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즐거웠고 고마웠습니다.

정겨운 생강2017.08.18 23:55조회 수 3466추천 수 13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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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7주간 진행됐던 수업이 드디어, 아니 결국 끝이 났고 아마도 그녀도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처음 봤던 당신은 얼굴은 아주 예쁘기보다는 수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첫 수업 오리엔테이션 때는 얼굴 조차 보지 못했지만 두 번째 수업 때 문을 열고 들어오던 저와 나가다가 마주쳤던

 

그 때 당신의 얼굴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먼저 인사해주었던게 그 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정말 고마웠다고 느낍니다.

 

세 번째 수업 때 하늘이 도와주셨는지 당신과 파트너가 되어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야구를 좋아했고, 파스타, 피자 등 이탈리아 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했고, 모나코와 영국에도 미국에도 가보고 싶어하는

 

활발한 여성이었습니다. 수수한 외모 때문에 편견으로 소심할거라 판단한 제가 정말 어리석었고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상당히 도전적이었던 당신이, 저와는 정반대의 성향인 당신의 그 역설적인 매력이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그 때 좀 더 자연스럽게 당신에 대해서 더 많이 물어봤어야 했는데 과거의 자신은 그게 마지막 기회인지 몰랐기 때문인지,

 

감정이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조금은 어색하게 대화가 끝나버렸습니다.

 

오히려 그 때는 그랬기 때문에 네 번째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홀로 향하던 당신에게 말을 걸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로 돌아간다면 좀 더 자연스러운 주제로 대화했을텐데.. 그 전날 집에 갈 때 같은 방향으로 향하던 당신이 자취하는 것

 

같아서 반가운 마음에 말했던 건데 홀로 사는 여성으로썬 외딴 남성이 자신이 자취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그리고 두려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주제는 꺼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갈림길에서 헤어지던 당신의 좋지 않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제 착각일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사과의 뜻으로, 아니 제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서 당신이 초콜릿 과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저는,

 

당신이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공부하는 곳에서 받아온 거라고, 많은게 아니고 어차피 12개 중 절반인 6개를 주는 거라고

 

하면서 빈츠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때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으로 제게 웃어주었던 모습은 잊을 수 없습니다. 비록 과자

 

때문이었다고 할지라도..

 

당신은 봉사도 하고 수영도 하고 시험에서 못 푼 것이 아쉬워 남아서 끝까지 다 풀고 왔다고 하던 것.. 모두 기억합니다.

 

다른 사람은 커녕 제 자신의 일도 확실히 기억 못하던 제가 당신에게 정말 관심이 있었나봅니다. 모든 것이 좋았지만 특히

 

당신의 웃음소리, 내숭 없이 호탕하게 웃으면서도 청량하고 예쁜 웃음소리는 제 반복되던 말라붙은 일상에 단비 같은

 

존재였습니다. 잘 웃는 당신이 좋았고, 당신이 웃는 걸 보는 것이 그 날 그 날의 낙이었습니다.

 

당신의 호감을 사기 위해 또 핑계를 대고 초콜릿 과자를 선물하고자 때를 기다렸습니다. 제가 눈치채지 못한건지, 아니면

 

기억을 못하고 있는건지 제 감정이 확실해질수록 역설적으로 당신에게 더욱 다가가기 힘들었습니다.

 

아무래도 21년 동안 이런 경험이라곤 한 적이 없는 제 자신이 도전과 실패했을 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기억하던 최근의 모습은 발걸음이 전과 다르게 유난히 빠르게 느껴졌던 당신, 항상 통화를 하며 가던 당신이었습니다.

 

그렇게 산 칙촉은 5주동안 당신께 전하지 못하고 아직도 냉장고에 존재합니다. 당신이 아픈 것 같을 때 걱정해서 무엇을 줄까

 

고민하다가 박카스를 챙겨서 의기양양 갔던 날도 기억합니다. 하지만 역시 전해주지 못하였습니다.

 

수업시간 주제가 그 쪽으로 흘러서 당신은 카페인을 마시면 어지러워하고 녹차나 간간히 마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마음 속에서는 박카스 안 전해주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제 소심함을 합리화하려는 것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제가 처음 과자를 줬을 때 제 마음을 깨달았고 그동안 나에게 거절을 해야한다는 부담감, 수업을 가서 제 얼굴을

 

보기 껄끄러워진다는 사실에 제가 말을 또 걸어올까 저를 착각하게 만들까 두려워 피한걸 수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도 않고 혼자 상상하고 착각하지 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수긍했지만 결국

 

그녀가 나를 피하는 것일 확률이 높다는 생각을 했고, 결국 마지막 날 번호라도 따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인 오늘, 그녀는 수요일과 같이 제가 있는 반대편에 붙어 길을 지나갔고, 7주간 지나가던 골목이 아닌,

 

처음으로 그보다 한 블록 낮은 골목으로 갔습니다. 처음 뒤에서 말을 걸었을 때 크게 깜짝 놀라던 당신이 기억납니다.

 

아무리 집중을 한다한들 결국 저를 봤을 것이고 저를 피한건 아닐까 생각을 하고 착각인지 사실인지 모르지만

 

결국 실패하였습니다. 혼자만의 상상으로, 아니 그녀가 그동안 지나가던 골목으로 갔어도 저는 말을 걸지 못했을 것입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저는 막상 하려던 순간 제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고, 말을 삼키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마지막이니, 더이상 볼 일이 없을테니 그녀가 부담을 느낄테지만 내 마음은 전하자는 이 이기심을 용기로 포장하고자

 

했지만, 그 어색한 골목으로 가던 당신의 뒷모습을 보며 달려갈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그동안 당신에게 다가가지 못하던

 

제 소심함을 배려심으로 포장하여 자기위로를 한 것일 뿐이었다는걸 느꼈습니다. 지금도 당신에게 달려가 말하지 못한 것을

 

조금씩 후회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마지막에 단 한 번만 이기적이고자 했던 생각 조차 이기적이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혹시나 당신이 그동안 내 마음을 알고 부담을 느끼고 피한 것이라면, 제가 없었다면 느끼지 않았을 감정이고 즐겁고 뜻깊은

 

7주간의 수업이 됐을테니까요. 어쨌든 최소한 겁쟁이였던 저는 당신에게 가지 못하고 6주간 그랬던거처럼 그저 힘없이

 

자취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그 전에 당신에겐 정말 죄송하지만 이름을 검색하다가 마이피누에서 동아리 모집글에서 당신의 이름을 찾게 되었습니다.

 

정말 반가운 마음에 조심스럽게 번호를 추가했고, 카카오톡에 뜨는 프로필 사진은 동명이인이 아니라 당신이 맞음을

 

증명해주었습니다. 너무나 반가웠고 기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손한 방법으로 얻은 번호는 의미도 없고 당신에게 연락한다는 건 예의도 없고, 또한 여성인 당신의 일상이

 

무서워지도록 만들 수 있다는 생각과 제 상상이 맞다면 껄끄러웠던 제가 연락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우실 것이기에

 

연락하지않고 삭제했습니다. 그리고 그저 접어두려 합니다.

 

이 글을 씀으로써 정말 마지막으로 이기적이고자 합니다. 혹시나 당신이 알아보시더라도 마지막으로 한번만 이해해주십시오.

 

 

그녀에게 용기를 내지못한 소심한 한 남자의 푸념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혹시 질책과 조언해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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