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소 원론적인 얘기입니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권위주의적인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돌려 말할 것도 없이 박정희가 그 주인공이죠.
과연 그가 경제성장률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쳤는지 평가하는 것은 어렵지만 아무튼 박정희가 집권했던 시절에 경제규모가 매년 성장하긴 했었어요.
제 의문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흔히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고정관념처럼 그때는 저 역시도 '권위주의적 정부가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하여 경제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부작용도 있었지만)'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자동차산업을 육성하고자 할 때에 그 산업이 수익성이 있는지 평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자본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공장 부지는 어디에 위치할 것인지, 그러면 그 지역에 원래 살던 주민들에게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등등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토론과 합의로 일을 진행하다보면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도 길어지고 그에 따라 비용도 점점 커진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경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을 만들 적에도 이에 반대하는 의견이 굉장히 많았지만 박정희는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혹은 설득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밀고 갔죠.
비록 부작용은 있을지라도 많이 배우신 고위 관료들이 최적이라고 생각하는 선택지를 고르고, 이 결정에 맞추어 신속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 아무튼 성장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이것이 개발독재를 옹호하는 논리였습니다.
그렇게 얘기했더니 친구가 반대 의견을 내더라고요.
아니다! 정부가 그만큼의 권위를 유지하려면(정부가 마음먹은 것을 불도저같이 마음대로 밀어부칠 힘을 가지려면) 공권력을 동원해서 국민들을 감시하고 반대파를 잡아다가 고문하고 처형하며 자기 심복들의 충성심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저지르는 비리를 눈감는 등의 사회적 비용, 그리고 부작용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등 - 소위 말하는 독재비용을 생각해보면 보면 오히려 민주주의보다 비용이 더 든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만약 박정희가 독재를 하지 않고 완전한 민주주의를 했었더라면 오히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이 더 빨랐을 것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때 저는 무어라 반론하고 싶었지만 반론할 수가 없었습니다. 원체 순발력이 느린 편이기도 하고 머리회전이 빠르지도 않거든요. 무엇보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논리는 없는데 반론은 하고 싶다. 그건 제가 인지부조화를 일으켰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억지 반론은 하지 않고 곰곰이 생각할 거리로 남겨 두었습니다. 그리고 일단 개발독재가 반드시 유용할 거라는 제 의견도 잠시 접어두었습니다.
(서로 이런 태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오래도록 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 이후로는 평소엔 일하느라 바쁘고 이 친구랑 만나면 노느라 바빠서 이 이야기를 더 진행시키지는 않았지만 저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제 생각도 많이 바뀌었고요.
케케묵은 떡밥이긴 한데 약간 다른 각도에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아마 이 질문에 대한 견해가 대한민국 현대사를 인식하는 기준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적 의사결정과정에 소요되는 비용과 독재로 인한 비용,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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