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말에 저는 군복무 중이었습니다. 상병 말이었지요. 군대 밖은 시끄러웠습니다.
저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가 아닌 소위 비선실세가 국정을 제멋대로 쥐락펴락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그래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행동하고 싶었지만, 신분이 신분인지라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생활반 TV를 통해 촛불집회의 현장을 보면서 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동료 시민들을 속으로 응원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17년 3월 10일 제대를 한달여 남겨둔 시점에 대통령의 초상사진이 간부 회의실에서 끌어내려져 누군가의 손에 들린 채 사라져가는 모습을 목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공화국 대한민국이구나!'
국민이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자를 끌어내릴 수 있는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저는 그때 똑똑히 보았던 것입니다.
4월 말이 되어 저는 제대를 했고, 얼마 안 지난 5월 초 투표장으로 향했습니다.
온갖 부정과 비리, 그리고 갑질을 일삼는 기득권자들이 기를 펴고 살 수 없는, 반대로 묵묵히 자기가 할 일을 하면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삶을 꾸려나가는 평범한 필부필부, 장삼이사가 하루하루 희망과 보람에 겨워 사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저는 제 표를 행사했습니다.
참 애석하게도 만으로 2년이 넘은 지금 이 시점에서, 저는 제가 단단히 속았음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약속했던 세상은 없습니다. 2년동안 불지옥반도 화로의 불길은 수그러들기는커녕 더 맹렬해졌을 따름입니다.
말로만 우리들을 위하는 척했지, 우리들을 개돼지로 보기는 그들도 이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개혁과 변화를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그들은 자신들만을 위한 영세불멸의 스카이캐슬을 쌓아올리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힘없고 약한 서민들의 희망과 믿음을 통해서 권력을 쥐었다면 그들이 배신감에 치를 떨고 허탈감에 피눈물을 흘릴 때 응당 그 잘못을 통감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할 따름입니다.
만약에 그러한 모습을 우리에게 끝끝내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제가 2~3년 전의 대한민국을 지켜보며 깨달은 시민으로서의 역할이요,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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