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타이밍

힘좋은 참골무꽃2017.03.03 18:13조회 수 6507추천 수 33댓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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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와 헤어진지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그냥 여러분들께 물어보고 싶네요.

긴글이지만 한번 읽어봐주시겠어요?

 

제 기억속 저희 집은 단 한번도 부유해본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절대 물질적으로 저에게 부끄럽게 해주신 적 없습니다.

저를 늦게 나으셔서 상대적으로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먼거리를 왕복하시며 아침 밤으로 일하신 적도 있고,

정말 건방지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손님들에게도 아무런 반박하지 않으시고 되려 굽히시거나, 묵묵히 버텨내셨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철없지만 특히 20살까지는 더욱 그랬습니다.

공과대학까지 왔으니 적당히 하면 다 될줄 알았고, 군대도 가기 전이니 괜스레 싱숭생숭하니 군대 핑계삼아 적당히..

하지만 군대를 가 많은 수모를 겪고 지긋하게 고생도 해보니 사람이 변하게 되더군요.

아버지는 얼마나 힘들게 자라오셨을까, 아버지는 얼마나 더한 군생활을 하셨을까.

염색으로 가리셨지만 하얀 뿌리가 대부분인 어머니.. 몸은 괜찮으실까. 

죄송함과 고마움 여러감정들이 뒤섞이였습니다.

그리고 전역을 하고서 정말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3.0을 곤두박질 치던 학점에 내가 왜그랬을까 이를 바득바득갈고

나름 부담 덜어드리려고 알바로 새벽잠 줄여가며 일도 하고, 다시 복학하면 정말 열심히해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더 멋있어지고 발전하고싶어 운동에도 소홀히 한적 없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하루가 허전할 정도로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소개로 만난 그녀는 정말 착하고 순했습니다.

예의바른 남자를 좋아했고, 얘기가 정말 잘통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금방 사귀게 되었고, 새해를 함께보고, 누구나 그렇듯 초기엔 알콩달콩한 연애를 해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여자친구도 알바를 하고 있었고, 학원을 다녔기에 서로 바쁘게 생활하는 것이 오히려 좋게 작용했었죠.

 

본격적인 갈등은 학기가 시작되면서 나타났습니다.

갓 복학을 하고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학업에 임하려 하니, 심적으로 부담이 상당히 크더군요.

항상 앞자리에 앉으려 경쟁하게되고, 필기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답답하게 되고..

무슨 과제는 그리도 많은지,.. 예상은 했지만 이겨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데이트 장소가 도서관이 되더군요.

당시 여자친구는 4학년 졸업반이었기 때문에,  취업준비를 위해 공부가 필요하지 않겠냐며 함께 했습니다.

솔직히 여자친구는 공부에 대한 큰 열정이 없었습니다. 

시험 전날 빠싹해도 잘나오는 학점에, 여자친구 부모님께서 든든하게 뒤를 지켜봐주셔서

취업걱정에 대한 스트레스 같은게 없더군요.

그럼에도 묵묵히 저와 함께 공부해주는 여자친구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알다시피 저희학교는 오르막길, 운동도 별로 안좋아하는데 가쁜숨 몰라쉬며 힘들게 따라 올라와주던 여자친구.

제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구인 헬스장에 몰래 들어와 제 사물함에 먹을 것들을 두고 가주던 여자친구.

알아요, 전 여자친구만큼 여자친구에게 헌신적이지 못했습니다.

 

터무니 없는 과제에 날밤새며 답답해하고, 일찍이 시험공부에 혈안되어있고, 공부도 공부지만 운동에도 소홀히하지 않고,

자주는 아니지만 일주일에 1~2번 약 1시간되는 거리를 버스타고 여자친구집에 가곤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나도 여자친구와 잘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생각을 달리하더군요.

'너는 나보다 공부와 운동이 먼저인 것 같다.' 라고..

 

그럴 때마다 누누히 말을 했습니다. 

그것들은 너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못된다고.. 너는 여자친구 그자체로 소중한 존재이고,

공부는 내 앞으로의 미래에 있어서 반드시 해야할 일이며, 운동은 내가 학창시절 유일하게 성취하고 싶은 것중 하나라고.

 

여자친구의 심정..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분명 이해가 갑니다.

학교수업, 저녁먹고 운동 갔다가,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와서 공부, 새벽늦게까지 공부하고 몇시간 잠자고 일어나서 같은 생활, 주말에만 자신을 찾아오는 저를 보며 여자친구는 자신을 뒷전이라 생각했을겁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맡은 일에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저도 얼른 이 지긋지긋하고 괴로운 학교생활을 벗어나서 취업을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어머니께 항상 장난식으로 얘기했습니다.

'엄마!! 나 진짜 2년만 빨리 낳아주지.. 그럼 지금 돈벌고 있었을텐데'

항상 고생하시는 부모님보고있으면, 없는 형편에 저에게 물신양면해주시는 부모님보면,

발발기게되는 회사생활이더라도 돈만 넉넉히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부모님 짐좀 덜어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여자친구와도 함께하는 생활을 꿈꿔왔습니다. 굳이 낯부끄러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일찍이 취업하게 될 여자친구에게 훗날 자랑스러운 그런 남자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정말 하기 싫지만 억지로라도 제가 해오고 있는 일들이.. 그것들이 오히려 여자친구를 괴롭게 했더군요.

왠지 그 말다툼에서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자친구의 투정은 제가 짊어진 부담감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누구보다 애를 쓰고 있다는 걸 여자친구가 알아주길 바랬던거죠.

많은 다툼이 있었지만 저희는 잘 견뎌냈습니다. 한해를 같이 돌아볼 수 있었고, 함께있을 때 정말 행복했으니까요.

 

1년이라는 연애 기간이 흘러 여자친구는 취업을 하게 되어 장거리연애가 되었고,

저는 여전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학기, 방학 할 것 없이 학점을 매꾸고 공부하고 스팩을 쌓으려하고..

멀어진 거리에 이상하게 서로의 스케쥴이 계속해서 어긋나더군요.

 

아버지는 틀니를 잃어버리셨는데, 돈이 아까워서 그냥 그렇게 두고 계신다..

어머니는 무릎 연골이 거의 닳으셔서 병원을 한동안 병행하셔야 된다..

겨울이라 장사가 잘 되지 않아 걱정이다..

이런 저런 많은 문제들이 다시 부각되고 홀로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즈음에

 

어느날 여자친구가 제게 물었습니다.

'너는 나 얼마나 좋아하냐고' 

-매일매일 생각할 정도로 좋아해

'근데 딱히 그렇게 안느껴진다'

-...

 

그말에 왜 그렇게 화가났을까요. 저는 여자친구를 다독이지 못하고 그말에 화를 냈습니다.

가뜩이나 장거리에다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고 있는데 왜.. 불화의 씨앗을 던지는걸까 싶었으니까요.

서로 다툼후에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고, 제가 사과를 먼저했습니다.

 

항상 여자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건 사실입니다.

제가 경제적으로 넉넉한 것도 아니고, 바쁜생활로 여자친구에게 많은 추억거리를 쌓아주지도 못했고,

무엇보다, 공부와 운동을 위해 밤잠줄여가며 악착같이 버텨와놓고 

정작 여자친구를 위해 미친듯이 절박하게 행동하지 못했던게 생각나더군요.

 

어두운 새벽, 택시잡아가며 여자친구 얼굴 한번 맞대보고 돌아올 수도 있었을텐데..

단 몇분이라도, 그 몇분을 위해서 먼거리지만 다녀와볼 수 있었을텐데.. 라고 말이죠.

 

여자친구는 우리 그만하자라는 카톡을 보내더군요.

사귀면서 몇번 들어봤던 말이지만, 그 말에 많은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애써 담담한척, 그 이유에 대해 묻지도 않은채 짧은 대답으로 끝을 냈습니다.

 

그러고 몇일 지나 후회를 하고 여자친구를 다시 붙잡았습니다.

정말 올 한해에는 너에게도 최선을 다해보겠다. 미안하다고.. 믿어달라고.

거짓말같이 여자친구는 돌아와주었고 서로 노력하는 모습에 기뻤습니다.

여자친구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고, 평소에 주지도 못했던 꽃을사고, 처음 써주는 편지를 어떻게 할까 많은 생각하던 중에

여자친구는 다시 헤어지자고 말을 꺼내더군요. 다시 만난지 일주일채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 동안 받은 상처가 너무 많았다고 하더군요.

 

한동안 그 카톡을 보며, 되새기고 되새겼습니다.

여자친구의 여린 성격을 잘알기에 일부러 저도 모질게 말을했습니다.

'서로 노력해보자해놓고 항상 이렇게 통보만 받으니 황당하고 어이없다고' '나도 이건 아닌것 같다고 잘지내라고'

그렇게 다시 끝이났습니다.

아마.. 정말 끝일거라 생각합니다.

여자친구의 저 말을 하기 전까지 얼마나 고민했을지 느껴졌기 때문에.. 맘고생 많았을 걸 잘 알기때문에.

제가 엎질러 놓은 일들이기 때문에..

미련없는 척 보내주는게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아직까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무엇이 최선이었을까요...?

여자친구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며 행해왔던 제 일들이, 그게 정말 최선이었을까요. 

 

아직도 원망스럽습니다. 그저 막연한 이 시간들이.

왜 저는 아직 학생일 뿐인지

왜 이렇게 혼자 달리는데 먼저 도달할 수 없는지..

그저... 남들과 똑같이 흘러가는 이 시간속에 막혀서 답답하게 앞만 빼꼼히 내다보고 있어야 되는 이 처지가..

 

이런 저를 그리워할리 없겠죠..

그녀가 보기엔 그저 자기밖에 몰랐던 이기적인 남자친구를 ..

 

정말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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