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월호 참사 9주기죠.
당시 동창 친구를 잃은 사람이 쓴 글인데 내용이 좋더라구요.
한 번 읽어보세요
세월호 참사 9주기
참사는 왜 일어났고 반복되고 있는가
https://youth.workerssolidarity.org/a/11412
2014년 4월 16일. 당시 우리는 등교하자마자 학교에 휴대폰을 내야 해서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실에서 수업을 마친 다른 반 친구들이 울면서 계단을 내려왔다.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과 친구인 아이들이었다. 나는 단원고 바로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고, 그 배를 탄 학생들과 동갑이었다. 나는 그 날, 초등학교 시절 친구 중 한 명이 단원고에 갔고 그래서 그 배를 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는 불안에 떨면서도 친구들이 돌아올 거라고 애써 서로를 위로했다.
그 뒤로 며칠 간 TV 화면 상단에 실종자 숫자가 띄워져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한참 뒤에 희생자 목록에서 친구의 이름을 봤지만 한동안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은 그 큰 배가 일순간에 침몰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했고, 희생자 숫자가 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무사히 돌아오라’는 의미가 담긴 노란 리본을 달았다. 이제 노란 리본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의미가 됐다.
사람들은 참사 예방도 구조도 않은 해경과 박근혜 정부에 분노했다. 거대한 운동에 떠밀려 참사의 책임자 박근혜가 내려오고 세월호는 올라왔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 건설을 외치고 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끔찍한 참사가 거듭된다는 것을 비극적으로 드러냈다.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되는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9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세월호는 어떤 배였나?
2012년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18년 운항해 퇴역을 앞둔 노후 선박을 싸게 사 와 세월호라는 이름을 붙였다. 새 선박을 사는 것보다 열 배는 저렴했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해운 회사 경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여객선 선령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해운 업체들에게 화물 운송이 여객보다 더 돈 되는 장사였다. 청해진해운은 더 많은 화물을 싣기 위해 세월호를 불법 개조했고, 그 결과 배의 무게중심이 불안정해졌다. 화물 과적을 위해 배의 안전을 위한 평형수도 빼고, 배에 실린 화물들을 규정대로 제대로 결박하지도 않았다. 세월호는 침몰하기 전에도 거센 바람과 파도에 여러 번 기울었고, 선원들은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배’라며 불안에 떨었다.
세월호는 안전이나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한 그야말로 ‘시한폭탄’이었다. 청해진해운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절반 이상의 선원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했고, 안전 사고 대비에 쓸 돈은 최대한 아꼈다.
참사 전날 안개가 심해 다른 배들은 출항을 취소했지만, 세월호는 다른 배가 놓고 간 화물까지 더 싣고 출항을 강행했다. 최대 적재량의 두 배 이상 되는 화물이 실렸다. 이 날 화물 운임 수입은 평소보다 1000만 원이나 늘었다. 이 중 3분의 1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자재인 철근 등이었다.
제주 해군기지
세월호는 탄생부터 참사까지 제주 해군기지와 얽혀 있다.
청해진해운은 인천-제주 항로를 20년간 독점했는데, 2010년부터는 제주 해군기지 공사로 물동량이 증가할 것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월호를 사들였고 뇌물을 제공해 가며 무리하게 증축한 것이다. 세월호가 건설 자재의 많은 부분을 담당했기 때문에 참사 이후 해군기지 공사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 국정원이 세월호를 실소유주처럼 관리했던 것도 해군기지와 관련 있을 수 있다. 2014년 당시에는 해군기지 공사가 늦어지고 있던 시점이라, 참사 전날 무리한 출항이 해군기지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제기도 나왔다.
제주 해군기지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그 구상이 논의돼 왔고, 노무현 정부가 결정했다.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건설을 강행했다.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의 일부다. 한국의 지배자들은 이런 미국의 전략에 협조해 한국 국가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취하려 했고 지금도 그렇다.
참사 당일,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핸들 고장으로 급선회했는데, 무게중심이 맞지 않고 화물이 너무 많이 실린 데다 제대로 고정되지도 않아 빠르게 기울었다. 가장 먼저 제주 해군기지로 가는 철근이 쏟아져 내렸는데, 이는 무려 승객 5000명의 무게였다. 화물 이동으로 배는 더욱 기울었고 그럴수록 선내로 물이 더 많이 들어왔다. 그 큰 배가 100분 만에 완전히 침몰해버린 이유다.
친제국주의 정책이 304명의 희생에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추가 내용은 링크에서 확인~
세월호 참사 9주기
참사는 왜 일어났고 반복되고 있는가
https://youth.workerssolidarity.org/a/1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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