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되겠지만, 죽고싶습니다.

털많은 나팔꽃2020.03.15 15:46조회 수 2088추천 수 1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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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자이고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여학우이고, 처음 본 날부터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고, 같이 공부하다보니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고요, 심지어 다른 남학우와 스킨십 하면서 장난을 치면 굉장히 서운해지고 흉곽이 찢기는 듯이 아파지길래, '아, 이거는, 이성으로서 좋아하게 되어버린 거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걸 깨달은 날 가슴이 너무나도 뛰고 숨도 못 쉬겠어서, 저녁에 곧바로 고백을 했습니다. 공부 말고는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거절이죠. 그래도 차분하고 친절하게 얘기해주어서 고마웠고요, 저도 끙끙 앓다가 식음을 끊고 사경을 헤메이느니 솔직하게 얘기는 했으니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날씨가 좋으니까 같이 소풍을 가자는 제안을 받았고요, 그렇게 하루를 같이 보냈습니다. 저는 둘만 같이 있어서 너무 행복했지만, 이 소풍의 의미도 모르겠고, 앞으로도 선 넘지 말고 친구로 조신하게 지내라는, 기선 제압, 우정 쌓기, 친목 도모 정도겠거니, 생각했고요.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이 어디 가나요, 같이 있는 동안 긴장하고 얼어있었습니다. 저녁에 차 마시고 헤어지려는데, 뭘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눈물은 쏟아지려는데 참아야겠고.

 

며칠 후에 다시 소풍 제안을 받았습니다. 하루를 같이 보내고 저녁에 헤어지려는데, 그 친구가 제게 어른의 키스를 해주었어요. 그리고, 저와 하나가 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처음 같이 자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저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제가 남들에 비하면 바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항상 1등하고, 우리 학교까지 오게된 까닭은, 정말 천재들은 공부 재미없어서 안하니까, 공부 별로 싫어하지 않는 나 같은 바보들이 1등하는구나, 그 정도로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이 친구는, 누가 봐도 천재이고, 뭐든 자기 의지대로 이루어가는 굉장한 사람이니까, 좋아하는 마음이 익스퍼낸셜하게 커져갔습니다.

이렇게 굉장한 사람이,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나 같은 바보를 받아주나, 너무 고맙고, 정말 조상님이 도와주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털어놓았더니, 제게, 바보 아니라며, 제가 무엇무엇을 잘 하는지, 뭐가 매력인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서 또 한 번 울었고요.

 

그렇게 처음 같이 자고 나서, 여행이든 데이트에서든, 같이 자는 건 항상 이 친구가 먼저 얘기하고 이끌었는데, 이렇게 몸과 마음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이 친구가 정말 나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나는 그저 딜도인 건지 오히려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제가 이 친구에 대한 마음이 크고 심각하지 않았다면, 그 둘 중 뭐든 아무 상관없었을텐데, 그게 아니니까, 힘들어졌습니다.

 

저는 유형의 것이든 무형이 것이든, 이 친구와 함께 경작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은데, 이 친구는 파괴하고 빼앗는 데에서 즐거움을 찾는 포식자. 주변사람들을 학대하고 기만하고 유린하는데 아무 거리낌도 없고 재미있어하니까 화가 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화낼 일은 아니고, 세상은 넓으니까, 많은 사람이 있겠죠. 다만, 이 친구는 남들도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거라고 여겨서, 남들이 어떤 말을 하든, 자신을 해치려는 속내라고 믿어요. 저를 받아준 이유 중의 하나는, 저는 남을 해치지도 않고 기만하지도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서였대요. 즉, 인간은 기본적으로 남을 해치는데에서 쾌락을 얻는 것이 정상이고, 저는 그 기능이 누락된 규격외품이라는 얘기를 해요.

저는 그 부분이, 정말 죽을 것 만큼 아파요. 가까워지면서 점점 저도 그렇게 대하고 있고.

 

그게 이 친구에게 예전에 있었을 지도 모를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것인지, 타고난 성향인지 알 수도 없고요.

 

이 친구를 좋아하면서 곁에 있다가는 제가 자살하게 될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기권하고 제 수준에 맞는 리그로 떠나야할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 뿐이고요,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이미 제 마음의 주인은 이 친구이고, 이제는 몸의 주인도 이 친구인데, 이 친구 없으면 저는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원래 바보니까, 억지로라도 다른 사람 좋아하게되면 떠날 수 있을 지도 몰라서 친구들이 소개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봤는데, 사람들을 만나면 만나볼 수록 휴먼 비잉이 아닌, 그저 원숭이로만 보이고, 이 친구에 대한 마음만 더 깊어집니다.

 

이 친구는 천재니까, 언젠가는 사고의 영역도 더 넓어지고, 오류 패치도 하겠죠. 그런데 지금은 그 때가 아닌 것 같고요, 게다가 저는 바보라서 그걸 도와주지도 못해요. 

 

죽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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