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54회 변리사 합격자 기계공학부 12학번 김주성이라고 합니다. 하기 수기는 고분자공학과 86학번 김지환 선배님의 수기입니다. 변리사공부를 하시는분들은 공부방법 등에 대해 참고하시면 될 것 같고, 타시험 준비 하시는 분들은 마음가짐 및 멘탈관리법 등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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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전 15기.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
발표 며칠 전 지금은 학성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되어 있는 울산 왜성에 올랐습니다. 저는 높은 성벽을 올려다보며, 내 인생이라는 성을 너무 높고 견고하게 쌓아 이제껏 아무리 발버둥 치며 기어올라도 그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습니다. 남들은 자신에게 맞는 성을 쌓아 성 안에서 충분히 생을 즐기고 있는데 나는 왜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으로 괴로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며칠 후 놀랍게도 그 성 안에 당당히 입성하여 지나온 여정을 눈을 감고 때론 울며 때론 웃으며 하나씩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1. 들어가며
우선 저의 경우 초장수생에다 최고령합격자라는 점에서 저의 방법을 여과 없이 그대로 답습한다거나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미리 드립니다. 한참 지식을 습득한 시기는 과거이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과 다소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20년의 수험기간과 14전 15기(8번의 1차 합격과 15번의 2차 시험)의 결과물로 최고령으로 겨우 변리사합격증을 얻게 된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입니다. 이런 전력은 무덤까지 가져가려 했으나, 저의 이야기로 용기를 얻게 될지도 모를 수많은 후배들을 위해 저의 부끄러운 과거를 밝히려 합니다. 수기를 쓰며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오류도 있을 수 있으나 최선을 다해 정확히 기술하려고 했습니다. 시험에 대한 테크닉 보다는 초장수 최고령합격자로서 수험생들에게 이렇게 허술한 사람도 합격할 수 있다는 것으로 용기를 드리고자 이 글을 씁니다. 이 글은 수석합격자의 고득점 비결이나 최연소합격자의 속성 합격비결이 아닙니다. 단지 장기간을 어떻게 견디고 그 결과를 얻었는가라는 부분에 더 주의를 기울여 읽어 주십시오.
2. 수험 여정
(1) 입문
자연계연구요원 특례병으로 화학회사를 다니던 1992년경, 신문에서 어느 주부가 육아를 하면서 변리사시험에 수석 합격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순진한 생각입니다만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수웅 변리사님의 책 등을 구입하여 저녁이나 주말공부를 하며 이후 1차 시험을 수회 쳤습니다. 말이 공부이지 회식과 주말나들이 때문에 젊은 총각 회사원의 저녁, 주말공부는 말뿐이었습니다. 1995년 결혼 후 다시금 장래에 대해 고민했고, 이과출신의 최고의 전문직에 제대로 도전하고자 하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최장 2년을 투자할 생각으로 1997년 9월 30일에 겁 없이 회사에 사표를 내고 바로 다음날부터 전업 수험생이 되어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2) 시험 경과의 정리
1998년, 2000년, 2002년, 2004년, 2006년, 2009년, 2014년 그리고 2017년에 1차 시험에 합격합니다. 2008년에는 1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시험을 1년간 접었으며, 2011년과 2012년은 테이크아웃 커피점과 매점을 하며 2년간 거의 접었으며(이 때에도 1차 시험을 시도는 했었습니다.), 2013년 초에 다시 시작했으나 겨우 영어점수만 획득하고 1차 시험에 낙방하게 됩니다. 1차에 낙방한 충격으로 류웅선 물리, 최성윤 생물, 함성배 민법과 산재법 강의 등 1차 강의를 오랜만이거나 처음으로 수강하며 제대로 준비하여 무난하게 2014년 1차 합격을 합니다. 2016년 1차 준비 기간에는 오랜 수험생활에 지쳐 공부를 소홀히 했던 것 같습니다.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9년, 2010년, 2014년, 2015년 그리고 2017년에 2차 시험을 칩니다. 5년 동안 만을 제외하고 2차 시험을 응시한 셈입니다. 1998년 처음 치른 2차 시험은 당시 1차 합격 발표 후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으나 한 달 정도의 시간 밖에 없어 당연히 떨어졌고, 그 후 매번 2차 시험을 치고 나서는 걸릴 것 같다는 생각과 떨어지면 그만둔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쉬었습니다. 그러다 2차 불합격 발표가 나면 1주일 정도 방황하다 다시 책을 잡았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 같은 사이클이었습니다. 2010년까지 저작권법을 선택과목에 포함하거나 택하였고, 2014년부터는 유기화학을 선택과목으로 하였습니다. 이번 시험 이전 2차 시험은 평균 0.42점, 평균 1점, 평균 1.17 및 2점대 수회 등의 점수 차로 낙방하였습니다.
2011년경 까지는 매년 수개월 이상을 집을 떠나 신림동에서 수험생황을 했습니다. 집을 비운 기간이 길어 아내와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3) 마지막 시험 준비
올해 마지막 시험을 돌아보겠습니다. 모두 인강으로 공부했습니다. 지방이라서 다른 방법은 시간, 비용, 체력 면에서 비효율적이었습니다.
2016년 1차 시험에 불합격한 후 2016년 6월까지는 2차 시험공부를 했습니다. 유기화학은 가농 교재로 김태환 변리사님 기본이론 강의를 들었고, 민소법은 최평오 교수님의 2차 기본이론과 사례강의를 들었습니다. 유기화학의 경우 가농 교재에다 솔로몬, 맥머리, 스미스 문제를 추가한 서브노트가 있어서 거기에 새로운 내용을 조금씩 추가하며 공부했습니다. 민소법의 경우 이시윤 교수님 교과서에 핵심요론 페이지를 병기하여 두 교재를 연계시키면서 공부했습니다.
2016년 7월부터 제54회 시험 1차 준비에 들어갑니다.
물리는 류웅선 선생님의 강의를 이전에 들으면서 노트 정리를 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빛과 파동, 현대물리학, 전자기학 특강을 추가로 들으며 공부했습니다. 화학은 서형석 선생님의 기본이론, 생물은 최성윤 선생님의 강의 이전에 들어 새로운 생물 교재에 정리가 되어 있어서 객관식문제풀이 강의를 추가로 들어 보충했습니다. 그리고 박준희 선생님의 지구과학을 수강하였습니다.
민법의 경우 이전에 워낙 함성배 선생님의 강의를 많이 들었던지라 이미 정리되고 포스트잇에 사건 선도까지 그려 붙인 구판 민법강의(김준호 저)를 1회독한 후 알짜민법을 새로 구입하여 반복 학습하였습니다. 산재법의 경우, 별도의 강의를 듣지 않고 2016년 12월경이 되어 임병웅 교과서, 박종태 교과서 그리고 김인배 교과서를 구입하여 본 후 그 객관식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특허법만은 도해를 보았으나 제게 맞지 않아 이후 교과서를 보았고, 상표법의 경우 오로지 교과서만 더 읽었습니다. 저의 경우 교과서 체질인가 봅니다. 여러분도 자기에게 맞는 교재를 택하시면 됩니다.
1차 시험 후 발표 때까지 공부하기 힘들었습니다. 합격을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두 문제도 절실했습니다. 논란이 되는 민법문제 때문에 김준호 교수님께 메일까지 보내고 답장을 받아 이의신청을 내었습니다. 다만 그와 관계없이 2개 차이로 합격 후 2차공부로 들어갑니다.
1차 발표 전에 최평오 교수님의 2차 기본이론을 수강하고, 유기화학은 별도 수강 없이 서브를 한 번 훑어보았습니다. 1차 발표 후 상표법은 정진길 변리사님의 2차 기본이론을 수강하며, 서브에 정리했고 판례공부를 했습니다. 특허법의 경우 별도의 강의 없이 이음특허법을 보았습니다. 그 후 최평오 교수님의 개정특강으로 교과서를 보완하고, 핵심요론 구판을 교과서에 옮겨 적어 단권화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태영 변리사님의 특허법특강으로 최근 이슈를 보강했습니다. 사례집은 각 과목마다 하나씩 챙겨 봤으며, GS 자료는 지인을 통해서 몇 구해 봤으나, 대학 특강은 구경도 못했습니다. 지방에서 혼자 공부하다시피 하여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사실 서울에 올라가서 GS 실강을 듣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스스로 나이에 위축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아예 인강으로 대체했습니다. 물론 2015년 까지만 해도 주말에 올라가서 3과목 GS를 수강했습니다. 비용과 시간을 아끼기 위한 최선책이었습니다만 피곤하여 효율은 최저였습니다. 정말 저의 이 방법은 권하지 않겠습니다. 결국 오로지 인강만으로 공부하였고, 답안을 써보는 시간이 극히 적었습니다. 지방이라 스터디를 할 여건이 안 되고, GS 실강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3법 점수를 낮게 받는 원인이 되었다고 봅니다.
(4) 마지막 시험에 임하여
첫날, 특허법에서 FRAND 선언 문제가 나왔고 사건의 결론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생각대로 합당한 결론을 내었는데 그제 다시 보니 답은 일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12페이지 정도를 썼습니다. 상표법의 경우 1번 문제에서 곤란을 겪었습니다. 나중에 줄 사이에 작은 글씨로 밀어 넣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12페이지 정도 쓴 것으로 기억합니다. 두 과목 모두 시간 부족에 정답을 제대로 몰랐으니 양도 적고 답도 많이 틀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허법 44점, 상표법 40점. 첫 날 숙소로 돌아와서 망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허름한 호텔방에서 밖을 보니 상당히 높았습니다. 극단적인 생각이 남의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갖고 고향에 돌아가면 이제껏 20년의 허송세월을 어찌 할 것인가. 아 모르겠다 하며 8시경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았습니다.
둘째 날, 오히려 잠을 푹 잔 후라 맑은 정신으로 시험에 임합니다. 민소법은 평이하게 출제되었습니다. 14페이지 정도를 쓴 것 같습니다. 무난하게 썼는데 역시나 느린 필속과 연습 부족으로 점수는 53.33점이었습니다. 유기화학에서는 작은 문제가 많아 하나씩 시간을 다투며 풀었습니다. 마치기 직전까지 딱 4점짜리 한 문제를 남기고 다 풀었습니다. 생성물과 설명을 묻는 문제였는데 마치기 몇 초 전에 생각나서 생성물과 올쏘위치라는 네 글자로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답을 맞춰보지 않아서 그냥 최대 98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설명문제 등에서 감점이 이루어져 82점을 얻었습니다. 저는 시험 후 발표 때까지 답을 맞춰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몇 해 전 대박이 났던 모 과목이 어려웠다는 말을 듣고 올해는 유기화학 고득점이니 특허 상표만 과락이 아니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특허 상표의 과락여부는 전혀 알 수 없어 발표하는 그 날 9시까지 저를 괴롭혔습니다. 결국 커트라인을 넘어 합격자의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재작년 0.42점 차 불합격으로 선택과목에 대해 가졌던 불만은 이제 옛 얘기가 되었습니다. 새로이 시행되는 P/F 제도로 선택과목 불균형은 이제 해소되리라 기대해 봅니다.
3. 1차 공부방법
(1) 산업재산권법
약 10년 전 몇 년간 모 학원에서 1차 모의고사출제를 했습니다. 그 때 문제를 만들면서 느낀 점은 수험생들에게 틀리게 하는 포인트를 찾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지간한 것은 그 포인트를 발견하고 맞출 것 같은 두려움 속에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결국 객관식 문제를 푸는 것은 조문이나 판례의 핵심이 되며 자칫 놓치기 쉬운 부분을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허법은 판례보다 조문이 중요하고, 상표법은 조문보다 판례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디자인보호법은 조문과 심사기준을 같이 봐야 합니다. 판례의 경우 출제자가 수험생을 틀리게 유도하는 것이 힘듭니다. 판례를 변형하면 아주 어색해 져서 오답임을 쉽게 알 수 있으나, 조문은 변형해도 세심하게 공부하지 않은 수험생은 쉽게 속습니다.
결국 조문을 꼼꼼히 공부하여 암기하는 것이 1차 산재법공부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모의고사문제를 만들던 시기에 산재법은 거의 틀리지 않았습니다. 최근의 시험에서 제가 틀린 문제를 확인해 보면 조문 문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2) 민법
저는 교과서를 깊이 공부하고 다시 알짜를 공부한 후 객관식 문제집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저의 취향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시험의 특성상 그리 어려운 문제가 출제되는 것이 아니 점에서 알짜민법과 객관식 문제집을 무한 반복하는 방법도 괜찮다고 봅니다. 이는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3) 자연과학
과학고 나오신 분들은 전략과목이겠으나, 그 외의 경우 조금은 방어과목일 것입니다. 저는 모의고사 때에는 상위권이었으나, 실전에서는 당황하여 점수를 잘 받지 못했습니다. 시간 부족으로 항상 50점대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자연과학이 방어과목이라 하여 과거 물리를 버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물리도 다소 쉽게 출제된 적도 있는바 절대 버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4) 기타
1차 시험을 친 후 게시판에서 당락을 점치며 허우적거리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의 경우 올해 그렇게 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 같습니다.
4. 2차 공부방법
(1) 특허법과 상표법
이전에 특허법과 상표법에 자신 있던 시기가 있었으나, 이번 시험에서 저조하여 어드바이스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P/F 제도가 되면 두 법은 아주 중요과목이 되는바 열심히 깊게 공부해야 할 듯합니다.
(2) 민소법
저는 지난 20년간 오로지 이시윤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렇다고 교과서 중심 공부 때문에 장수를 했다고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최평오 교수님의 핵심요론과 같은 보조교재를 써서 교과서를 단권화하는 것이 최적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의 경우 필속이 느리고 쓰는 연습을 게을리 하여 고득점을 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민소법에서 만큼은 40대 초반까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나 나이가 들면서 그 점수도 계속 떨어졌습니다.
(3) 유기화학
유기화학은 저의 전략 과목이라 할 것입니다. 과거 저작권법을 택했을 때 잘하면 65점, 못하면 60점의 점수를 늘 받아왔습니다. 무난한 점수이나 합격에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몇 년의 시간을 감수하며 이과과목인 유기화학으로 갈아탔습니다. 물론 아쉽게도 최근 저작권법도 70점 이상 받으시는 분이 있어서 바꾸지 않았어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가농교재로 하는 김태환변리사님 강의의 노트를 손으로 써서 서브노트를 만들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변리사님이 칠판에 수기로 판서를 하셔서 그대로 받아 적었는데, 활자 보다는 수기로 쓴 것이 훨씬 기억에 잘 남았습니다. 그리고 솔로몬, 맥머리, 스미스 세권의 연습문제를 풀고 틀린 것은 표시를 하고 재차 틀린 것은 다른 색으로 표시하는 식으로 점차 모르는 문제를 줄여갔습니다. 최종적으로 남은 문제는 서브노트에 첨가했습니다. 그 외 GS나 기출 문제 등도 중요한 것은 서브노트에 추가했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최종 시험 몇 달 전부터는 두 권의 서브노트만 눈으로 계속 훑었는데도 문제 푸는데 지장이 없었습니다. 사실 시험 후 모범답안을 보지 않고 자체적으로 판단해 본 결과이지만 이번 문제 모두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5. 기타 공부방법 조언
(1) 선택과목 선정
이제까지는 선택과목이 승부를 결정했기 때문에 몇 년이 걸리더라도 고득점을 할 수 있는 이과과목 그 중에서도 다수가 선택하여 강의와 자료가 풍부하고 예측가능성이 있는 과목을 추천하였습니다. 다만 자신 있는 이과과목이 있다면 그 과목도 좋습니다. 후배 중에 재작년에 약품제조화학으로 95점을 받은 약대생이 있습니다. 저는 저작권법을 처음부터 선택하는 바람에 수험생활이 길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일주일 공부한 저작권법 시험에서 51점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달콤한 열매가 20년이라는 시간의 굴레를 씌우게 될지 그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70점대 초반까지 받아본 적이 있으나, 문과과목 특성상 잘하나 못하나 60점대 선에서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또한 문과과목은 점수를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후 유기화학으로 바꾸었습니다. 재작년 유기화학을 치고 나서 저는 답안 검토 결과 최하 65점에서 최고 70점대 후반까지 바라봤고, 75점일 확률이 제일 높다고 예측했습니다. 실제 71점 대였습니다.
이제부턴 P/F제도가 들어오는데, 사실 과목선택에 조언이 어렵습니다. 사견으로는 이제껏 하시던 분들은 하던 과목을 하면 되고 새로이 진입하시는 분도 상기한 이전의 선택기준과 그리 다르게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올해 디자인보호법의 결과로 볼 때 문과과목 선택에는 일단 신중하시길 바라나, 어느 정도 실력이 되시는 분은 시간 절약을 위한 무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제껏 저작권법을 하면서 이득을 본 것은 한 달만 공부해도 충분하다는 점입니다. 즉 선택은 여러분 자신의 몫이고 정답이 없습니다.
(2) GS와 스터디
이전에는 스터디가 필수였습니다.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다고 봅니다. 학원 GS가 활성화되어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GS 만으로 쓰는 연습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멘탈 관리나 정보교환 등을 위해서는 정식 스터디든 밥터디든 스터디를 한다는 것은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스터디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면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는 말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정보나 이런 부분은 학원이나 지인 등을 통해 취득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공부기간 초중반에는 신림동에서 스터디를 거의 쉬지 않고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울산에서 공부하게 되고 나이가 드니까 혼자서 공부하게 되고 GS도 거의 못하게 되었습니다. 합격은 그 동안의 스터디나 GS 등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혼자서 지방에서 인강 만으로 공부해 합격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이번 시험을 준비하며 시간, 경제, 체력적 이유로 GS실강을 한 번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쓰는 연습을 거의 하지 않았고 그래서 3법 점수가 낮습니다. 반드시 멘탈 강하신 분은 혼자서, 아니면 스터디나 GS를 통해서 수험 기간 내내 쓰는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전 매일 1시간인지 2시간인지 쓰던 시절 독서실 책상 앞을 답안지로 꽉 채우던 당시, 3법 GS 8회 중 2회 정도는 1등을 했습니다. 항상 채점답안 내어 주면 화투장 보듯 모범답안을 조심스레 쪼던 기억이 납니다. 내 글씨인지. 결론은 쉬지 않고 쓰라는 것입니다. 하루키 소설 ‘댄스댄스댄스’에서 주인공이 그냥 계속 춤추듯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쓰다보면 언젠가는 합격이라는 결과물을 얻을 것입니다.
(3) 멘탈관리와 다시 일어나기 - 특히 장수생 분들에게
공부하다보면 어느 땐가 슬럼프가 올 수 있습니다. 이 때 저는 정면 돌파의 방법을 썼습니다. 공부를 더 하여 실력을 올리면 슬럼프가 사라졌습니다.
저는 오랜 기간 공부했습니다. 어떻게 매번 2차 시험에 떨어지고 다시 책을 잡을 수 있었느냐고 묻곤 합니다. 막다른 곳에 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다른 것을 할 의욕도 용기도 없는 상황이랄까요. 저는 다른 분에게는 이런 상황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인생은 다양한 버스 노선이기 때문에 꼭 저의 노선을 따라오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저와 같은 상황에 이미 놓여 있다면 다시 공부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책을 잡으시길 바랍니다.
소위 4수를 넘어 장수생이 되면 자꾸 비교를 하게 됩니다. 남들과의 비교 예컨대 회사에 들어가서 자리 잡은 친구와의 비교, 몇 년 전에 시험을 접고 다른 일을 시작한 가상의 나와의 비교 등을 하게 됩니다. 이런 비교를 하지 마십시오. 이미 지난 일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이런 비교를 하십시오. 열심히 공부하여 시험에 붙은 미래의 나와 시험에 실패하여 우울해 할 나, 이 둘만을 비교 대상으로 삼으십시오. 아무리 장수생으로 시간을 소모하였더라도 같은 시간을 써서 불합격한 나보다는 붙은 나가 더 좋을 것 아닙니까?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번 2차 시험에서 첫날 시험을 완전히 망쳤습니다. 바로 짐 싸서 내려왔다면 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It ain't over, till it's over. 요기 베라의 이 말을 아주 좋아합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시험은 네 과목 점수로 판가름 나니까요.
6. 마치면서
격려해 주신 여러 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더 열심히 해서 합격하라고 한 분들도 물론 고맙지만, 이제 많이 했으니 다른 길을 찾으라고 하신 분들도 그 당시 서운했지만 다 저를 아끼는 마음에서 하신 말씀이기에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20년을 거의 직장 없이 보내는 저를 꿋꿋이 지켜낸 아내에게 이 생을 바쳐서 사랑하겠노라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너그 아부지 머하시노(너희 아버지 뭐하시냐. 제가 그래서 ‘친구’ 영화를 제일 싫어합니다. 또한 ‘대기만성’이라는 저의 사주를 항상 언짢아했습니다.) 라는 물음에 항상 쭈뼛쭈뼛했을 두 딸에게 미안했고, 그럼에도 아빠를 인정해 준데 대해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 전합니다. 이제는 새해 떠오르는 해, 보름달, 돌할매, 별똥별 보면서 아빠 변리사합격을 기원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합격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하고 수험 기간 돌아가신 든든한 저의 배경이었던 아버지, 항상 우리 김 서방 시험되어야 될 텐데 라고 기원해 주신 장모님께 죄송했다는 말씀드리고 합격증 들고 일간 묘소를 찾아뵈려 합니다. 항상 사위를 믿어주시고 끝까지 하라고 등 두드려 주신 장인어른, 감사드리고 가수데뷔도 하시는 등 노년의 활동적인 모습에 존경을 표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백수생활을 안타까움과 부모의 업보로 여기며 이제껏 노심초사해 오신 어머니,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늦게나마 합격되어 죄를 덜었으나, 오히려 저의 갑작스런 합격소식이 충격이 되어 어머니 건강을 해치는 것 같아 요즘 이 불효자가 걱정이 됩니다.
인생이 반드시 효율적일 수만은 없습니다. 단기간에 합격해야 하고 몇 년을 넘겨 승산이 없으면 다른 길을 찾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인생에 법조문을 적용하지는 않고, 승산은 불확정 개념이라 정답은 없다고 봅니다. 평생을 해서 합격해도 그 나름의 의미는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 간의 설움을 요 며칠 동안에 다 해소했나 봅니다. 축하를 받고, 수기를 쓰고, 설명회발표를 하는 등, 이런 것들만으로도 지나간 세월의 보상을 다 받은 기분입니다.
합격의 일등공신은 뭐니 뭐니 해도 재도전의 용기를 주고 무한한 사랑으로 뒷받침을 한 아내입니다. 아내를 위해 저는 매일 아침 카페라떼 한잔을 바치고 있으며, 글을 쓰는 어깨너머로 저의 소박한 커피를 마시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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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전 15기.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
발표 며칠 전 지금은 학성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되어 있는 울산 왜성에 올랐습니다. 저는 높은 성벽을 올려다보며, 내 인생이라는 성을 너무 높고 견고하게 쌓아 이제껏 아무리 발버둥 치며 기어올라도 그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습니다. 남들은 자신에게 맞는 성을 쌓아 성 안에서 충분히 생을 즐기고 있는데 나는 왜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으로 괴로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며칠 후 놀랍게도 그 성 안에 당당히 입성하여 지나온 여정을 눈을 감고 때론 울며 때론 웃으며 하나씩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1. 들어가며
우선 저의 경우 초장수생에다 최고령합격자라는 점에서 저의 방법을 여과 없이 그대로 답습한다거나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미리 드립니다. 한참 지식을 습득한 시기는 과거이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과 다소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20년의 수험기간과 14전 15기(8번의 1차 합격과 15번의 2차 시험)의 결과물로 최고령으로 겨우 변리사합격증을 얻게 된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입니다. 이런 전력은 무덤까지 가져가려 했으나, 저의 이야기로 용기를 얻게 될지도 모를 수많은 후배들을 위해 저의 부끄러운 과거를 밝히려 합니다. 수기를 쓰며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오류도 있을 수 있으나 최선을 다해 정확히 기술하려고 했습니다. 시험에 대한 테크닉 보다는 초장수 최고령합격자로서 수험생들에게 이렇게 허술한 사람도 합격할 수 있다는 것으로 용기를 드리고자 이 글을 씁니다. 이 글은 수석합격자의 고득점 비결이나 최연소합격자의 속성 합격비결이 아닙니다. 단지 장기간을 어떻게 견디고 그 결과를 얻었는가라는 부분에 더 주의를 기울여 읽어 주십시오.
2. 수험 여정
(1) 입문
자연계연구요원 특례병으로 화학회사를 다니던 1992년경, 신문에서 어느 주부가 육아를 하면서 변리사시험에 수석 합격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순진한 생각입니다만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수웅 변리사님의 책 등을 구입하여 저녁이나 주말공부를 하며 이후 1차 시험을 수회 쳤습니다. 말이 공부이지 회식과 주말나들이 때문에 젊은 총각 회사원의 저녁, 주말공부는 말뿐이었습니다. 1995년 결혼 후 다시금 장래에 대해 고민했고, 이과출신의 최고의 전문직에 제대로 도전하고자 하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최장 2년을 투자할 생각으로 1997년 9월 30일에 겁 없이 회사에 사표를 내고 바로 다음날부터 전업 수험생이 되어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2) 시험 경과의 정리
1998년, 2000년, 2002년, 2004년, 2006년, 2009년, 2014년 그리고 2017년에 1차 시험에 합격합니다. 2008년에는 1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시험을 1년간 접었으며, 2011년과 2012년은 테이크아웃 커피점과 매점을 하며 2년간 거의 접었으며(이 때에도 1차 시험을 시도는 했었습니다.), 2013년 초에 다시 시작했으나 겨우 영어점수만 획득하고 1차 시험에 낙방하게 됩니다. 1차에 낙방한 충격으로 류웅선 물리, 최성윤 생물, 함성배 민법과 산재법 강의 등 1차 강의를 오랜만이거나 처음으로 수강하며 제대로 준비하여 무난하게 2014년 1차 합격을 합니다. 2016년 1차 준비 기간에는 오랜 수험생활에 지쳐 공부를 소홀히 했던 것 같습니다.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9년, 2010년, 2014년, 2015년 그리고 2017년에 2차 시험을 칩니다. 5년 동안 만을 제외하고 2차 시험을 응시한 셈입니다. 1998년 처음 치른 2차 시험은 당시 1차 합격 발표 후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으나 한 달 정도의 시간 밖에 없어 당연히 떨어졌고, 그 후 매번 2차 시험을 치고 나서는 걸릴 것 같다는 생각과 떨어지면 그만둔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쉬었습니다. 그러다 2차 불합격 발표가 나면 1주일 정도 방황하다 다시 책을 잡았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 같은 사이클이었습니다. 2010년까지 저작권법을 선택과목에 포함하거나 택하였고, 2014년부터는 유기화학을 선택과목으로 하였습니다. 이번 시험 이전 2차 시험은 평균 0.42점, 평균 1점, 평균 1.17 및 2점대 수회 등의 점수 차로 낙방하였습니다.
2011년경 까지는 매년 수개월 이상을 집을 떠나 신림동에서 수험생황을 했습니다. 집을 비운 기간이 길어 아내와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3) 마지막 시험 준비
올해 마지막 시험을 돌아보겠습니다. 모두 인강으로 공부했습니다. 지방이라서 다른 방법은 시간, 비용, 체력 면에서 비효율적이었습니다.
2016년 1차 시험에 불합격한 후 2016년 6월까지는 2차 시험공부를 했습니다. 유기화학은 가농 교재로 김태환 변리사님 기본이론 강의를 들었고, 민소법은 최평오 교수님의 2차 기본이론과 사례강의를 들었습니다. 유기화학의 경우 가농 교재에다 솔로몬, 맥머리, 스미스 문제를 추가한 서브노트가 있어서 거기에 새로운 내용을 조금씩 추가하며 공부했습니다. 민소법의 경우 이시윤 교수님 교과서에 핵심요론 페이지를 병기하여 두 교재를 연계시키면서 공부했습니다.
2016년 7월부터 제54회 시험 1차 준비에 들어갑니다.
물리는 류웅선 선생님의 강의를 이전에 들으면서 노트 정리를 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빛과 파동, 현대물리학, 전자기학 특강을 추가로 들으며 공부했습니다. 화학은 서형석 선생님의 기본이론, 생물은 최성윤 선생님의 강의 이전에 들어 새로운 생물 교재에 정리가 되어 있어서 객관식문제풀이 강의를 추가로 들어 보충했습니다. 그리고 박준희 선생님의 지구과학을 수강하였습니다.
민법의 경우 이전에 워낙 함성배 선생님의 강의를 많이 들었던지라 이미 정리되고 포스트잇에 사건 선도까지 그려 붙인 구판 민법강의(김준호 저)를 1회독한 후 알짜민법을 새로 구입하여 반복 학습하였습니다. 산재법의 경우, 별도의 강의를 듣지 않고 2016년 12월경이 되어 임병웅 교과서, 박종태 교과서 그리고 김인배 교과서를 구입하여 본 후 그 객관식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특허법만은 도해를 보았으나 제게 맞지 않아 이후 교과서를 보았고, 상표법의 경우 오로지 교과서만 더 읽었습니다. 저의 경우 교과서 체질인가 봅니다. 여러분도 자기에게 맞는 교재를 택하시면 됩니다.
1차 시험 후 발표 때까지 공부하기 힘들었습니다. 합격을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두 문제도 절실했습니다. 논란이 되는 민법문제 때문에 김준호 교수님께 메일까지 보내고 답장을 받아 이의신청을 내었습니다. 다만 그와 관계없이 2개 차이로 합격 후 2차공부로 들어갑니다.
1차 발표 전에 최평오 교수님의 2차 기본이론을 수강하고, 유기화학은 별도 수강 없이 서브를 한 번 훑어보았습니다. 1차 발표 후 상표법은 정진길 변리사님의 2차 기본이론을 수강하며, 서브에 정리했고 판례공부를 했습니다. 특허법의 경우 별도의 강의 없이 이음특허법을 보았습니다. 그 후 최평오 교수님의 개정특강으로 교과서를 보완하고, 핵심요론 구판을 교과서에 옮겨 적어 단권화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태영 변리사님의 특허법특강으로 최근 이슈를 보강했습니다. 사례집은 각 과목마다 하나씩 챙겨 봤으며, GS 자료는 지인을 통해서 몇 구해 봤으나, 대학 특강은 구경도 못했습니다. 지방에서 혼자 공부하다시피 하여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사실 서울에 올라가서 GS 실강을 듣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스스로 나이에 위축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아예 인강으로 대체했습니다. 물론 2015년 까지만 해도 주말에 올라가서 3과목 GS를 수강했습니다. 비용과 시간을 아끼기 위한 최선책이었습니다만 피곤하여 효율은 최저였습니다. 정말 저의 이 방법은 권하지 않겠습니다. 결국 오로지 인강만으로 공부하였고, 답안을 써보는 시간이 극히 적었습니다. 지방이라 스터디를 할 여건이 안 되고, GS 실강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3법 점수를 낮게 받는 원인이 되었다고 봅니다.
(4) 마지막 시험에 임하여
첫날, 특허법에서 FRAND 선언 문제가 나왔고 사건의 결론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생각대로 합당한 결론을 내었는데 그제 다시 보니 답은 일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12페이지 정도를 썼습니다. 상표법의 경우 1번 문제에서 곤란을 겪었습니다. 나중에 줄 사이에 작은 글씨로 밀어 넣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12페이지 정도 쓴 것으로 기억합니다. 두 과목 모두 시간 부족에 정답을 제대로 몰랐으니 양도 적고 답도 많이 틀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허법 44점, 상표법 40점. 첫 날 숙소로 돌아와서 망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허름한 호텔방에서 밖을 보니 상당히 높았습니다. 극단적인 생각이 남의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갖고 고향에 돌아가면 이제껏 20년의 허송세월을 어찌 할 것인가. 아 모르겠다 하며 8시경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았습니다.
둘째 날, 오히려 잠을 푹 잔 후라 맑은 정신으로 시험에 임합니다. 민소법은 평이하게 출제되었습니다. 14페이지 정도를 쓴 것 같습니다. 무난하게 썼는데 역시나 느린 필속과 연습 부족으로 점수는 53.33점이었습니다. 유기화학에서는 작은 문제가 많아 하나씩 시간을 다투며 풀었습니다. 마치기 직전까지 딱 4점짜리 한 문제를 남기고 다 풀었습니다. 생성물과 설명을 묻는 문제였는데 마치기 몇 초 전에 생각나서 생성물과 올쏘위치라는 네 글자로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답을 맞춰보지 않아서 그냥 최대 98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설명문제 등에서 감점이 이루어져 82점을 얻었습니다. 저는 시험 후 발표 때까지 답을 맞춰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몇 해 전 대박이 났던 모 과목이 어려웠다는 말을 듣고 올해는 유기화학 고득점이니 특허 상표만 과락이 아니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특허 상표의 과락여부는 전혀 알 수 없어 발표하는 그 날 9시까지 저를 괴롭혔습니다. 결국 커트라인을 넘어 합격자의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재작년 0.42점 차 불합격으로 선택과목에 대해 가졌던 불만은 이제 옛 얘기가 되었습니다. 새로이 시행되는 P/F 제도로 선택과목 불균형은 이제 해소되리라 기대해 봅니다.
3. 1차 공부방법
(1) 산업재산권법
약 10년 전 몇 년간 모 학원에서 1차 모의고사출제를 했습니다. 그 때 문제를 만들면서 느낀 점은 수험생들에게 틀리게 하는 포인트를 찾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지간한 것은 그 포인트를 발견하고 맞출 것 같은 두려움 속에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결국 객관식 문제를 푸는 것은 조문이나 판례의 핵심이 되며 자칫 놓치기 쉬운 부분을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허법은 판례보다 조문이 중요하고, 상표법은 조문보다 판례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디자인보호법은 조문과 심사기준을 같이 봐야 합니다. 판례의 경우 출제자가 수험생을 틀리게 유도하는 것이 힘듭니다. 판례를 변형하면 아주 어색해 져서 오답임을 쉽게 알 수 있으나, 조문은 변형해도 세심하게 공부하지 않은 수험생은 쉽게 속습니다.
결국 조문을 꼼꼼히 공부하여 암기하는 것이 1차 산재법공부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모의고사문제를 만들던 시기에 산재법은 거의 틀리지 않았습니다. 최근의 시험에서 제가 틀린 문제를 확인해 보면 조문 문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2) 민법
저는 교과서를 깊이 공부하고 다시 알짜를 공부한 후 객관식 문제집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저의 취향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시험의 특성상 그리 어려운 문제가 출제되는 것이 아니 점에서 알짜민법과 객관식 문제집을 무한 반복하는 방법도 괜찮다고 봅니다. 이는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3) 자연과학
과학고 나오신 분들은 전략과목이겠으나, 그 외의 경우 조금은 방어과목일 것입니다. 저는 모의고사 때에는 상위권이었으나, 실전에서는 당황하여 점수를 잘 받지 못했습니다. 시간 부족으로 항상 50점대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자연과학이 방어과목이라 하여 과거 물리를 버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물리도 다소 쉽게 출제된 적도 있는바 절대 버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4) 기타
1차 시험을 친 후 게시판에서 당락을 점치며 허우적거리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의 경우 올해 그렇게 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 같습니다.
4. 2차 공부방법
(1) 특허법과 상표법
이전에 특허법과 상표법에 자신 있던 시기가 있었으나, 이번 시험에서 저조하여 어드바이스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P/F 제도가 되면 두 법은 아주 중요과목이 되는바 열심히 깊게 공부해야 할 듯합니다.
(2) 민소법
저는 지난 20년간 오로지 이시윤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렇다고 교과서 중심 공부 때문에 장수를 했다고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최평오 교수님의 핵심요론과 같은 보조교재를 써서 교과서를 단권화하는 것이 최적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의 경우 필속이 느리고 쓰는 연습을 게을리 하여 고득점을 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민소법에서 만큼은 40대 초반까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나 나이가 들면서 그 점수도 계속 떨어졌습니다.
(3) 유기화학
유기화학은 저의 전략 과목이라 할 것입니다. 과거 저작권법을 택했을 때 잘하면 65점, 못하면 60점의 점수를 늘 받아왔습니다. 무난한 점수이나 합격에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몇 년의 시간을 감수하며 이과과목인 유기화학으로 갈아탔습니다. 물론 아쉽게도 최근 저작권법도 70점 이상 받으시는 분이 있어서 바꾸지 않았어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가농교재로 하는 김태환변리사님 강의의 노트를 손으로 써서 서브노트를 만들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변리사님이 칠판에 수기로 판서를 하셔서 그대로 받아 적었는데, 활자 보다는 수기로 쓴 것이 훨씬 기억에 잘 남았습니다. 그리고 솔로몬, 맥머리, 스미스 세권의 연습문제를 풀고 틀린 것은 표시를 하고 재차 틀린 것은 다른 색으로 표시하는 식으로 점차 모르는 문제를 줄여갔습니다. 최종적으로 남은 문제는 서브노트에 첨가했습니다. 그 외 GS나 기출 문제 등도 중요한 것은 서브노트에 추가했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최종 시험 몇 달 전부터는 두 권의 서브노트만 눈으로 계속 훑었는데도 문제 푸는데 지장이 없었습니다. 사실 시험 후 모범답안을 보지 않고 자체적으로 판단해 본 결과이지만 이번 문제 모두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5. 기타 공부방법 조언
(1) 선택과목 선정
이제까지는 선택과목이 승부를 결정했기 때문에 몇 년이 걸리더라도 고득점을 할 수 있는 이과과목 그 중에서도 다수가 선택하여 강의와 자료가 풍부하고 예측가능성이 있는 과목을 추천하였습니다. 다만 자신 있는 이과과목이 있다면 그 과목도 좋습니다. 후배 중에 재작년에 약품제조화학으로 95점을 받은 약대생이 있습니다. 저는 저작권법을 처음부터 선택하는 바람에 수험생활이 길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일주일 공부한 저작권법 시험에서 51점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달콤한 열매가 20년이라는 시간의 굴레를 씌우게 될지 그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70점대 초반까지 받아본 적이 있으나, 문과과목 특성상 잘하나 못하나 60점대 선에서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또한 문과과목은 점수를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후 유기화학으로 바꾸었습니다. 재작년 유기화학을 치고 나서 저는 답안 검토 결과 최하 65점에서 최고 70점대 후반까지 바라봤고, 75점일 확률이 제일 높다고 예측했습니다. 실제 71점 대였습니다.
이제부턴 P/F제도가 들어오는데, 사실 과목선택에 조언이 어렵습니다. 사견으로는 이제껏 하시던 분들은 하던 과목을 하면 되고 새로이 진입하시는 분도 상기한 이전의 선택기준과 그리 다르게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올해 디자인보호법의 결과로 볼 때 문과과목 선택에는 일단 신중하시길 바라나, 어느 정도 실력이 되시는 분은 시간 절약을 위한 무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제껏 저작권법을 하면서 이득을 본 것은 한 달만 공부해도 충분하다는 점입니다. 즉 선택은 여러분 자신의 몫이고 정답이 없습니다.
(2) GS와 스터디
이전에는 스터디가 필수였습니다.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다고 봅니다. 학원 GS가 활성화되어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GS 만으로 쓰는 연습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멘탈 관리나 정보교환 등을 위해서는 정식 스터디든 밥터디든 스터디를 한다는 것은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스터디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면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는 말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정보나 이런 부분은 학원이나 지인 등을 통해 취득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공부기간 초중반에는 신림동에서 스터디를 거의 쉬지 않고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울산에서 공부하게 되고 나이가 드니까 혼자서 공부하게 되고 GS도 거의 못하게 되었습니다. 합격은 그 동안의 스터디나 GS 등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혼자서 지방에서 인강 만으로 공부해 합격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이번 시험을 준비하며 시간, 경제, 체력적 이유로 GS실강을 한 번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쓰는 연습을 거의 하지 않았고 그래서 3법 점수가 낮습니다. 반드시 멘탈 강하신 분은 혼자서, 아니면 스터디나 GS를 통해서 수험 기간 내내 쓰는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전 매일 1시간인지 2시간인지 쓰던 시절 독서실 책상 앞을 답안지로 꽉 채우던 당시, 3법 GS 8회 중 2회 정도는 1등을 했습니다. 항상 채점답안 내어 주면 화투장 보듯 모범답안을 조심스레 쪼던 기억이 납니다. 내 글씨인지. 결론은 쉬지 않고 쓰라는 것입니다. 하루키 소설 ‘댄스댄스댄스’에서 주인공이 그냥 계속 춤추듯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쓰다보면 언젠가는 합격이라는 결과물을 얻을 것입니다.
(3) 멘탈관리와 다시 일어나기 - 특히 장수생 분들에게
공부하다보면 어느 땐가 슬럼프가 올 수 있습니다. 이 때 저는 정면 돌파의 방법을 썼습니다. 공부를 더 하여 실력을 올리면 슬럼프가 사라졌습니다.
저는 오랜 기간 공부했습니다. 어떻게 매번 2차 시험에 떨어지고 다시 책을 잡을 수 있었느냐고 묻곤 합니다. 막다른 곳에 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다른 것을 할 의욕도 용기도 없는 상황이랄까요. 저는 다른 분에게는 이런 상황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인생은 다양한 버스 노선이기 때문에 꼭 저의 노선을 따라오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저와 같은 상황에 이미 놓여 있다면 다시 공부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책을 잡으시길 바랍니다.
소위 4수를 넘어 장수생이 되면 자꾸 비교를 하게 됩니다. 남들과의 비교 예컨대 회사에 들어가서 자리 잡은 친구와의 비교, 몇 년 전에 시험을 접고 다른 일을 시작한 가상의 나와의 비교 등을 하게 됩니다. 이런 비교를 하지 마십시오. 이미 지난 일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이런 비교를 하십시오. 열심히 공부하여 시험에 붙은 미래의 나와 시험에 실패하여 우울해 할 나, 이 둘만을 비교 대상으로 삼으십시오. 아무리 장수생으로 시간을 소모하였더라도 같은 시간을 써서 불합격한 나보다는 붙은 나가 더 좋을 것 아닙니까?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번 2차 시험에서 첫날 시험을 완전히 망쳤습니다. 바로 짐 싸서 내려왔다면 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It ain't over, till it's over. 요기 베라의 이 말을 아주 좋아합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시험은 네 과목 점수로 판가름 나니까요.
6. 마치면서
격려해 주신 여러 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더 열심히 해서 합격하라고 한 분들도 물론 고맙지만, 이제 많이 했으니 다른 길을 찾으라고 하신 분들도 그 당시 서운했지만 다 저를 아끼는 마음에서 하신 말씀이기에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20년을 거의 직장 없이 보내는 저를 꿋꿋이 지켜낸 아내에게 이 생을 바쳐서 사랑하겠노라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너그 아부지 머하시노(너희 아버지 뭐하시냐. 제가 그래서 ‘친구’ 영화를 제일 싫어합니다. 또한 ‘대기만성’이라는 저의 사주를 항상 언짢아했습니다.) 라는 물음에 항상 쭈뼛쭈뼛했을 두 딸에게 미안했고, 그럼에도 아빠를 인정해 준데 대해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 전합니다. 이제는 새해 떠오르는 해, 보름달, 돌할매, 별똥별 보면서 아빠 변리사합격을 기원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합격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하고 수험 기간 돌아가신 든든한 저의 배경이었던 아버지, 항상 우리 김 서방 시험되어야 될 텐데 라고 기원해 주신 장모님께 죄송했다는 말씀드리고 합격증 들고 일간 묘소를 찾아뵈려 합니다. 항상 사위를 믿어주시고 끝까지 하라고 등 두드려 주신 장인어른, 감사드리고 가수데뷔도 하시는 등 노년의 활동적인 모습에 존경을 표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백수생활을 안타까움과 부모의 업보로 여기며 이제껏 노심초사해 오신 어머니,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늦게나마 합격되어 죄를 덜었으나, 오히려 저의 갑작스런 합격소식이 충격이 되어 어머니 건강을 해치는 것 같아 요즘 이 불효자가 걱정이 됩니다.
인생이 반드시 효율적일 수만은 없습니다. 단기간에 합격해야 하고 몇 년을 넘겨 승산이 없으면 다른 길을 찾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인생에 법조문을 적용하지는 않고, 승산은 불확정 개념이라 정답은 없다고 봅니다. 평생을 해서 합격해도 그 나름의 의미는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 간의 설움을 요 며칠 동안에 다 해소했나 봅니다. 축하를 받고, 수기를 쓰고, 설명회발표를 하는 등, 이런 것들만으로도 지나간 세월의 보상을 다 받은 기분입니다.
합격의 일등공신은 뭐니 뭐니 해도 재도전의 용기를 주고 무한한 사랑으로 뒷받침을 한 아내입니다. 아내를 위해 저는 매일 아침 카페라떼 한잔을 바치고 있으며, 글을 쓰는 어깨너머로 저의 소박한 커피를 마시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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