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륵암 미륵암이라고 부르는 바위 위에는 석불의 두상이 올려져 있다 | ⓒ 하주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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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금산군 복수면 지량리 345번지에 소재한 충남 전통사찰 제85호 미륵사. 미륵사 상량문에 의하면 미륵사는 통일신라 성덕대왕 2년인 703년 봄에 창건되었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재단법인 선학원의 분원이다. 미륵사는 1948년 불에 타 없어지기 전까지는, 대웅전과 칠성각, 산신각, 요사 등을 갖추고 있었다. 화재 후에는 인법당을 모셨으며, 현재는 대웅전을 새로 짓고, 산성각, 요사 등이 자리를 하고 있다. 미륵사에는 '미륵암(彌勒岩)'이 있다, 두상만 남은 석조불을 바위 위에 얹어 놓은 것이다. | ▲ 마애불 곁에 세운 조각난 돌에는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얼핏 보아도 수작이다 | ⓒ 하주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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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면 마애불의 모습이나 크기, 그리고 형태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이후의 마애불로 추정된다 | ⓒ 하주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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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둥자리 이 마애불 조각이 있는 한 옆에는 전각의 기둥을 올렸던 흔적이 있다. 마애불을 보존하기 위해 전각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 ⓒ 하주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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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위에 얹은 석불 두상 지난 8월 28일, 장수, 진안을 거쳐 금산으로 들어갔다. 보석사의 은행나무와 미륵암을 보기 위해서이다. 미륵암은 현 미륵사로 올라가기 전, 축대 밑에서 좌측으로 70m 정도 들어가면 만날 수가 있다.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측으로 커다란 바위가 하나 보이고, 그 위에 석불의 두상을 올려놓은 것을 볼 수가 있다. 두상으로만 보아도 이 석불은 고려시대의 거대석불임을 알 수가 있다. 그 밑으로는 평평한 바위 면이 있는데, 누군가 그곳에 두상을 염두에 두고 선각으로 마애불을 조각하였다. 그것으로도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니, 쪼개진 바위조각에 조각을 한 흔적이다. | ▲ 조각난 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각난 돌. 그 돌에는 마애불의 흔적이 있다 | ⓒ 하주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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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애불 쪼개놓은 바위조각에는 마애불을 선각으로 처리한 선들이 보인다. 무염대사가 신라 때 세웠다고 하는 미륵사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 ⓒ 하주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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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진 바위조각들은 마애삼존불인 듯 미륵사로 찾아들었다. 주지스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자료를 들고 나와 보여주신다. 이곳으로 부임을 해와 보니, 바위를 절단한 듯 톱날 등이 바위에 꽂혀 있었다는 것이다. 바위가 널린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어림잡아 크기는 3m가 넘을 만한 마애불이다. 전체적으로 이것저것을 맞추어보니, 삼존불을 새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찌해서 이렇게 조각이 나버린 것일까? 그리고 저 바위에 선각을 한 것은 무엇일까? 마애불을 조각한 바위는 여기저기 널려 있다. 어림잡아도 10여 조각은 되는 듯하다. 미륵사 주지스님의 이야기로는 숲 속에도 조각들이 있다는 것이다. 두상은 선각을 한 바위 면 앞에 떨어져 있던 것을 올려놓았다고 한다. | ▲ 흔적 돌조각에 새겨진 부분을 이리저리 돌아보니 아마도 삼존불인 듯하다 | ⓒ 하주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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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적 뚜렷하게 남아있는 조각의 흔적. | ⓒ 하주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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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각난 돌 마애불이 새겨져 있던 바위는 열 조각 이상으로 갈라져 여기저기 널려있엇다고 한다 | ⓒ 하주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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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가 빚은 참화, 눈물이 난다 그리고 바위는 넓적한 돌에 마애불을 새겼을 것만 같다. 그 마애불을 이렇게 조각을 내놓은 것이다. 현재 조각난 마애불 주변에는 옛 기와조각이 발견이 되고, 바위 한편에는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있다. 그렇다면 이 마애불을 새기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전각까지 지었다는 것이다. 그런 마애불을 도대체 누가 이렇게 조각을 내놓은 것일까? 조각난 마애불을 돌아보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세상에 소중한 문화재 하나가 산산조각이 나다니. 무지가 불러온 문화재 훼손. 참담하다. 언제나 우리 문화재들이 제 모습 그대로, 제자리에 편안한 모습으로 있을 것인지. 이 나라에서는 기대를 할 수 없는 것일까? 돌아나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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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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