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사회에 대항하는 한 인간의 사투라는 특정성보다는 사회에 내던져진 인간 존재가 그자체로 부조리라고 보고있죠 쉽게 말해서 우리는 전날 힘든 회사근무를 마치고 완전 녹초가 되어버렸음에도 명절날이 되어서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억지로 친척들을 만나러가죠 안가면 인간 아닌 놈으로 손가락질 받죠
어머니의 죽음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않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 한숨 자고싶은 욕구가 더 강렬하던 뫼르소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 순간의 자신의 마음과 욕구를 쫓아 산다는 것을 사회의 관습이라는 놈은 가만히 놔두질 않습니다
그리고 재판과정보다 한참 전에 있었던 어머니의 장례식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실 때문에 그는 악인으로 매도되어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뫼르소가 생각하기에는 자신이 아랍인을 쏴죽인 것과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인데 말이죠
우리의 일상도 이와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가끔씩 정말 삶에 무기력함과 회의를 느낄 때가 있죠 늘 해오던 일상적 순간들에 대해 반감이 들기도 하고 구역질이 나기도 합니다 늘 같이 생활하는 아주 친한 친구가 아무런 이유없이 미워보이기도 하고 맨날 듣던 9시 강의를 째고 싶은 욕구가 아주 강렬하게 드는 순간도 너무나도 많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다른 것에 비유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정말 친한 친구가 다쳤을 때 우리는 정말로 가슴아파하고 그의 아픔이 치유되기를 진정으로 원하고 있습니까? 전날 당직근무 혹은 다음날의 아주 중요한 개인적 업무 때문에 잠이 부족하다며 병문안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회피하고 있지는 않나요? 하지만 이렇다한들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욕구를 거스르지 않은 것일뿐 그 누구도 병문안 오지않음을 욕할 수 없고 강제할 수 없습니다 이점에서 뫼르소는 억울함을 호소했죠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아들인 자신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에 배심원이 분노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권리가 없는데 말이죠 부모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을 인류 보편적 감정 혹은 관습으로 부르긴 하지만, 의연하게 슬픔을 꾹꾹 눌러담아 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슬프지 않아 울지 않은 것인지 타인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저 추측할수만 있을 뿐이지. 그러나 그는 이점 때문에 결정적으로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인간 사회에서 공통의 합의로 만들어진 도덕이나 관습이라는 것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하는 상대적인 가치들입니다 뫼르소도 사회구성원들이 마음대로 합의해놓은 관습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사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이야기x/모친의 죽음에 눈물 흘리지 않은 점) 과연 그들이 뫼르소의 생명을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렇게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요?
인간의 본능은 생득적으로 이기적이며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것입니다 그것을 이성과 관습이라는 놈들이 억지로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그자체로 부조리로 카뮈는 보았습니다 식욕이 왕성한 인간이 어느순간에는 먹어서는 안되는 순간도 있죠 중요한 업무 자리나 기타 순간들에는 식의 본능이 제한됩니다 이러한 부조리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바로 인간 존재를 지탱하고 있는 삶과 죽음입니다 인간은 살고 싶은 생존의 욕구가 아주 강렬하지만 죽음을 절대로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점에서 필연적으로 부조리가 기인합니다
매 순간 더 나은 삶과 젊음을 꿈꾸지만 하루하루 늙어가고 소모되어 가는 것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인간은 존재 자체가 부조리이기에 삶의 권태와 회의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어차피 죽게 될 것인데 살지 말아야 하는가? 카뮈는 그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한다. 과연 어떻게? 삶의 무수한 부조리 속에서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인간의 실존적 선택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실존적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나는 지금 쓰러질 정도로 너무 피곤하다 그런데 친한 친구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는 온전히 나의 선택이며 이 선택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깨달아가고 나의 존재를 규정해나갑니다 수면욕을 따른다고 나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며, 친구를 도와준다고해서 나의 존재가 고귀해지며 새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나는 오롯이 나의 감정과 이성에 기초해서 나의 선택을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실존적 선택이 인간을 존재하게 합니다 실존적 결단을 포기해서 부조리에 무너져버리는 인간은(욕구가 최우선이라서 그냥 자버리는 사람 혹은 안가면 친구한테 손가락질 받을텐데...라며 억지로 가는 사람) 인간으로서의 결단적 능력을 포기한 것입니다 카뮈가 반항인으로서의 인간을 역설한 이유는 삶의 부조리에 이끌려 쉽게 판단하지말고 부조리에 맞서 인간의 실존적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고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두서없이 썼네요 많은 의견나누기를 희망합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