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가 두렵다.
실패가 주는 시선이나 그 결과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단 한 번도 조우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막막함이 무섭다.
내 하루는 계획으로 시작했고, 오차를 줄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집안 분위기가 그랬고, 결과가 만족스러웠으니 불만 없이 내 생활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첫 실패가 너일 줄은 몰랐다.
너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 했고
가장 정성을 들여 사랑했으며 사랑 받기 위해 노력했으니.
데이트를 할 때면 이틀 전에 먼저 가보고 어디를 걸어야할지,
무엇을 먹어야할지 혼자 고민했다.
너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발 벗고 나서서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영화를 좋아하는 너를 위해 극장에 걸릴 때마다 미리 가서 보고 왔다.
그리고 기뻐하고 웃는 너를 보면 그 동안의 정성이 헛되지 않음을 확인하며
나도 함께 기뻐했다.
그런 네가 나에게 이별을 말했다.
납득 할 수 없었다.
교수님 한 번 찾아간 적 없던 내가 몇 번이고 찾아가 되물었다.
답을 주지 않고 돌아서는 너를 원망했다.
걸었다.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지도 않은 채, 같은 걸음을 반복하며 걸어서 도착한 곳에
당연하게도 너는 내 옆에 없었다.
허름해져 아무도 오지 않는 쉼터에 등을 뉘이며 생각했다.
나는 너와 한 번도 같은 보폭으로 걸은 적이 없다.
매번 두어 발자국 앞서서 확인하며 앞장서서 갔다.
혹여나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
어느 순간부터 처음 가는 장소에
능숙한 듯, 익숙한 듯 행동하는 나를 보여 의아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며 짓는 내 표정이 어딘가 어색했을 것이다.
이제야 깨닫는다.
너는 그것이 싫었던 것이다.
너는 단지 나와 함께 걷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가 재미없어도 같이 푸념하는 나를 보고 싶었을 것이다.
길을 잘못 들어 다리가 아파도 함께 아파하는 연인이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리 빨리 걸어도 매번 앞에 있는 나를 보며
잠시 절망했을 것이다.
나에게 흘리듯 했던 말. ‘너는 매사에 수험생 같아.’
그 뜻을 이제야 알겠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란
당연한 진리를, 난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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