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긴글]어머니와 나

침착한 맨드라미2015.11.02 00:15조회 수 1242추천 수 2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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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잡기적인 글이고... 별로 재미없습니다. ㅎ 비슷한 경험 가지신 분들,,

이를 잘 해결하신 분들 있으시면 조언 한 마디 남겨주시면 새겨듣겠습니다. ㅎㅎ

 

--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사교성도 별로 없고, 머리가 좋다는 말을 여러 사람들에게 자주 듣긴 했지만

그걸로 인정 받고 싶어서 용을 쓰는 타입도 아니었어요.

제가 공부하는 이유는 딱 하나였던 것 같아요. 그저 1등을 해오면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니까,

1등을 하지 못하고 심한 욕설을 듣고 매를 맞고 억지로 공부를 해야했으니까.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았어요.

시험 기간에 학원에서 내주는 숙제 정도만 잘 해가면 1등은 항상 내 꺼였으니까.

평소에는 온갖 종류의 책과 게임에 빠져 살았어요. 글 쓰는 것도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는 올림피아드라는 시험에서 입상을 하게 됐어요. 시골 학교에서 개교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죠.

저는 아직도 거기서 무슨 상을 탄 건지도 정확히 잘 모르겠어요. 그냥 가래서 갔고, 풀래서 풀었죠.

시골마을에서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하던 제게 어머니가 건 기대는 원래 대단했지만,

이 사건으로 어머니는 자신의 열등감을 제가 풀어줄 수 있다고 확신하셨나봐요.

제가 다니는 학원의 수는 2배로 늘어났고, 회사를 다니던 어머니는 수시로 전화를 해 제 동선을 감시하기 시작하셨죠.

저는 어머니의 눈을 피해 학원을 빠지고 게임을 하기도 했고, 그러다 걸려서 크게 혼나기도 했죠.

질풍노도의 시기에 벌어질 수 있는 흔한 일이었던 걸까요...? 어머니는 그 때를 그렇게 회상하시지만, 글쎄요...

 

그런데 그 날은 정말로 아팠어요. 학원에 가기 5분 전까지 누워 있다가, 어머니께 전화를 했어요. 몸이 안 좋다고.

호통과 욕설이 날아왔죠. 차려 놓은 밥 먹고 빨리 학원 가라고.

그리고 다음날 병원에서 세균성 감염에 의한 병이라는 처방을 받았어요. 제가 걸린 병 중에 가장 큰 병이었죠.

원래 몸이 약했던 저는 정말 오랜 기간을 병원에 있었어요. 퇴원하고 나니 다시 올림피아드의 계절이 돌아왔더군요.

1차 시험에서 저는 불합격했어요. 어머니는 그간 공부를 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어요.

더 열심히 해서 내년에 졸업할 때는 꼭 금상 한 번 받아보자고 했어요.

불과 몇 달 뒤에 있었던 학교 내신 시험에서 저는 평균 40점을 맞았어요.

어머니는 이게 뭐냐고 물으셨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역시 불 같이 화를 내셨죠.

이 따위로 공부할거면 다 때려치우라고, 저를 두들겨패고는 제 게임 CD들을 전부 망치로 박살내버리셨어요.

그리고 한밤중에 저를 쫓아내셨죠. 이웃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 옥상으로 올라갔어요.

15살이었죠... 저는 그 때, 이대로 떨어져 죽어버리면 저 여자가 조금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을까?

그럼 내 기분도 좀 나아질텐데. 라고 생각했어요. 이 생각만큼은 10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네요.

 

저는 단순히 살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죽음으로써 저 여자의 잔인함이 만천하에 알려지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비난 받고,

그로 인해 저 여자가 후회와 부끄러움 속에 남은 여생을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랬어요. 하지만 실천할 용기는 없었죠.

곧 평점심을 되찾은 어머니께서 울며 저를 찾으셨고, 저는 다시 안락한 집으로 돌아갔어요.

어머니는 그날 제앞에서 대성통곡을 하셨어요. 자기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어떻게 이런 성적을 받을 수 있냐고 울며불며 소리지르셨어요.

본인이 그리던 장및빛 미래가 한순간에 박살나는 고통은 40대 초반의 성숙한 어른에게도 견디기 힘들었던 걸까요?

그 눈물은 열다섯살짜리 소년에게 많은 걸 느끼게 해줬어요. 가장 큰 건 이거였죠.

 

내가 망가지는 모습을 이 여자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구나.

그 뒤로 저는 평범한 성적을 유지했어요.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도 나오는 성적을.

그때마다 역시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셨지만, 저는 오히려 그것에 어떤 쾌감을 느꼈어요.

저 분노가 나보다는 내가 증오하는 저 여자를 더 상처입히고 있다는 걸 깨달아버렸죠.

이듬해 올림피아드 원서를 접수할 때, 저는 담임 선생님에게 응시하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담임은 당황했지만 알았다고 하시더군요. 분명히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을텐데,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시지 않으시더군요.

지극히 평범한 성적을 가지고 저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대학에 들어온 지금 돌이켜보면 성적이 아무리 평범했다해도

그 시절 KMO 메달을 가지고 있었던 학생이

정말 그 어떤 자사고, 특목고에도 지원하지 못 할 정도로 당시 고입 경쟁이 치열했었나? 싶더군요.

그래서 어머니께 말씀을 드려보니...

어머니께서는 그러한 특수한 고등학교가 있다는 것도,

그러한 고등학교는 따로 원서를 써야 했다는 것도 잘 모르셨던 것 같더군요. 그 때 참 많은 걸 느꼈습니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는 회사에서 1억에 가까운 연봉을 받는 스타가 되셨고,

이제 더이상 제가 어른이 다 되었기 때문에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지 않으신다고 선언하셨어요.

물론 성적에 대한 과민반응은 항상 있으셨지만, 예전보다 훨씬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했죠.

역시 저는 책과 게임에 광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성적은 언제나 평범했죠.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저는 명문 대학에 한 번 가보고 싶었어요, 그때가 되어서야 드디어!

부모님이 이혼하고, 어머니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시면서 저는 더욱 자유로워졌어요.

 

저는 그 때 처음으로 제 스스로의 동기로 계획을 세워 열심히 공부했어요.

무언가 성취해나간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됐죠.

좋아하던 게임도 전부 끊고, 유일한 취미는 TV를 컴퓨터에 연결해 집에 와서 영화를 한 편 보고 자는 거였어요.

하루하루 세운 계획들을 해나가면서 저는 제 목표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음을 느꼈죠.

그 해 수능에서 저는 정말로 좋은 점수를 받았고, 

그 작은 시골 학교에서 평소 70~80등을 맴돌던 저는 전교 10등 안에 들었어요.

C대 경영학과와 이 학교를 합격한 저는, 이 학교가 여러가지 지표에서 C대를 압도한다는 생각에 이 학교를 선택했죠.

 

참, 기쁜 소식일까요. 수능날 어머니께서 저를 찾아오셨어요.

만류하는 저를 굳이 집까지 태워주시면서, 내가 어쩌면 이 자리에 너를 데리러 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고 하셨어요. 왜냐하면 제가 수능치기 불과 몇 주전 두 분이 다시 재결합하셨거든요.

동생이 불량아들과 어울려 사고를 치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어요. 그 이유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제가 H대 경제학과를 불합격해 이곳에 오는 게 확정이 나자,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어요.

여기나 H대나 2류인 건 똑같지 않느냐고, 너는 항상 2류 밖에 안 되는 놈이었다고. 그래요,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런데 참 우습죠? 저는 어머니를 정말로 증오했지만, 저에 대한 어머니의 평가는 제 인생에 너무나도 중요했어요.

저는 제 손으로 고른 이 학교가 너무나도 좋았지만, 재수를 했고, 삼수까지 했죠. 과정은 방탕했고, 결과는 참담했죠.

삼수 시절 성적표로는 이 학교의 최하위과도 올 수 없는 성적이 나왔어요. 그제서야 저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죠.

그리고 참 이상하게도, 저는 아직도 어머니가 단 한 번이라도 제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이상하죠? 어머니가 제게 불가능한 기준을 요구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분노하고 혐오하면서도,

단 한 번이라도 그분이 저로 인해 행복하셨으면 하길 바래요. 이 감정은 뭘까요?

그래서 저는 참 한심하게도, 제 인생에 필요한 것은 몸을 누일 작은 방 하나와

제 인생을 이해하고 함께 술잔에 담아줄 몇 명의 친구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수많은 책과 영화 뿐임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아들이 크게 성공해서 부와 권력, 명예를 거머쥔,

그래서 그 부모도 영화롭게 만들어주길 바라는 어머니의 인생 목표를 위해 계속 위로 올라갈 노력을 하고 있네요.

그런 책이나 보고 하는 잡기는 본인 나이가 되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

20대 때는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사는 게 멋있는거라고 하시는... 우리 어머니.

제가 전화하다 기침만 좀 해도 걱정에 밤잠 못 이루시며

매일매일 괜찮냐고 물어보시며 결국엔 한약을 보따리째 싸오시는 우리 어머니.

어린 시절 수많은 큰 병으로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길 동안, 지극정성으로 우리 아들 간호하며

저보다 더 아파하시며 제 곁을 떠나지 않으셨던 우리 은혜로운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너무 싫은데, 그럼에도 저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네요.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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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애랑 인간관계는 분리하셔야죠
    빗나간 모정은 그리 낮선 현상이 아닙니다.
    효자라고 좋은 아들이라고 할 수 없고
    말썽쟁이라도 좋은 아들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죠.
  • 뭘 어떻게 하면 좋다는 거예요? 고3때 스스로 명문대에 가고 싶어하셨다면서요. 왜그랬어요? 어머니는 님이 잘 살아가면 행복해하시겠죠. 님 인생에 충실하세요. 엄마를 증오하건 말건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면 그러면 되자나요. 그자체가 내 꿈이 될 수도 있는거예요. 과거로 돌아가면서 자꾸 핑계삼지 말고, 내가 혹 나태하고 안주하고 싶어질 때에 어머니를 변명삼지도 말면 돼요.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거나 본인 스스로 성공하고 싶다거나 하는 꿈보다 그냥저냥 사는게 좋으면 그렇게 살아도 돼요 적당히 안주하며 한가롭게. 그것도 좋죠. 다만 그런 삶을 살 때 내가 이렇게 사는건 과거의 기억때문이라느니 하는 변명때문이 아니라 오직 내가 이 삶을 원해서라고 말해야 할 거예요.
  • 제가 어떤 말을 해드릴 수 있을까 싶지만...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자신의 삶을 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그게 어머니라고 해도요...제가 아는 가족이라는 건...성적이 1등이 아니더라도 남보다 특별하게 잘하는 게 있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라는 존재만으로 서로 사랑해주는 거예요. 바라고 충족하고....거기서 떠나서 본인이 무엇을 하고싶은지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엄청 저같네요. 엄마가 너무 밉고 나때문에 괴로웠으면 좋겠어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 저도 했고 마지막 글처럼 너무 밉지만 행복하게해주고싶다는 말 너무 공감돼요.
    근데 글쓴이님. 어머님께 지금 이 학교 다니고있고 이 회사 다니는것도 난 행복하다고 말씀드리세요! 우리엄마는 이제 체념하신듯! 그래 니가 좋으면 된거지ㅎㅎ라고 하시네요. 그리고 떨어져서 사니까 좋은 것 같아요.
  • 어머니의 인정을 받지못한 결핍은 평생을 간다고 하네요. 어머니를 용서해드려야헐거같아요. 글쓴이님은 자기 맘을 어느 정도 이미 잘알고계신거같아 다행인거같아요.
    얼마나 많은노력을 햇는데 잘은 실수에 허사가 되어버린거같아 슬프기도 하고. 어머니도 어쩔수없엇을거에요
  • 미움받을 용기 책한번 읽어보세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ㅜㅜ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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