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과 무신론자의 차이.

한가한 동자꽃2014.07.02 09:54조회 수 1363추천 수 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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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주제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정리해서 다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인데, 무갤러들 생각도 들어보고 싶어서 여기도 올려봐. 저 커뮤니티가 무신론 커뮤니티가 아닌 만큼, 무신론과 기독교 사이에서 한 쪽 편을 들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한 글이긴 한데, 하여튼 내 요지는 '종교인들과 무신론자들은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고, 따라서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라는 거야. 인간은 패턴과 의미를 찾는 생물인데, 그런 본능적인 사고방식에 천착하면 '우주의 의미는?'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같은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이윽고 종교로 이어지는 거고, '나는 왜 그런 질문을 던지지?' 라는 메타 질문을 던진 후 자기 행동방식 자체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면 무신론으로 빠지지 않냐는 거지. 물론 나야 무신론자니까 무신론의 사고방식이 옳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런 잘잘못을 가리기에 앞서서 서로의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접근하면 상대방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를 좀 이해하기 쉽지 않냐는 거지. 댓글 달아주면 고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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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무신론자이면서도 반면에 가족의 요청에 의해 성당에 몇 년간 다닐 일이 있었는데요, 무신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교회 (제 입장에서야 천주교와 개신교는 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섬길 지라는 세부사항에서 차이가 날 뿐,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종교니까 특별한 이유가 없을 때에는 구분하지 않겠습니다) 를 다니다 보니 '한 번쯤 믿어보도록 시도해볼까?' '이 사람들도 나름대로 뭔가 이유가 있어서 믿는 것일 텐데?' 등등의 감정이 생기더군요. 그런 감정을 바탕으로 신학책도 읽어 보고 성경도 읽어 보는 시간을 꽤 오랫동안 가져보았고, 그 결과 저 자신은 원래 위치였던 무신론자로 남았습니다만, 그 와중에 생겨난 몇 가지 생각이 있어서 그 생각들을 공유하려고 포스팅을 합니다.

1.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종교는 설명할 수 있다" 라는 주제에 대해서.

아래는 유명한 (아마도 유명세로만 따지면 세계 제일일 듯한)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와 조지 펠 추기경의 토론 중 약 3 분 정도의 대화입니다. 펠은 로만 가톨릭이고,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가톨릭은 진화론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교적 대화가 통하는 기독교 분파입니다. (진화론도 종교인데요? 라고 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진화론은 '스스로 귀를 막고 눈을 가리지 않는 이상'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나 충분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이론이라고 생각하고, 따라서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진화론에 대해서 진실을 알고 싶다면, 목사나 신부의 설교를 통해서만 진화론을 접하지 말고 스스로 진화론 책자를 읽기를 권합니다. 하나 추천하자면, 도킨스가 쓴 '지상 최대의 쇼' 라는 좋은 책이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8hy8NxZvFY
[미안. 태그 포기 ㅋㅋㅋㅋㅋ 걍 클릭해서 보슈]

[8:09 ~ 10:45]

이 대화 이전에 도킨스는 진화론에 대해서 한참 설명한 상황입니다.
펠: 그거 재미있네요. 도킨스는 좀 전에는 과학은 우리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하더니 이젠 설명할 수 있다고 하네요
도킨스: 왜 설명을 못 합니까? 우리가 '왜'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과학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요
펠: 못하죠. 과학은 모든 사물과 현상이 일어나는 방식을 설명할 뿐이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해요. 빅뱅이 '왜' 일어났는지, 생물이 '왜' 출현했는지, 우리는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등등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과학은 아무것도 답해주지 못합니다.
도킨스: 당신은 지금 말장난을 하고 있어요. '왜' 라는 말은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한 질문입니다. 어떤 원인으로 인해 생물이 출현했는지 같은 것은 매우 재미있고 어려운 질문입니다. 우린 아직 이런 질문들에 답하려고 노력 중이지요. 하지만 당신은 '왜' 라는 말 속에 '목적이 무엇이냐?' 라는 의미가 숨어있는 것처럼 가정합니다. 그런 질문은 많은 경우 의미가 없는 질문이에요. '왜 저기 산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의미 있는 답변은 '이런저런 지질학적 운동에 의해 저기 산이 생겼다' 라는 것이지, 산이 저기 있는 것 자체에는 아무 목적도 없어요.
펠: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라던지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던지는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이 아무 의미도 없다뇨.

@@주: 개인적으로 무신론자와 종교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저 대화에서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왜 셀폰이 먹통이지?' 라는 질문과 '왜 심리학을 전공하기로 했니?' 라는 질문은 둘 다 '왜' 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데, 두 문장에서 '왜' 라는 단어의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첫 번째 왜는 셀폰이 먹통인 원인이 무엇이냐는 사실관계에 대한 질문이지만 두 번째 왜는 당사자의 목적이 무엇이었느냐는 의지에 대한 질문이지요. 과학자들이나 무신론자들은 두 번째 의미로 사용하는 '왜' 는 인간이나 기타 의지를 갖춘 생물에게만 적용 가능한 단어라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에 대한 대답은 '그건 인간이 스스로 정하는 거지' 라는 대답이 나오기 쉽고,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에 대한 이들의 반응은 1. 과학적인 대답을 하거나 2. 그 이상을 물어보는 것이라면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반면에 종교인들이나 추후 종교인이 될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아냐 그런 대답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야. 이 질문에는 뭔가 보다 큰 대답이 있어' 라고 느끼는 듯하고, 그런 사람의 생각은 이후 신의 개념으로 이어지기 쉽지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채워지지 않는 영적 갈증을 느낀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신이 있다는 증거로 충분하지 않은가?" 라는 말을 했었는데, 종교인들이 이 주제에 대해서 가진 생각을 매우 잘 표현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무신론자로서의 대답은 "당신은 논리의 비약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라고 밖에 답할 수 없지만 말이죠.

동영상의 나머지 부분도 합해서 내용을 정리하자면,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종교는 설명할 수 있다" 라는 주제에 대해서
조지 펠: 과학은 형이하학적인 분야만 다룬다. 종교가 다루는 영역은 논리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논리를 넘어서는 것이고, 이런 분야에 대해서 과학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리차드 도킨스: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질문은 종교도 설명할 수 없다. 그런 질문의 상당수는 성립이 불가능한 의미 없는 질문이고, 의미 없는 질문에 말장난스러운 대답을 한다고 해서 그게 설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도로 양쪽 의견을 정리할 수 있겠네요.

2. "신 없이 도덕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대해

아래는 또 하나의 유명한 무신론자인 샘 해리스가 더 유명한(?) 기독교 변증학자인 윌리엄 크레이그와 토론을 벌인 중에서 양쪽 발언을 가져온 것입니다. 크레이그는 무신론자 vs 기독교인 간의 토론이라는 이 바닥(?) 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입니다. 무신론자 쪽의 크리스토퍼 히친스처럼 이 사람도 상대방 진영의 중급 선수들을 그야말로 양민학살하는 포스를 보이죠. 이 사람이 신이 없다면 인간에게 도덕도 없다는 논증을 합니다. 이 논증 이전에 크레이그는 '객관적인 도덕적 기준은 인간의 의견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신이 있다면 신 자체가 그 기준이 될 수 있으므로 당연히 객관적 도덕은 가능하다.' 라고 말해둔 상태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qaHXKLRKzg
[13:55 ~ 16:30]

크레이그: 자 이제 초점을 무신론으로 옮겨봅시다. 만약에 무신론자들이 옳다면, 우리가 도덕의 기준으로 삼을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무신론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진화의 부산물에 불과하고, 나타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며 머지않아 사라질 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객관적으로 볼 때 인간이라는 종이 얼마나 잘 사느냐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곤충이나 쥐나 하이에나가 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지요. 샘 해리스는 도덕이 이 세상과 유리된 기준을 바탕으로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 세상에서 인간이 얼마나 잘 사느냐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근데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에요. 이 세상은 (무신론이 사실이라면) 어떤 도덕적 기준이 있는 공간이 아니에요.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도덕은 단순히 인간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생겨난 집단주의나 터부 같은 것이죠. 네, 물론 그런 도덕을 따르면 우리의 생존 확률은 올라가겠죠. 근데 이게 '옳다' 라는 개념과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도덕적이다' 라고 하는 개념과 샘 해리스식의 과학적 설명은 완전히 다른 얘기에요.

여기에 대해서 샘 해리스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qaHXKLRKzg
[35:23 ~ 38:30]

해리스: 크레이그는 제 도덕관이 '단순히 인간의 번영을 기준으로 삼는다' 라고 공격을 합니다. 어.... 그게 죄라면 뭐 제가 죄인이지요. 크레이그가 말하는 도덕이 제 도덕보다 나은 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죠. [주: 잠시 크레이그의 인용구들이 잘 생각해보면 오용이라는 지적을 함] 제 도덕관의 기본이 되는 '모든 도덕적 가치는 궁극적으로는 지성을 가진 존재들의 번영으로 환원된다' 라는 부분을 조금 더 생각해봅시다. 우리 우주에 지성을 가진 존재가 하나도 없다고 가정해보지요. 그럼 당연히 행복도 불행도 고통도 아무것도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고 도덕적 가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동의하신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지성을 가진 모든 존재가 상상 가능한 가장 큰 고통을 상상 가능한 가장 긴 시간 동안 겪는 우주' 란 것이 있다고 가정해보지요. 그런 우주는 나쁩니다. 당신이 만약 여기 동의하지 않는다면 난 당신과 더는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나도 모르지만, 사실은 당신도 당신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면서 그냥 우기는 거거든요. 자, 여기까지 제게 동의한다면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서 '지성을 가진 존재 역시 과학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므로, 우리 종이 고통을 피하고 행복과 번영으로 나아가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들이 존재합니다.' 저는 도덕을 그런 방법들에 대한 고찰을 기반으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 샘 해리스는 단순한 무신론자를 넘어서 굉장한 과학 만능론자입니다. 약간 위험한 수준까지도 생각을 밀고 나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의 생각을 제가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크레이그와 해리스가 말하는 도덕관이 기독교인과 무신론자가 마음속 깊은 곳에 깔고 있는 대 전제를 잘 표현했다고는 생각합니다. 크레이그는 '인간으로부터 독립적인 기준' 이 있어야만 도덕이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있고 해리스는 '인간이 세우는 기준으로 충분하고 그 이상은 말장난' 이라고 말하죠. 

위 동영상을 전부 보고 나서 정리하자면 "신 없이 도덕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대해
샘 해리스: 신 없이 당연히 도덕이 가능하다. 도덕의 기준은 인간의 번영이고, 솔직히 그 이상의 기준이란 것은 불필요할뿐더러 위험하다.
윌리암 크레이그: 신 없이 세우는 도덕은 사상누각이다. 신의 명령 없이 누가 누구에게 도덕적 의무를 지우겠는가?
정도의 입장을 보입니다.

3. "세상의 신비는 신을 증거한다" 라는 주장에 대해서

아래 동영상은 크레이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전투적인 무신론자의 끝판왕입니다. 이 사람의 토론 영상들을 보면 느끼게 되는 거지만, 이 사람은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에 대해서 가진 증오심이 어마어마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개인사를 보면 이해할 부분도 있고요) 가 맞붙은 토론회입니다. 역시 양쪽 발언 중 제 글의 요지에 맞는 부분만 따옵니다. 이 토론회의 주제는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였고, 크레이그는 본인의 영적 체험 같은 주관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철학적으로 신을 논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 철학적 논증 중 1 번인 제일원인 논증 부분을 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8MzPmkNsgU
[15:54 - 20:10]
크레이그: 자 우주론적인 논증에서 시작해봅시다. 우주는 도대체 왜 [주: 여기서 '왜' 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제가 1번에 이야기한 기독교적인 뉘앙스입니다] 존재하는 것일까요?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무신론자들은 우주는 영원히 존재했으며 그것이 존재하게 한 절대자는 없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우주의 시작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지요. 일단 논리적으로 생각해와도 우주가 영원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영원' 이라는 것은 개념일 뿐이지 실제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니거든요. [주: 이런저런 인용을 한참 하네요. 인용왕 크레이그] 고로 인과율의 체인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시작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20세기의 빅뱅 이론은 이런 철학적 논증을 확인해주지요. 빅뱅 이전에는 물질도 에너지도 시간도 공간도 없었는데 빅뱅으로 인해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무' 에서 '유'가 생겨난 것이지요. 무신론을 기반으로는 이런 상황은 말이 안 돼요. '무' 에서 '무' 라는 방법으로 인해 '유' 가 시작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거든요. '물질도 시간도 공간도 없는 무' 에서 '유' 가 생겨나려면 결국 '비물질적이고 시간 밖의 존재이며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존재' 가 필요한 것이고, 그런 존재가 창조를 '선택' 했다는 점에서 유추해볼 때 이 존재는 '인격적인 존재' 이어야만 하지요. 따라서 우리는 우주의 존재 자체가 비물질적이자 시간 밖의 존재이자 인격이 있으며 압도적인 힘을 지닌 존재에 대한 증거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게 신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e8MzPmkNsgU
[35:59 - 41:00]

히친스: 우리가 만약 이런 토론회를 19세기에 가졌다면, 크레이그씨는 우주론 같은 것은 알지도 못했을 거에요. 따라서 아마 크레이그는 신념이나 성경 문구, 구원의 약속이나 아니면 페일리의 자연 신학 같은 것을 이용해서 신을 증명하려고 했을 겁니다. 페일리는 아시다시피 '이렇게 복잡한 생명이 가득한 세상이야말로 신의 증거다. 도대체 신이 아니면 이런 복잡계를 누가 만들었겠는가?' 라고 논증을 했던 사람이지요. 꽤 그럴듯했던 논증이고, 19세기에는 많은 기독교인이 이 말을 믿었어요. 근데 오랫동안의 노력을 통해서 과학자들이 밝혀낸 진실은, 우리가 설계된 존재가 아니라 무작위 변위와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된 존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진화론에 반대해서 교육 과정에서 진화론을 삭제하려고 그렇게 노력하던 기독교인들이 이젠 어떻게 말하는지 아시죠? '아, 진화도 사실 신의 뜻이에요' 이렇게 말하죠. 이런 식의 논증은, 확실히 말해두지만, 제가 반박할 수가 없어요. '과학자들이 무엇을 찾아내든 그 찾아낸 발견물은 신의 뜻이에요' 라고 말하면, 거기에 대고 제가 뭐라고 하나요? 하지만 이런 식의 반증 불가능한 논증은 사실 제대로 된 논증은 아니죠. 크레이그의 논증대로 신이 130억 년 전에 우주를 만들고 45억 년 전에 지구를 만들고 그 위에 생명을 창조해서 그 생명체 중 99.9% 가 멸종되기를 기다려서 [주: 잠시 별로 안 중요한 얘기를 함] 인류를 만들고 그 인류의 대부분이 빙하기에 멸종할 뻔하다가 몇 천 마리만 살아남기를 기다려서 [주: 요즈음 새로 발견된 사실인데, 인류가 빙하기에 멸종할 뻔했다더군요. 지구 표면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다 얼어 죽고 한 부족 정도만 살아남았다가 그게 다시 퍼져나간 거라고... 뭐 하여튼 히친스의 논증과는 큰 관계는 없습니다] 그들이 다시 문명을 만들기를 기다려서 그제야 그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고 자기가 우리를 구원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증거없이 믿는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한 것이 우리 세상의 메인이벤트라고 생각하신다면, 뭐 그렇게 하세요. 제가 보기에는 매우 흥미로운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입니다만. 우주의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 그동안 멸종해버린 수많은 생물들, 인간 이외의 종들이 겪는 수많은 고통, 뭐 이런 건 난 관심없고 하여튼 신은 우주를 우리를 위해서 만들었고 우리는 구원받았다... 예 뭐 그렇게 믿으세요.

@@주: 히친스는 철학자가 아니고 저널리스트니만큼 신학에 대한 깊이 있는 논증/반증을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사실 히친스야 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잘못된 전제 위에 세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자신이 신학을 깊이 팔 이유를 느끼지도 않겠죠. 하여튼 그렇다 보니 히친스의 논증은 다분히 공격적이고 감성적인 면을 띱니다. 오히려 크레이그의 제일원인 논증은 나름대로 철학적인 느낌은 들지요. 크레이그의 제일원인론이 옳으냐 그러냐는 지금 제 글의 요지는 아니고 [주: 참고로, 제가 저 논증을 인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도 무신론자와 기독교인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전제의 차이가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즉, 크레이그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혹은 그렇다고 자신이 느끼는) 이런 위대한 신비 뒤에는 분명히 뭔가 거대한 존재가 있음이 틀림없다' 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고, 히친스는 '신비 같은 소리하고 있네. 실제 우주에서 우리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데, 당신 지금 인지부조화여' 라고 공격하지요. 나중에 크레이그와 로렌스 크라우스 (저번 글에서 언급한 물리학자) 가 동일한 제일원인 논증을 주제로 논박했었는데, 크라우스는 '잘 모르겠으니 신! 이라는 식의 논증은, 그냥 게으른 거에요. 잘 모르겠으면 공부를 해야지요' 라고 공격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세 가지 주제 - 과학과 종교, 도덕과 신, 신의 존재 - 를 두고 벌인 토론회 모두에서 저는 한 가지 근본적인 심리적 차이를 느꼈습니다. 기독교인은 '왜' 라는 질문 뒤에 '목적이 무엇이냐?' 라는 전제가 깔려 있으니 인간이 아닌 의지적 존재가 결론으로 나올 수밖에 없고, '옳고 그름의 기준' 이 인간 이상의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인간이 아닌 도덕적 존재가 결론으로 나올 수밖에 없고, '신비로움' 의 뒤에 인간 이상의 존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창조주가 결론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반면에 무신론자들은 '왜' 라는 질문은 '원인이 무엇이냐?' 를 물어보는 것이니 의지적 존재를 상정할 이유가 없고, '옳고 그름' 은 인간이 판단할 일이니까 인간 이상의 기준이 필요 없고, '신비로움' 을 느낄 때에는 그 신비로움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고 들어가게 되니 창조주를 떠올릴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CS 루이스가 한 말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문구가 하나 있는데, '무신론자들은 신을 찾는 우리의 노력을 현실로부터의 도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세상이 감옥이고 신의 세상이 감옥 바깥이라면 이것은 탈옥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대충 이런 문구였습니다. 차마 재미있는게, 루이스의 전제가 참이라면 루이스의 말이 맞고 전제가 틀리다면 무신론자들의 말이 맞습니다. 근데 그 결과는 완전히 정반대로 나오지요.


4. 마치며

글을 다 쓴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제가 무신론자다 보니까 어느 정도 무신론자의 편을 든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나름대로 '정말로 아픈 곳은 찌르지 않는다' 는 원칙에 따라서 글을 작성했으니 기독교인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뭐랄까.... 이 글은 '당신들 기독교인은 뭔가 착각하고 있습니다. 무신론이 맞아요' 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쓴 글은 아닙니다. 우리 생전에 무신론자나 기독교인이 대한민국 인구의 99% 를 차지해서 상대방 진영을 무시해도 될 정도로 밸런스가 기울 일은 없을 듯하므로, 어차피 서로 또 만나고 또 만날 사이니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조금 넓혀보려는 시도라고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지난 2년 반 정도에 걸쳐서 대충 500 ~ 1000 시간 정도의 시간을 기독교와 기타 종교, 무신론에 대해서 공부하느라 소비한 듯하네요. 뭐 텍사스 거주자로서 제 공부의 상당 부분은 텍사스 특유의 신정일치스러운 복음주의 교회를 이해하는 데 할애하긴 했습니다만..... 하여튼 이제 공부는 다 했고 기독교에 대해서 더 이상 알아볼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야말로 현실 세계의 일에 집중할 때가 된 듯하네요. 모두들 힘찬 한 주 되시길 빕니다.


-DC무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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