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대단한 거라고 경험자라고까지 하나 싶지만
제가 기수제 동아리에서 느꼈던 것들을 논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구구절절 써봅니다ㅋㅋ
밴드나 댄스 동아리 등 공연 동아리에 기수제가 많죠.
왜냐하면, 공연 동아리 특성 상 기수가 단순히 일찍 들어오고 늦게 들어오고를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
'같이 공연을 하는 단위'로 기능하기 때문이에요.
기수 단위로 공연을 준비하고, 또 수행하죠.
뿐만 아니라 이는 자연스레 윗기수가 먼저 그런 활동을 한 선배로서 경험을 가르쳐주는 존재로 기능하고,
또 아래 기수는 단순히 실력 뿐만 아니라 공연을 위한 부가적인 것들을 배우는 존재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기수가 존재하고, 필요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저도 기수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고, 그렇기에 그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있었어요.
요약하자면, 제대로 지켜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생겨나는 문제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어요. 심한 경우 기수제 자체의 효용성이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말이에요.
먼저 첫 번째는, 기수가 똥군기로 이어지는 경우겠죠.
기수는 어디까지나 '먼저 동아리를 경험했다'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이는 위에서 말했듯 상호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서로에게 도움을 줄 때 가장 의미있게 작용할 수 있구요.
하지만 기수제가 구성원들 간의 우위를 정하는 일종의 서열로 작용하는 경우 똥군기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이는 질서가 아닌 차별이 되어버리고,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집단으로 전락하기 쉬워요
두 번째는 기수 간 ㅈ목질의 문제에요.
상호 존중하며 서열이 아닌 역할로서 기수를 인식하고 기수라는 안정적인 체계 속에서 잘 생활하면 체계적으로 동아리 활동이 가능하지만,
기수를 넘나드는 ㅈ목질은 기수를 불안정하고 비합리적인 제도로 만들더군요.
여기엔 나이, 학과 선후배, 연애관계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더라구요.
나는 몇 기수 위 누구랑 나이가 같아서 친구고, 나는 몇기수 위 누구 여자친구/남자친구고 하다보면 기수가 의미없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더라구요.
물론 동아리에서 친구 관계와 연애 관계가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에요.
그런 사적인 관계는 유지하되, 적어도 동아리같은 나름의 체계가 있고 공적인 공간에서는 다른 동아리 구성원들 간의 관계와 안정적인 분위기를 위해 드러내지 않는 것이 동아리 유지에 확실히 좋더군요.
물론 굳이 숨기지 않더라도, '나는 이러이러하니까 나에겐 기수가 의미가 없어' 따위의 생각이 아닌
'나는 누구와 이런 관계이지만 이것과 동아리 내에서의 질서는 별개야' 라고 인식하고 생활하면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지만
자기도 모르는 새에 상대방에게 어려운 분위기를 만드는 경우가 꽤 자주 있기 때문에 공과 사를 구별하는 게 (경험 상) 제일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당사자들 모두 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킬 필요성을 느껴야 가능한건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문제가 많이 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기수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신입생이 들어왔을 경우에요.
물론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죠. 나보다 나이 많은데 왜 나는 존댓말을 써야 하고, 쟤는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반말하고.
실력도 내가 더 나은데 왜 쟤한테 배워야 하고, 시설 사용도 밀려야 하고.
자연스레 들 수 있는 불만이에요.
(저는 위의 문제에 대해 상호 존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실력은 단 하나의 지표가 결코 아니니 서로 부족한 부분에 대해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 바람직하며, 시설 사용은 원활한 운영을 위해 질서가 있는 것이라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를 다루는 과정에서 갈등이 많이 생기죠.
동아리가 20~30년 동안 운영되며 다져놓은 체계를 내가 보기에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바꾸려고 해요. 아니, 안 지키려고 해요.
저는 체계를 바꾸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아요. 지켜지지 않는, 비합리적인 체계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체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간의 합의가 필요하고, 이는 동아리 내의 절차를 거쳐 이루어져야 해요.
(이를 위한 절차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거나 절차를 갖출 필요성을 못 느끼는 동아리는 동아리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 걸 다 무시하면 그것도 비합리적인 거죠.
동아리 시스템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어떻게 작용하는 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단순히 내 눈에 보이는 게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안 지키는 것은 또 하나의 무질서고 동시에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죠.
이 외에도 여러 문제점들이 있지만, 큰 문제점은 이 정도인 것 같아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기수제가 무조리하고 비합리적이기만한 제도는 아니라는 거에요.
그리고 이런 부작용을 막고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면, 이 문제에 대해 기수 상관없이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와 자리가 필요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고쳐나가는 절차가 필요하고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합리적인 결론이 기수제의 폐지로 이어질 지라도 말이에요.
그런데 이게 어렵죠. 저도 그래서 몇 년간 시간과 마음을 다했던 동아리를 나왔구요.
이런 얘기가 충분히 논의될 수 없는 동아리라면 충분히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동아리가 합리적인 체제 속에서 모두의 행복을 위해 기능했으면 좋겠네요.
좀 구구절절하게 썼는데, 이 문제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었고 해결하고자 오랜 시간 고민한 생각들을 적어보았어요.
결론적으로 저는 해결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구구절절 적은 단 하나의 이유는
모두가 충분한 상황 이해와 자유로운 논의를 통해 조금씩 발전하는 동아리 생활을 하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필요하구요
늘 말이 많은 문제인데, 혼자 고민하다가 내가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묻어두기에는 더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주제라 조심스레 써보았어요:)
다들 즐거운 동아리 생활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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