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5.18 관련 글으로 또 다시 이정토 게시판이 난리가 났고
그에 뒤이어 익게도 한바탕 난리가 났죠. 자게도 난리날 뻔 했고.
뭐 저는 솔직히 이제 그냥 손 떼고 싶습니다. 그냥 정치가 싫증나요.
그렇지만 5.18은 단순한 정치 문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관심을 갖게 되더군요.
하지만 일단 이 글에선 5.18이 폭동이냐 민주화운동이냐에 대한 이야기는 자제하겠습니다.
제 의견은 엄밀히 말하면 '5.18은 민주화운동'이라고 보는 입장이지만,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닙니다.
5.18 관련 글을 올리시는 분들 중 몇몇 분께서 하신 이야기가 있었죠. 이게 바로 'Fact'라고요.
그런 분들께 묻습니다. 당신께선 정말로 'Fact'를 확신할 수 있습니까?
저는 전공이 사학입니다. 이미 마이피누 초기부터 몇 번 언급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역사가 정말 좋았고, 대학교에서 더욱 많이 배우고 싶어서 사학과에 왔습니다.
진학하고 나서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어렵고 넓은 역사학의 세계를 배우면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특히 올해는 정말 미치겠더군요. 1학기는 한문 원전, 2학기는 한문 원전 + 영어 원전...)
그래도 제가 사학과의 일원이란 걸 자랑으로 여기고 학과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게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왜 '사학'을 언급한 것 같습니까?
바로 'Fact' 때문입니다.
5.18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로부터 오래 되지 않은 과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연히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입니다. 그것도 아주 큰 의미를 갖고 있는 대사건이죠.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 역사가의 임무가 참으로 막중합니다.
아직까지 한국의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이기도 하기 때문에,
자료에 대한 판단 하나하나가 사건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바꿔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소위 'Fact'를 제대로 판별해내지 못할 경우 사건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그대로 유지하게 만들 수도 있고요.
이래서 역사가는 'Fact'를 다룰 때 상당히 조심스럽게 행동합니다.
자신의 판단 하나로 인해 사건의 진실이 완전히 바뀌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Fact'가 그대로 'Fact'가 될 수도 있지만,
'Fact'라고 믿었던 것이 'Fact'가 아닐 수도 있고, 'Fact'가 아니라고 믿었던 것이 'Fact'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 진실을 가리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게 지금 뭘 말하는건지 아시겠나요?
'Fact'를 섣불리 주장하는게 그만큼 어렵다는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5.18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Fact'를 믿으려 하는 편입니다만
(유네스코에 등재된 5.18 관련 기록자료를 포함해서 말이죠.)
이번에 저는 5.18을 단순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의 의견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것이 'Fact'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Fact'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토론을 하고자 한다면 자기가 믿는 'Fact'가 'Fact'가 아닐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자기 의견이 없으면 안되지만 그렇다고 자기 의견에 대한 맹신도 토론에 있어서 좋은 태도는 아니죠.
다만 북한 침투설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기는 했었고요(왜냐, 제가 이미 블로그를 통해서 깠던 내용이 있어서...).
그런데 5.18을 폭동일 뿐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그 의견이 절대 부정할 수 없는 'Fact'라고 했었습니다.
그에 대해서 저는 1차출처가 어디냐고 계속 캐물었었습니다.
왜냐고요? 출처를 보니까 단순히 네이버 지식인이라더군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자료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글에 나온 내용은 지금까지 제가 봤던 자료와는 너무나도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편향된 자료만 찾아본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답한다면, 나름대로 관심이 많아서 찾아볼 거 다 찾아봤습니다.)
그래서 출처를 요구했던 겁니다. 적어도 제가 찾아본 자료는 1차출처 다 밝혀놓고 시작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단 1차출처를 알기는 했는데... 그건 나중에 제가 따로 기록 찾아봐서 또 대조해봐야겠죠.
그건 나중의 일이고... 일단 시험 끝나고 나서 할 일이고...
다시 역사학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역사학에서 'Fact'를 밝힘에 있어서 자료를 활용하는 방법 중에 교차검증이란 것이 있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수집된 자료를 상호대조하면서 진실을 찾아나가는 것이 교차검증입니다.
대체적으로 교차검증시에 내용의 교차가 많을 수록 그 자료의 내용은 신빙성이 높게 취급됩니다.
반면 교차검증을 하는데 단 하나의 자료에만 수록되어 있고 다른 자료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내용이 있다면
그런 내용은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저도 솔직히 제 정치적 입장이 있습니다.
요새 이정토 게시판 보면서 그냥 짜증만 나고 정치 혐오증도 악화되어서 그냥 신경 끄고 살았지만
개인적인 정치적 입장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 정치적 입장과 안 맞는 관점에서 쓰여진 자료를 보는 것도 나름대로 고역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참조해야 합니다. 내 관점과 맞지 않는다고 취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편향이니까요.
제가 졸업 후에도 계속 역사학에 몰두할 것인지는 지금 와서는 불투명해졌지만, 적어도 지금은 역사학도입니다.
그렇기에 역사적 사건을 평함에 있어서는 최대한 편향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Fact'를 그렇게 확신하는 분들께서는 적어도 저 같이라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자료의 교차검증 한번 제대로 해본적이라도 있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이것까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Fact'가 'Fact'가 아닐 수도 있고, 내 관점과 다르게 쓰여졌던 것이 'Fact'일 수도 있다는 그것.
이거에 대해서라도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까?
'Fact'라는 말,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어떠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Fact'를 말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해 온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 앞에서 치열한 고민 하나 없이, 그저 자기 의견에 맞다고 'Fact'를 함부로 말하는 것은
제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도 한때는 'Fact' 말하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창피합니다.
고민 한번 해보지 않고, 연구 한번 해보지 않고, 그저 내 의견에 맞는 주장만을 신봉했던 시절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게시판에서 특정 사이트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계속 패러디하는 말이 있죠.
노무현 대통령의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라고.
그 말을 하고 싶네요.
'Fact'에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왔던 분들의 치열한 고민, 연구, 그리고 행동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단어를 함부로 써대는 것이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아셨음 합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