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어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지난번 공기업을 그만두게 된 이유와 같이
뭔가 대기업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이공계는 잘 가지 않는 분야이지만,
항공사의 항공권 혜택과
사택 제공
항공기 설계를 하면 전문성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
해외 근무를 할 수도 있다는 썰
나름 공기업같은 근무강도
참 수도없이 내가 이 회사에 가야한다는 이유를 만들어대며
대기업은 뭔가 다를거야 라며 스스로 세뇌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 부서를 배치받을 때 부터 불안했다
설계개발팀이라고 모두가 설계를 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당시 설계개발팀 내에는 여러가지 섹션이 있었다.
test를 하는 섹션, 윙팁을 만드는 섹션, 카고도어를 만드는 섹션, 설계체계 섹션 등
정확한 명칭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사업분야에따라, 또 주부서인가 지원부서인가에 따라 달랐다
우선 설계 및 해석을 하는 주 부서는 윙팁과 카고도어를 만드는 섹션이었고
test섹션은 시제품을 만들어 제품의 강도나 반복수행 등의 테스트절차를 기획 실행하는 섹션,
설계체계섹션은 전산/중량관리/형상관리/자료관리 등 전반적인 업무를 지원해주는 섹션이었다
공학도로서 전문성을 기르려면 최소한 설계를 하는 섹션에 들어가야 했으나
사람 일이라는게 참 마음대로 되지 않는게,
섹션 선택에서도 동기들과의 알고모르는 경쟁과 음모?에 의하여 운나쁘게도 설계체계섹션으로 배치받게 되었다
사회는 냉정하다고 했던가,
원래 나는 설계쪽 섹션을 희망하여 그쪽으로 가기로 내정되어 있었는데
동기 중 하나가 몰래 면담을 하여 자기는 꼭 A섹션으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를 했다나 뭐라나
그래서 마지막날 갑자기 예상과 달리 섹션이 바뀌면서 꼬여버렸다
사실 설계는 석사이상이 되어야 항공기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해석업무를 맡게 되고
설계업무는 대졸 중 소수만이 갈 수 있었기 때문에 기사자격증도 없고 별다른 경쟁력이 없는 나로서는
밀려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중량관리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 중량관리라는 일은 편제(man hour)가 1이 안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한 사업의 중량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항공에서 제조하고 있는 모든 제품들에 대해서 관리를 하게된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자투리일거리도 맡게 된다 자료관리 같은것들..
그러다보니 시간이 지나도 섹션을 이동하기가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그러했다
애초에 대한항공에 입사할 때 생각했던 나의 진로계획이나 전문성을 갖추겠다는 생각이 허무하게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반골기질이 있는 나로서는
왠지 모르게 피지배자가 된다는 기분이 싫었다.
영원불멸의 회장가문을 위해 한평생 열심히 일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었다
막상 입사 전에는 우리나라의 항공기술에 기여하고 어쩌구..하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그런 생각은 이미 다 없어지고 없었다
나랑 동갑인 회장 딸이 50대 아저씨에게 90도로 인사 받고 이런걸 보니 뭔가 내키지도 않았다
또한가지,
대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직원들이 열심히 한다거나 업무를 효율적/효과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치열한 대기업(삼성 등)에서는 어떤 식으로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뭐 그걸 알기위해서 여기저기 이직하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느정도 사기업의 특징적인 면을 파악을 하였고,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닐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회사는 그저 회사일 뿐이다. 회사는 개인의 이상실현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고, 모든 회사직원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도 없다
누군가는 분명 해야할 일이 있는 것이고 그럴때마다 보직을 갑자기 바꾸기도 하게 된다.
전문성을 기르려면 학위를 더 따거나 전문직을 해야 했던 것이다.
난 참 어리석게도 "XX회사 진짜 좋다" 라는 말을 두번이나 곧이 곧대로 믿어 버렸던 것이다
좋다라고 하는게 여건이 좋은건지, 급여가 좋은건지, 업무가 좋은건지
뭐가 좋다는것인지도 제대로 생각을 해보지 않고 그냥 좋으니까 좋은가보다 하고 덜컥 취직을
그것도 두번이나 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다닌 공기업이나 대한항공이 나쁜 회사라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다닐만한 회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취직을 선택하기 전에 충분한 고민을 한 것인지
그저 다른 진로를 선택할 자신이 없었기에 내가 선택가능한 대안 중에서 할만한 것을 한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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