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발ㅌF >
○○은 학과 사무실 간판이 걸린 특공관 이층으로 올라갔다.
걸상에 머리를 젖히고 입을 아 벌리고 앉았다.
조교는 달가닥달가닥 소리를 내며,
이것 저것 여러 가지 서류를 찬찬히 살펴본다.
○○은 매시근하니 잠이 왔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좀 힘들었겠네요? 학점이 개판이라서."
조교가 종이에 적힌 ○○의 성적을 눈앞에 가져다 보여주었다.
속이 시꺼멓게 썩은 징그러운 이 마음에 뻘건 피가 묻어 나왔다.
○○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사실 아프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됐습니다. W는 가급적 한과목만 띄우세요. 피가 좀 나올 겁니다."
"이쪽을 마저 띄어주시오."
○○은 옆의 타구에 침을 뱉고 나서 전공필수를 가르켰다.
"전공을 한 번에 두 개씩 띄우면 빵꾸가 심해서 안됩니다."
"괜찮습니다."
"아니, 다음 학기에 또 띄우지요."
"다 띄워주십시오. 한몫에 몽땅 다 띄워 주십시오."
"안됩니다. 술을 마셔가면서 한 개씩 띄워야지요."
"술이요? 그럴 새가 없습니다. 당장 학고가 뜨는걸요."
"그래도 안됩니다. 또 두개나 띄우면 큰일납니다."
하는 수 없었다.
○○은 학과사무실을 나왔다.
또 걸었다.
학점구멍이 멍하니 아픈 것같기도 하고
또 어찌하면 시원한 것 같기도 했다.
○○은 던져지듯이 털썩 택시 안에 쓰러졌다.
"어디로 가시죠?"
아저씨는 벌써 구르고 있었다.
"정문 칸피씨방"
자동차는 스르르 속력을 늦추었다.
정문으로 가자면 차를 돌려야 하는 까닭이었다.
운전사가 몸을 한편으로 기울이며 마악 핸들을 틀려는 때였다.
뒷자리에서 ○○이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중도로 가."
○○는 갑자기 전공기초의 빵꾸를 생각했던 것이었다.
운전사는 다시 휙 핸들을 이쪽으로 틀었다.
○○은 뒷자리 한구석에 가서 몸을 틀어 박은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있었다.
차는 문창회관 앞을 돌고 있었다.
그때에 또 뒤에서 ○○이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기학사로 가."
눈을 감고 있는 ○○은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미 W띄웠는데 하고.
이번에는 다행히 차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그냥 달렸다.
"기학사 앞입니다."
○○은 눈을 떴다.
상반신을 번쩍 일으켰다.
그러나 곧 또 털썩 뒤로 기대고 쓰러져버렸다.
"아니야. 가."
"기학사 앞입니다. 손님."
"가자."
○○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어디로 갑니까."
"글쎄 가."
"허 참 딱한 학생이네."
"……"
"취했나?"
"........."
"어쩌다 오발탄같은 소년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
○○은 점점 더 졸려왔다.
저런 것처럼 머리의 감각이 차츰 없어져 갔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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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학사 : 부산대 기계공학부 기숙사
[이해와 감상]
◈ <오발ㅌF>은 짙은 허무주의를 바탕에 깔고, 시험후의 암담한
현실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는 작품이다.
<오발ㅌF>이란 "잘못 쏜 다섯발의 총알"을 뜻하며, 다섯자루의
총으로 해석된다. 즉, 다섯과목 F를 받고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을 주인공 ○○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다.
악독한 상황에서도 성실히 살아보려고 무진 애를 쓰던 ○○은
결국 택시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가자고 한다.
◈ 이 작품의 본질적인 의미는 시험후의 비참하고 불행한 면을
그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처럼 비참하고 불행한 상황
속에서 W라는 제도가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가를 모색하고
있는 점에서도 찾아져야 할 것이다.
이미 망해 버린 성적과 화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자의식,
양심이라는 '가시'를 빼어 버리지 못하고 W라는 비극적인
선택을 통해 바라보게 되는 ○○를 통해서 시험후 현실에서
양심을 가진 인간의 나아갈 바를 묻고 있다.
[핵심사항 정리]
갈래 : 단편소설, 시험후소설
배경
*시간적 → 중간고사 직후
*공간적 → 부산대, 중도 근처
(공부에 적응하지 못해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학생들로 혼란과 무질서가 횡행하는 중도)
*사상적 →시험 후의 허무주의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갈등 : 인물과 성적 간의 갈등
특성 : 시험 후 암담한 현실을 고발한 작품
주제 ⇒ 시험 후의 비참한 사회 속에서 정신적 지표를 잃은
불행한 인간의 비극적 혼란상
출처 : http://mypnu.net/437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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