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이 다 불명예 사퇴하고,
학내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화합을 통한 해결보다는 일방은 결정하고, 일방은 비난하는 식의 해결이 반복되는
작금의 사태를 볼 때 부산대학교 현 학내 민주주의는 결코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글은 학내 민주주의가 이렇게 성공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힘든 이유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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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정하듯 민주주의는 단순히 선거를 한다고 해서,
회칙에 민주주의를 선언했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명한 정치학자 로버트 달(R. Dahl)이 말한 것처럼
대의 민주주의는 그냥 두면 언제든지 소수 집단이 권력을 독점, 남용하는 과두제가 될 수 있으므로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원주의를 기반으로 다원화된 권력 집단이 서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학내 민주주의는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모두 총학생회라는 하나의 집단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총학생회가 원하는대로 스스로 회칙을 정하고 (입법권)
그에 따라 총학생회가 스스로 집행하고 (행정권)
그 결과까지 스스로 평가한다. (사법권)
라는 것입니다.
이건 사실 총학생회 구성원의 잘못이 아니라, 현 학내 민주주의 구조가 갖는 필연적 한계입니다.
다만 이러한 구조 하에서도 나름 성공한 민주주의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권력분립의 주된 목적은 결국 소수가 권력을 독점,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기 때문에)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총학생회가 권력을 남용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스스로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고,
자기 성찰적 운영을 한다면 성공한 학내 민주주의 사회는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총학생회 구성원도 본래 일반 학우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학생이기 때문에
플라톤이 철인에게 요구한 것처럼 남들과는 다른 엄격한 도덕성을 총학생회에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힘들다는 점,
더욱이 총학생회 활동에 따른 특별한 개인적 보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적용할 마땅한 근거나 동기조차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실제로 현 총학생회를 보면 "우리는 봉사직, 명예직이지 무엇인가를 이득을 바라는게 아니다."라는
인식이 일반적입니다.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나, 이러한 생각은 총학생회 내부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피해갈 혹은 느슨한 도덕적 잣대를 정당화 할 명분을 만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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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학내 민주주의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제 생각으로는
1. 현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 고쳐서 권력이 분립되는 새로운 형태의 학내 사회를 재형성 하는 것.
2. 총학생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구조적 한계를 받아들이고,
스스로에 대해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고, 총학생회라는 직위에 엄중한 책임의식을 가지는 것.
둘 중 하나는 되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둘다 현실적으로 매우 매우 매우 어렵습니다.
1번이 힘든 이유는 시스템 자체를 바꾸고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려면 수많은 학우들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하는데, 현재 학내 민주주의에 그 정도로 열정을 쏟을 학우는 아무리 많아봤자
전체 학우의 5%도 채 안된다고 생각됩니다.
2번이 힘든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현 학내 민주주의 사회는 총학생회에 누가 들어와도 온정주의에
쉽게 빠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이고, 이를 극복하려면 남들과는 다른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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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통해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학내 민주주의 실패에는 부산대학교 학생 전체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조상 소수 집단이 권력을 독점하는 구도임에도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적용 못하는 총학생회 뿐만아니라
모든 권력을 하나의 집단이 독점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개선하거나 적극적으로 견제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일반 학우들(당연히 저도 포함이구요!) 모두가 학내 민주주의 실패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故 고현철 교수님의 유서에 보면
"교묘하게 민주주의는 억압되어 있는데 무뎌져 있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현 부산대학교의 작은 민주주의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교묘하게 억압된 민주주의가 선거, 대표라는 명분 아래 권력이 독점되는 현 학내 민주주의라면
무뎌져 있는 건 총학생회 구성원을 포함한 부산대학교 학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대학 내 민주주의라는 것이 인생에서 볼 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진짜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진정한 민주주의"가 부산대학교 내에도 언젠가는 꽃필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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