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서 누군가가 만들어낸 성취를 이룩하며 그것을 즐거움이라 느끼게 하고 눈과 귀를 막은 체 달려가게 끔 우린 정교한 환경에서 만들어지죠. 저는 이 인간상을 생각하고 나서 집 밖으로 나가질 못했습니다. 세상 모든 게 구역질 났어요. 성취,희망,꿈,돈,연인 과 같은 사람들이 이룩해내려고 마음 먹는 많은 것들이 단 일순 조차 내 삶의 지향점이 되기에는 허망한 것이라고 느꼈어요. 인간이 목표한 바를 이루어 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건, 나를 숙주로 긴 여행을 하는 내 dna가 만들어낸, 이런 기분 좋아지는 게 있는데 죽을꺼야? 라고 말하는 일종의 기만에 불과하다 여겼죠. 단지 도파민에 좌우되는 하나의 동물. 나라는 인간은, 영장류의 일부로서, 크나큰 우주의 먼지 만한 곳에 존재하는 생명체로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존재인가? 에 대한 물음. 내 존재에 대한 확실성. 내 존재에 대한 의미. 나의 지향점에 대한 설정. 이 갖추어지지 않고서는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었어요. '나' 를 설정하지 못한다면, 삶이 무의미하다면, 내가 세계에 없든 말든 그 어떤 의미도 없다면, 자살과 삶은 단지 절반의 가능성을 지닌 단어에 불과하고, 죽든 살든 그것조차 아무런 상관이 없게되니까요.
이젠 제 이야긴데 저는 문제설정을 다르게 했어요. 삶의 의미와 죽음과의 관계에서, 인간과 삶의 의미로의 관계를 먼저 보기로 한거죠. 삶과 죽음을 생각하기 전에 '나' 로서 살아가는 인간을 정의내릴 수 있다면 글쓴이의 문제도 정의내릴 수 있다고 본거에요. 인간이기에 삶과 죽음을 고민하는 거니깐요. 저는 상상했어요. 그 어떤 구속과 압박도 존재하지 않는, 자연 상태에 세상에 태어나서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 이 원초적인 상태에서 이 아이를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했어요. 제가 내린 답, 제가 생각한 이 자유롭고 초월적인 최초의 인간을 이끄는 것은, 느낀다는 것이었어요. 느낌, 아름다운 꽃을 보고, 그 향기를 느끼며, 간지러운 바람을 느끼며, 새의 지저귐을 듣는 것. 그리고 그 어떤 이성이 개입되는 텍스트로 표현될 판단 이전에 존재하는 만물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것을 느끼는 그 자신에 대한 사랑을 지닌 존재. 그것이 인간이라고 전 정의내렸어요. 다시 문제로 돌아가서, 저라는 인간은, 나를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내 기분 좋은 느낌이 되어주는 모든 것을 긍정하는 존재이기에, 삶의 모든 것들이 놓칠 수 없는 존재들이 되어버렸어요. 이 세상 나를 기분 좋게 만들 모든 것들, 성취도 희망도 꿈도 돈도 연인도, 나를 기분 좋게 만들 모든 것을 긍정하게 되었어요. 삶의 의미요? 나를 '나' 이게끔 만드는, 나에게 느낌을 주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어요. 삶이 절대로 무의미 하지 않게 됐어요. 의미는 내가 설정하는 것이고 내가 만드는 거에요. 날 사랑해줄 수많은 것들, 그것이 내가 만든 것이든 외적 존재든지 간에, 그 모두에 사랑 받을 느낌, 그리고 그것을 다시 사랑할 느낌을 생각한다면 정말 최고로 기쁠 것 같아요.
주제로 돌아가서, 삶이 무의미 하다면 왜 자살하지 않을까요? 에 대한 답은, 삶은 인간에게 너무나 큰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 말고 그 어떠한 선택도 존재할 수 없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내린 답은 저 만의 답이에요. 글쓴이님도 인간으로서의 본인을, 완벽히, 깨어지지 않게 설정하시고 언젠가 답을 들려주시길 바래요. 자살 하기엔 재밌는 게 많다구요 !
저는 요즘 인간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감수성이란게 없어진 느낌이네요 먹는거 보는거 듣는거 맡는거에 감동하지 않게되었네요 우울하지도않고 기쁘지도않고 그래서 딱히 살아갈 이유도 없는거 같고 점점 불교적세계관에 맞춰지는 느낌이네요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고있지만 감각적으로 체감이 되버리니 방법을 못찾겠네요 감수성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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