 탄환에 부상을 입었으며, 어느 누구도 7.62X39mm 탄에 의해 총상을 입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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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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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나.다
외계인 유무의 진실을 조사하기에 적합한 인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멀더의 후손들이 적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을 하고 있는것은 아닐까요
예전에 김인식 감독의 짤방이 생각나는균요
자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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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논리적인 반증
1. 침투수단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은 우리의 평가이지, 그들의 평가가 아닙니다.
2. 북한군이 우리 군의 일반병사용장비를 수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북한측에서 남남갈등을 일으키길 원한다면 북한군이 침투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애고, 말만 퍼뜨리는 것도 효과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제 무기를 쓰면 시민군내에서 발각될게 뻔한데, 왜 구지 북한군의 장비를 쓰겠습니까?
3. 북한의 목표는 광주를 통한 통일보다는 남한내 소요를 일으키는 것이 목표였을 수도 있죠. 더욱이, 괜한 전쟁을 일으켰다가는 미군개입이 뻔한 상황에서 전쟁을 통한 무력통일보다는 남한사회를 붕괴시켜서 따먹는게 북한 측에서는 더 좋은 방안이라고 평가할 가능성이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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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북한군 개입을 주장하는 탈북자들은 당시 북한군 개입에 대한 구체적인 침투수단이나 침투경로를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북한의 평가를 따지기 이전에 하나의 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그에 대한 논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해당됩니다.
2. 북한군이 우리 군의 장비를 수집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해도 그 당시에 우리 군의 장비를 사용했다는 논거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루미나스님 주장을 뒷받침하려면 당시에도 우리 군의 장비를 북한에서 사용했다는 자료가 나와야 됩니다. 그런데 제 기억으로는 그런 자료는 나오지 않은 걸로 알고 있네요.
3.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에서 그렇게 시도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역시 정상적인 논거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구체적으로 북한이 광주를 목표로 했다는 자료가 제시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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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관계 확인이 어려우니, 논리적인 측면만 따져서 리플을 쓸려고 했는 데 쓰다보니 뒤죽박죽됬네요.
1. 저도 그 수단에 대해서는 찾기 어렵네요. 다만 가능성을 제시한다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32400329201004&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3-24&officeId=00032&pageNo=1&printNo=10609&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80년 3월 24일자 기사입니다.
2. 칼빈소총탄으로 사용된 총탄에 사망했다면, 광주시민이 광주시민을 쐈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광주시민으로 변장한 누군가가 있었겠지요. 차라리 민주화운동의 성격을 강화하려면, 칼빈소총탄에 의해 사망한 사람들이 적었거나 거의 없었다라고 말하는 게 더 설득적이지 않겠습니까?
3. 5.18이 사전에 계획됬다면 그건 반란이죠. 그러면, 민주화운동이니 우발적으로 일어났을터인데, 어떻게 그렇게 우발적으로 일어났으면서도 조직적이고, 확산적일까요? 광주운동을 처음에 주도했던 건 몇명의 학생인데, 그 학생 몇명이서 그렇게 수많은 광주시민을 동원하는 게 가능할까요? 실상 지휘부라는 집단이 탄생된것도, 5월 22일에 광주시민지도자나 학생들로 이루어진 한 위원회(학생수습위원회 - 시민피해감소를 위해 결성됬다고 합니다.)가 결성되고 나서입니다. 그럼 그 사이 누가 이렇게 광주시민들을 조직적으로 독려했을까요? 이 보다 규모가 작은 4.3사건때도 명백히 지휘부가 있었는 데도 말이죠.
http://postfiles13.naver.net/20130203_236/soul_gospel_1359876255347y3lGc_JPEG/3_11.jpg?type=w3 - 5월 21일 이후 시위 확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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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북한군 개입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에 걸맞는 논거를 내놓고 있는데
그 논거를 깨고 개입설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당시의 침투경로나 침투수단을 정확히 제시하는게 필요합니다.
최근에 역사학계에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가능성은 '팩트'가 수반이 되는 것이어야겠죠.
2. 칼빈소총으로 사망했다는 것 자체부터가 그에 대한 논란이 있더군요. 검안검시 자체가 신빙성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제가 자료를 좀 더 찾아보고 말하겠습니다.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와 5공청문회 자료에 이런 내용이 증언되어 있다는데 확인해보려고요.
3. 광주시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는 조직적 독려라기보다는 계엄군이 초반부터 폭력적 진압으로 일관한 것에 대해 광주시민들이 한마음 한뜻이 된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이건 광주시민분께 직접 증언으로 들은거라 못믿겠다 하실 수도 있겠지만요. 그리고 지휘부가 있어야만 대중들이 크게 들고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4.19 혁명도 대중들이 본격적으로 들고 일어난 것은 4월 18일에 고려대생들이 정치깡패들에게 피습을 당한 것 때문이 아닙니까? 시위란 것은 비단 지휘부만이 조종하지 않아도 대중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일어날 수도 있는 겁니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에도 지휘부가 있어서 시민들이 저렇게 한꺼번에 모인 것은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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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 당시는 광주가 본격적으로 봉쇄되지 않았던 시점이기 때문에
(광주 봉쇄는 계엄군이 도청에서 철수하고 난 이후 본격적으로 시행됩니다.)
광주의 일이 외부로 알려지게 되었고, 그 때문에 광주와 연대하면서 시위가 일어난 걸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열차가 도착하지 않는 걸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구나 하는 걸 알았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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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저렇게 우수영 지역으로 이동을 하는 행위는 결국 뒤에 바다뿐이고 자살행위라는것을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 입니다. 그리고 서해상에는 탈출을 위한 잠수정이 배치가 될 만큼 수심이 깊지 않아 매우 불리한 지형입니다.
car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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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박정흐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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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군의 침투수단에는 광주까지 내려올 만큼 좋은 침투수단이 없습니다, 그러면 뭐하러 광주서 하나요 부산에서 민주화 운동이 발생핬다면 더욱 신빙성이 있었을겁니다. 오히려 부산에 잠수정을 활용한 침투활동이 훨씬 활발하고 용이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시길 바랍니다.
2. 북한군이 장비세탁을 하고있긴 합니다만, 그때 당시에도 5.56X45mm를 사용하는 AR-15는 그다지 전 세계에 다량 공개된 소총이 아니었으며, 미국의 우방국에만 일부 공개된 소총이었습니다. 궂이 흔하지도 않고 값이 싸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침투시에 소지가 용이한 화기도 아닌데 그다지 그런 고생해서 그 총을 가지고 내려올 필요자체가 없었다는겁니다.
오히려 한국군이나 미군들이 평양에서 저런 소요사태를 일으켰다면 더 신빙성이 있었을겁니다, AKM 같이 흔하고 여러나라에 퍼져있는 소총이 없거든요. 대한민국 특수전사령부도 AKM과 AK-74M, 58식, 68식 88식 자동보총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으며,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로, 평양이나 개성 등지에서 대규모 소요사태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3. 북한은 무력통일이 주된 적화통일전선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그러한 방식의 소요사태를 일으킬 것 같으면 궂이 광주에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차라리 거기 투입할 인원을 빼다가 대전이나 근처 육군본부 등을 공격하는 쪽이 전술적으로 훨씬 유리하며, 침투하여 기밀사항을 빼내는 쪽이 훨씬 용이합니다.
car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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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주장하는 침투 수단은 뭐에요??
혹시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