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인것 같지가 않다.
고등학교때는 먼 미래 같았고
대학교 입학해도 먼 미래 같았고
심지어 저번주에도 먼 미래 같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흐르고 있었고, 나는 부정조차 하지 않고 그저 모르고 있었다.
1년 9개월의 시간을 수치상으로만 알고있었고
그 시간이 아이를 두번 탄생시킬 시간임을 알고있었다면 그나마 피부에 와닿았을것이다.
2주전에는 입대 기념 여행을 갔다왔고
1주 전에는 최선을 다해서 쉬었으며
3일 전에는 입대 기념으로 먹고 싶은것을 마음껏 먹고,
2일전에도, 하루전에도 마음껏 먹고 놀았다.
아버지차의 옆좌석에 앉았다. 어머니는 뒷자석에 계셨다.
입대하기 정확히 1시간 전이건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 주변에 머리가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몇 있었으며
내 부모님과 똑같이 생긴 분들이 잔뜩 있었다.
그렇게 여전히 입대하는것을 자각을 하고 받아들이진 못한채
나는 그렇게 입대를 하게 되었다.
훈련소는 굉장히 바빴다. 그래서 시간은 지나보니 무엇보다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병때까지는 하루하루가 긴장이었다. 일거수 일투족을 평가받고 고기마냥 등급이 매겨졌다.
일병때는 열심히 하면서 주변에 동화 되도록 노력했다. 남들처럼 열심히, 남들처럼 유능하게.
선임과 간부들의 말은 모순투성이고 이치에도 안맞는 말이 많았지만, 나는 내가 맡은 일에만 충실했다.
일병때 까지 노역소의 노예마냥 일하였고, 군생활의 휴가만 보며 잠을 지새웠다.
내 선임과 담당간부의 기분이 곧 나의 결과였고, 겨울속 아무도 오지않는 부대의 정문을 매일 밤마다 지켰다.
그렇게 어느순간 상병이 되고, 그저 막연한 전역과 막연해진 사회생활을 꿈꾸며,
전역하면 여자친구도 생기고, 학점도 많이 받고, 알바도 해서 돈도 벌고, 주식으로 목돈이나 굴려볼까.
선임들이 줄어들고 후임들이 늘어나며
내 미래에 대해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것에 놀라며
내 과거에 대해 이곳에서 처럼 조금만더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후회하며
하지만 여기서나 전에나, 더욱 높은곳을 보기만 할뿐 언제나 중간에서 흘러가는것을 알지 못한채,
그렇게 병장 계급을 가슴팍에 달고 지나간 시간은 생각하지 않는다.
하염없이 흘러간 시간속 나는 그대로다. 인터넷에서는 군대가야 달라진다고들 한다.
나는 달라진게 있다면 몸이 조금 좋아진 정도? 그리고 항상 갇혀있기에 뭔가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모든 여자친구는 작대기 3개때 없어지고, 모든 친목은 전역과 동시에 옅어진다.
항상 똑같은 나날속, 이뤄온것은 덧없이 사라진다.
모든것이 무상하고, 꽃이 한번 더피고 질때쯤, 나는 사회로 나왔다.
사회는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더라.
모든것은 자기 자리속에서 잘만 돌아갔더라.
자리에서 잠시 빠진것은 나였을뿐, 내 자리도 너무나 덧없는 것이었다.
사랑도, 친구도, 꿈도, 돈도, 다시 사회에서 배제될때나 들어갈때나 덧없더라.
하지만 나는 그때도 잘만 살아있더라.
집에 온지 몇일 만에 군대에서의 목표는 흐려져 간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입대 전과 나는 똑같이 돌아간다.
다른게 있다면 나는 이제 기대를 하지 않는다.
학교를 와보니 선배들은 이제 없고, 얼굴이 까무잡잡한 아저씨들이 예닐곱명 있다.
수업을 들으니 동기들은 거의 없고, 얼굴 하얀 애들이 몇십명 앉아있다.
그렇게 혼자임을 익숙해지며, 나는 수업을 듣는다.
그렇게 2학년이 시작된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그저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만을 바라보지 않고 그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할 뿐이다.
청소년때의 용암같던 성욕은 찬찬히 사그라들고, 애인에 크게 목매이지 않는다.
그저 처음 입학할때 회색인간 같던 선배들이, 그자리에 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이 있어야 할지 새삼스래 느끼며,
그저 그렇게 보던 회색도 그렇게 되기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지 새삼스래 깨닫는다.
연애든 공부든, 운동이든 어느쪽에 두각을 보이는 사람은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하지만 자신은 이때까지 슬그머니 흘러옴을 알기에 더욱 기대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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