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하와이 북서쪽의 카우아이 섬. 당시 이 섬은 인구 3만 명의 작은 섬으로, 대부분 주민들은 지독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지옥 같은 섬이었다. 주민 대다수가 범죄자나 알코올 중독자 혹은 정신질환자였다. 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청소년 비행문제도 심각했고, 범죄율도 높았다. 이 섬에서 태어난다는 건, 불행한 삶을 예약하는 것과 같았다.
1954년, 소아과 의사, 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 심리학자 등 연구팀이 꾸려져 카우아이 섬으로 향했다. 어떤 요인이 사람을 범죄자, 도박중독자, 미혼모 등으로 만드는지 알아보자는 취지. 같은 해, 임신한 모든 여자를 대상이었는데, 즉 1955년 이 섬에서 태어난 신생아 833명을 모두를 대상으로, 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40년에 걸친 추적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얻은 연구 결과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별다른 것이 없었다. 불씨가 꺼져가던 이 연구가, 에미 워너 교수에 의해 회복탄력성에 대한 연구로 방향을 돌렸다. 워너 교수는 833명 중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201명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했고, 이 가운데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을 뿐더러, 되레 좋은 환경의 아이보다 더 잘 성장한 72명에 집중했다.
연구 방향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훌륭하게 성장하고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는 것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마이클. 엄마가 16살, 아빠가 19살 때 그를 낳았는데, 미숙아로 태어나 버려지다시피 컸고, 밑으로 세 명의 동생을 뒀다. 그러나 10살 때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가 실업자라 할아버지 집에 얹혀살았다. 할아버지와 아빠는 자주 싸워서 집안 분위기는 늘 뒤숭숭했다.
문제아가 될 소지로 가득한 이런 환경에서, 마이클은 학교에서 전교 상위권을 유지했고, 스포츠도 잘하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은 리더십을 보여줬다. 특히 18세 때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메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건강에 문제가 있던 엄마는 자주 실직상태에 빠졌고,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었고, 메리를 자주 학대했다. 하지만 메리는 학교에서 평균 이상의 수행 능력을 보였고, 친구들과 잘 사귀고 훌륭한 젊은이로 성장했다.
에미 워너는 이 72명이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어떤 공통된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삶의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힘의 원동력이 되는 이 속성을 에미 워너는 ‘회복탄력성’이라 불렀다. 에미 워너는 무엇이 아이들을 사회부적응자로 만드느냐는 질문을 버렸다. 대신 무엇이 역경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정상적으로 유지시켜주느냐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당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무엇이 이 아이들을 역경으로부터 지켜줬나. 워너 교수는 이것을 회복탄력성이라고 불렀다. 이를 집중분석한 연구결과를 내놨다. 72명이 가진, 예외 없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지지해준 어른이 1명 이상 있었다. 마이클에겐 할아버지가 그랬다. 마이클의 아빠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마이클에겐 달랐다. 이를 심리학적으로 정서적 지원이라고 한다. 톨스토이가 그랬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으로 산다.
누군가가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을 지켜준다는 것. 그것만큼 좋은 선물이 있을까. 마이클과 메리가, 그리고 1955년 카우아이 섬에서 태어난 833명 중의 72명이 그런 선물을 받았던 것이리라. 사랑으로 큰 아이들, 믿음과 지지라는 자양분을 받은 아이들은 세상의 편견에 맞서 훌륭하게 성장했다.
워너 교수가 40년에 걸친 연구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회복탄력성의 핵심은 결국 인간관계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제대로 성장해나가는 힘을 발휘한 아이들이 예외 없이 지니고 있던 공통점이 하나 발견되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그 아이의 인생 중에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김주환 교수가 든 또 하나의 예. 응답성이 높은 엄마와 낮은 엄마의 아이를 비교했다. 응답성이 높은 엄마는 아이가 울면 젖을 주고 똥을 싸면 기저귀를 갈아줬다. 반면 낮은 엄마는 아이가 배고파 우는데,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똥을 싸는데 젖을 주는 그런 경우였다.
응답성이 높은 엄마의 아이는 공감을 잘 하고, 공감이 잘 되면 뇌 발달이 잘 된다. 어린이를 학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회적인 시한폭탄을 키워내는 것이다. 미국에선 1990년대 들어 흑인들이 많은 도시의 범죄율이 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연구했는데, 원인은 하나였다. 낙태를 합법화한 뒤, 범죄율이 떨어졌다. 미혼모도 줄었다. 낙태는, 참 가슴 아픈 일인데, 이는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건 혼자 안 되고, 사회 전체적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김 교수는 톨스토이의 말을 다시 인용했다. 자기가 자기를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의 힘으로 살아간다. 관계의 중요성.
그는 회복탄력성이 유전적으로도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날 때부터 회복탄력성을 갖고 태어날 수 있다는 것. 1/3 가량은 역경이 있을수록, 그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힘이 있는 한편 1/3은 그런 힘이 부족하단다.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관계성이 약한 사람은 회복탄력성이 약화돼 있을 가능성이 큰데, 훈련을 통해 이를 강화할 수 있다. 회복탄력성을 마음의 근력이라고 부르는데, 누구나 갖고 태어나나 개인차가 존재한다. 마음의 근력도 훈련을 하면 강해지고 면역력도 강해진다. 자잘한 역경은 물론 큰 역경도 잘 견딘다.”
그렇다면 역경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 김 교수의 조언. “왜 괴로울까 생각하면, 모든 고민에는 인간관계가 있다. 사업하다 망했는데, 세상 아무도 모른다면 괴롭지 않다. 그러나 망했을 때, 주변 보기가 어렵고 쪽 팔려서 괴로운 거다.”
즉, 모든 즐거움과 고통의 이면에는 인간관계가 있다는 것. 행복의 원인에도, 불행의 원인에도, 인간관계가 있다.
사회의 모든 가치는,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사랑이든 간에, 모두 다 인간관계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성취’ 혹은 ‘성공’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의 기본에는 인간관계가 깔려 있다.
사람이 사랑을 하면 행복할 거 같다는 건 거짓말이다. 통계를 보자. 노래방에 가면 95%가 이별, 아픔, 슬픔 등의 노래를 부른다. 이혼하는 커플도 많고, 특히 황혼이혼도 많다. 그건 그 결혼이 제대로 된 결혼이 아니라는 거다. 결혼하고 행복한 건 10% 정도? 결혼을 한다는 건, 90%의 확률로 후회하거나 위로를 받을 행동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이혼 안 할 자신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다시 통계를 보자. 살인사건은 어떤 관계에서 가장 많이 벌어질까? 우발적인 살인? 아니다. 김 교수에 의하면, 부부관계에서 일어난단다. 최근 경남에서 일어난 교수 부인의 살인사건도 그랬다. 60% 이상이 친한 사이에서 살인을 일어난다는 통계를 그는 언급했다.
부부관계에서 왜 죽일까? 돈? 아니다. 사랑 때문이다. 다른 사랑이 생겨서거나. 인간관계에 대해 착각하면 안 된다. 인간관계가 행복과 불행의 근원인 이유는 뭘까. 나(셀프)라는 생각도 인간관계에서 온다.
김 교수의 결론. 관계가 나를 만든다. 인생은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의 총합이다. 관계가 끊기면 죽는다. 성공하고 싶다면, 관계를 성공시키면 된다. 그것은 곧 삶의 성공과도 통한다. 관계의 근본성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관계가 외로우면 병도 잘 들고, 빨리 죽는다. 머리말 부분에 언급한, 남자가 여자보다 빨리 죽는 이유와도 통한다.
이 때문에 ‘아빠’에게 잘할 것을 권한다. 아빠는 대화할 능력이 부족하니까. 아빠와는 대화가 안 된다고? 원래 그렇단다. 아빠는. 그러니 맨 먼저 부모자식부터 챙겨야 삶이 자리를 잡고 역경을 이겨낼 힘이 강해진다는 것.
책에 공자 이야길 했는데, 좋은 사람이 돼라. 그게 진리다. 소통 능력이 좋은 사람은,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다. 설득을 잘 하는 사람이다. 설득의 기본도 인간관계다. 신뢰와 존경이 있어야 설득이 되고, 설득을 잘 하는 사람이 리더다. 말 더듬어도 신뢰를 주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면 소통 능력이 높은 거다.
- '회복탄력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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