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글쓴이2018.03.28 00:50조회 수 1504추천 수 3댓글 5

    • 글자 크기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나 나를 미치게 보고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노희경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욕설/반말시 글쓰기 권한 영구 정지3 똑똑한 개불알꽃 2019.01.26
공지 사랑학개론 이용규칙 (2018/09/30 최종 업데이트)6 나약한 달뿌리풀 2013.03.04
5643 졸업하고 잊고 살았는데 갑자기 보고싶어요....2 납작한 곰취 2015.05.27
5642 .2 초라한 목화 2016.05.28
5641 .2 슬픈 대왕참나무 2014.01.14
5640 보고싶다2 슬픈 용담 2014.06.10
5639 프사 좀 달아주십셔2 보통의 숙은노루오줌 2015.06.25
5638 왜ㅜ2 서운한 산박하 2018.08.16
5637 군대도가야하고 연애도못하고 시험공부도해야되고2 청렴한 술패랭이꽃 2014.06.06
5636 .2 피곤한 코스모스 2016.05.10
5635 .2 과감한 산수유나무 2016.02.08
5634 연애 참2 냉정한 상추 2013.05.18
5633 남사친2 육중한 사랑초 2018.09.15
5632 들국화, 나태주2 사랑스러운 산박하 2015.06.27
5631 야..너2 무거운 참회나무 2014.03.23
5630 [레알피누] 내일 중도가야지2 억울한 일본목련 2014.11.24
5629 이제좀 살거같다2 우아한 망초 2014.08.12
5628 [레알피누] 마이러버 여성분들께 질문!2 태연한 미국쑥부쟁이 2018.03.17
5627 아....이렇게....2 무거운 산뽕나무 2012.10.05
5626 읽씹?2 날렵한 만첩빈도리 2013.06.20
5625 .2 해괴한 자금우 2016.05.16
5624 어떻게 생각하나요2 코피나는 인동 2016.06.27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