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줄 알았는데

싸늘한 복숭아나무2016.08.07 04:46조회 수 6937추천 수 71댓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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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학생 저녁엔 고기집 아르바이트.
먹고 살기 위해 바둥바둥 살던 나에게 찾아온 너
술을 마셔서 그랬던 건지, 부끄러웠는지
'저기요, 저 정말 이상한 사람 아니구요..'
라며 운을 띄우기 시작해서 횡설수설 말을 하던 너에게
말귀를 잘 못 알아 듣는 나는
'네? 뭐 필요하신거 있으세요?' 라며 계속 반문하자 술냄새 가득하게 푸하하, 웃던 너.
'내일 술깨고 다시올께요.' 라며 인사하던 너. 우리의 첫만남.
다음날 퇴근은 몇신지, 기다려도 되는지 묻는 너의 얼굴에 묻어나던 진심. 생각보다 많은 너의 나이와 생각보다 적은 나의 나이.
두번의 영화와 여러번의 만남, 그리고 너의 고백.
망설이는 나에게 확신을 준 너와의 약 16분간의 통화.
그리고 1년 남짓했던 연애의 시작.
니가 동안이고 내가 노안이라 참 다행이야 아저씨- 라며 장난치면 아줌마라고 놀리던 너.
직장인이 대학생 만나도 되는거냐며 친구들에게 욕먹는게 세상에서 제일 기쁜 욕이라며 웃던 아련한 모습.


초라한 당신의 삶에 초대해서 미안하다며, 늘 나를 누구보다 예뻐해줬던 너, 어딜가도 나부터 챙기던 오빠이자 아빠같았던 너. 오빠덕분에 알게된 사람도, 알게된 곳들도 지금은 솔직히 가물가물해.


지하철역 떡볶이집, 새벽 5시까지 하던 고깃집, 정문 토스트집, 온천장 맥주집, 테라스 원, 정문 스타벅스, 시험기간이면 한번에 절대 다 먹지 못할 간식들을 가득 챙겨 중도앞에 서있는 니모습, 예대앞에서 운전이 서툰 학생이 오빠차 접촉사고 낸것, 북문 밥집. 셀 수도 없는 많은 기억들. 나의 대학생활엔 너, 아니 오빠가 참 많더라.


인연이라는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듯, 서로 삶에 지친 모습을 숨길 수 없게 되자 시작됬던 잦은 다툼과 느슨한 연락에 우린 서로에게도 지치기 시작했고, 많이 울고 많이 힘들었지.


많은 대화와 한숨으로 끝이난 우리의 관계에 내가 다치지 않기 위해서 sns, 바뀐 폰번호 등 모든걸 숨겼던 비겁한 내모습에 너는 원망도 했겠지. 근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너를 찾을 것 같았어.


근데, 오늘 우연히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기다리다, 반대편에 서있는 오빠를 봤어.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잘 살고 있는 모습보면 기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나더라. 뒷걸음질 치며 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보다 혹시나 니가 내가 우는 모습을 봤을까봐 그게 더 걱정이였어.



정말로 왜 울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오빠 나 정말 잘 살고있어 많이 여유로워 졌고, 살은 조금 더 쪄서 보기좋아졌고, 이제 병원도 안미루고 꼬박꼬박 가고, 저혈압도 많이 괜찮아졌어. 학기중엔 알바 안해도 될만큼 돈도 모아놨고, 약간 매운음식도 즐길줄 알게되고 술도 조금 마실줄 알게됬어. 밥 먹는 속도는 더 느려졌고, 니가 좋아했던 빵집은 왠지 안가게 되더라. 그리고 아직도 라면은 맛없게 끓여. 그것도 재주인데..

아 맞다 오늘도 친구들이랑 맥주 한잔 할때, 우리가 자주 앉던 자리에 앉았어. 신기하지. 그리고 일층 미용실 점장님이 오빠 이용권 많이 남았는데 왜 안오냐고 데리고 오라더라. 하하 그럴께요, 라고 말은 했는데 차마 못전했네. 이 글을 볼 수는 없겠지만 돈 아까우니까 머리 자르러가.


나도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 앞으로 마주치게 된다면 지금처럼 잘 살고 있는 모습 다시한번 보고싶다. 그땐 안울고 우리 처음 만난 날 니가 웃던거 처럼 환하게 웃어볼께. 너도 꼭 잘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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