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헤어지고 나서

촉촉한 붓꽃2018.03.27 01:17조회 수 1670추천 수 9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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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다 지쳐 선잠이 들었다가
평소 네가 나를 깨우던 시간에 걸려온 전화에 눈을 떴다.
발신자 제한 번호로 온 전화에 대고
나 오늘 너와 헤어지는 꿈을 꿨었노라고
꿈 속에서 너와 헤어진걸 내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서 너무 끔찍했다고
너무 힘들었으니 안아달라고 말하려다가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흐느끼는 네 목소리에
우리가 진짜 헤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르는 척 멍청하게 여보세요만 반복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하염없이 터져나오는 눈물을 주체 못하고 펑펑 울다가
드디어 네가 이런 나를 떠나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한참 웃다가
오늘 학교 가기 싫으니 가지 말까 생각했다가
네가 깨워줬는데 어떻게 학교를 안 가나 싶어서 또 울다가
어쩌면 지금 이것도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꿈과 현실의 경계 어드메서 학교 갈 준비를 했다.
혹시 네가 다시 돌아올까봐
아무에게도 헤어졌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있는 내내 울지 않으려 고개를 쳐들고 하늘만 보다보니
날씨가 너무 좋아서 종일 눈 앞에 까만 점이 아른거렸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종일 돌아다니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오늘 하루가 꿈이라기에는 너무 길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 울었다.
나보다도 나를 더 사랑했던 네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게 하다니 나는 얼마나 나쁜년인가 자책하다가
너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지만 잡을 염치도 명분도 없었던 내 자신을 원망하다가
이젠 정말 네가 내게서 벗어나 더 좋은 사람 만날 생각하니 기뻤다가 또 슬펐다가
그래도 한 번만 매달려볼걸 자존심 버리고 구차하게 굴어볼걸 생각했다가
진짜 너를 위한 길은 너를 보내주는 것임을 알기에 애써 마음을 추스렸다가
기분 전환하려고 들어온 학교 사이트에서 네가 쓴 것만 같은 글을 보고말아서 또 한참 울다가
혹시 너도 내게 미련이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다가
글 속에 너의 힘듦과 나의 이기심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어서 후회하다가
혹시 네게 연락이 올까봐 네가 미련을 갖지 말기를 바라서 했던 차단을 풀었다가
그 또한 내 이기심이라는것을 깨닫고 다시 차단하기를 반복하다가
지금 내 꼴이 너무 우스워서 스스로를 비웃다가 다시 울었다.
'나'라는 지옥과 내가 없는 세상 중 너는 내가 없는 세상을 선택했으니 이 얼마나 현명하고 다행스러운 선택인지.
참 똑똑한 남자친구를 두었구나하는 생각에 뿌듯했다가
더이상 그 사람이 내 남자친구가 아니라는 현실에 또 울고
거울 속 퉁퉁 부은 모습이 너무나 꼴사나워서 웃다가 또 울고
너라면 지금 이 모습도 예쁘다고 해줬을까 궁금했다가
아마 예쁘다고 해줬을거라는 생각이 들자 웃음이 났다가 눈물이 났다.
너에게서도 나에게서도 버려져 하루아침에 천애고아가 된 우리의 사랑이 가여워서 울다가
우리의 사랑은 너무 힘든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네가 가여워서 울다가
이미 지나친 시간과 깨어진 관계는 되돌릴 수 없음을 떠올리고 울다가
한참 울다 지쳐 다시 핸드폰을 봤는데 갤러리 속 일주일 전 서로를 행복하게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 보여 또 다시 울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또 얼마나 먼 과거인지, 얼마나 의미 있는 시간이며 얼마나 부질없는 시간인지.
주위를 둘러보니 내 책장에도 내 서랍에도 내 침대에도 내 핸드폰에도 내 목걸이에도 온통 네 흔적이 가득해서 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웃다가
네 흔적을 그러모아 포장지로 싸며 또 눈물흘리다가
너에게 돌려주러 가는 길에 너를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렜다가
이젠 이런 설렘이 너에게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또 울었다.
그러는 사이에 밤은 깊었고 아마 내일부터는 네가 깨워주지 않을거란 생각에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다가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숨을 멈췄다가
다시 급하게 숨을 들이쉬며 죽는것 조차 스스로 못하는 바보로구나 자책했다가
내 생에 진정 스스로 원해서 얻었던것은 너밖에 없었음이 기억나 울었다.
이렇게 아플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사랑을 시작하지 말걸 생각했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은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다가
이 아름다운 사랑의 마무리를 내가 망쳤음을 깨닫고 울었다.
너는 내가 없는 세상을 택했으니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
이런 마무리라서 미안해.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사랑받아본적이 없어서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몰랐어.
사랑하는 방법도 모르는 멍청이라서 미안해.
네가 받았던 상처들 내가 다 안고 사라질테니 너는 내몫까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같이 부족한 사람 사랑해줘서 고마웠어.
너는 내가 너를 사랑하는지 확신이 안 선다고 말했지.
나는 삶이 너무 고통스러웠기에 매순간 나 스스로를 완전하게 파괴하고 싶었고 그것이 내 인생 최고의 소망이었으나 네가 내가 살아있기를 원해서 살아있었어.
나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위해 살아있어본 적이 없었어.
그런 내게 너는 삶의 이유였고 목적이었으며 희망이었고 전부였으며 삶 그 자체였어.
나는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숨을 들이쉬고 내쉴 만큼이나 널 사랑했어.
그리고 아직 사랑하고 있지만, 그런건 더이상 의미 없으니 신경쓰지 마.
나에게 돌아오지 말고 행복해야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나를 완전히 지워버릴게.
밤이 너무 늦었네.
많이 피곤할텐데 내일도 일 나가려면 일찍 자야지.
나처럼 울지 말고 편안하게 잠들길 바랄게.
이제 아침에 전화 안 해도 괜찮아.
우린 더이상 연인이 아니잖아.
잘 자. 좋은 꿈, 행복한 꿈, 내가 나오지 않는 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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