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잃고 싶어요.

글쓴이2018.05.05 23:44조회 수 18234추천 수 260댓글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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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끝내고 샤워실에서 나오니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고 있었습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지만 전화를 받았고 ○○경찰서 에서 형사님이 전화를 주셨더군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아버지랑 어머니는 사이가 좋지 않으셨고 저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전 할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으면서 컸습니다. 너무 어렸을 때 부터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었던 터라 힘들기도 했지만 좋은 친구들 덕분에 잘 자라왔어요.
물론 초등학교 때부터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갈 때 각자의 어머니가 싸주신 친구들의 도시락과는 다르게 분식집에서 주문한 도시락을 먹으면서 너무 부럽기도 했지만 그게 몇 년씩 지속되니 점점 괜찮아졌어요. 학부모 참관수업 때 할머니가 오셨을 때도 저는 너무 좋아서 할머니께 달려가 안겼구요.

그렇게 저를 위해서 불편한 몸으로 밥을 해주시고 빨래를 하시면서 고생을 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미친듯이 노력해서 성공한 다음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께 효도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다 20살이 되었고 저는 몇 년째 자취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멀리있는 큰 집에는 자주 내려가기 힘들어졌고 정말 못됐게도 집에 전화하는 횟수도 줄어갔습니다.

그리고 작년 겨울,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정말 미친듯이 울었습니다. 그전에 병원에 계실 때 찾아뵀었는데 저를 못알아보시는 걸 보고 그때도 미친듯이 울었었지만 그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죄송함과 후회스러움에 목이 터져라 울었고 다시는 감사함을 전하기전에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왔습니다. 사인은 단순 자살로 추정. 아파트에서 떨어지셨다고 하더군요. 너무 멍해서 눈물도 안 나왔어요. 형사님이 어머니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어머니 맞냐고 하시는데 목이 다 잠겼어요.

다른 친구들은 부모형제와 평화롭게 사는데 왜 저는 외동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이렇게 가족이 하나씩 떠나가는 지 모르겠어요.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요... 진짜 그만 좀 잃었으면 좋겠는데, 그냥 평범하게만 살고 싶을 뿐인데...

벌거벗겨진 채로 어두운 낭떠러지에 혼자 떨어진 기분이에요... 친구들한테 말도 못했습니다.

곧 아무도 없는 어두운 집에 들어가 잠을 자겠지만 꿈에서라도 평범한 가정에서 살고 싶습니다. 특별한 것도 아니고 딱 보통만큼만, 남들 사는 대로 사는, 그런 꿈이라도 꾸고 싶어요.

 
근데 제가 진짜 못된 게 뭔줄 아세요? 그 와중에 장례비용 걱정을 했다는 거에요. 어머니 사망소식 듣고 나서 바로 그 생각을 했다는 거에요... 아버지 2교대로 일하시는 거 생각하면서 그 비용을 생각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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