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말, 욕설시 게시판 글쓰기 권한 영구 정지
우리가족은 서로의 자극제에 불과했다. 보듬어줄 줄 모르는 어리숙한 관계였다.
그 속에서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공부 열심히 하니 사랑 주는 것 같았고, 좋은 대학 가서 취직 잘 하면 사랑받을 것 같았거든. 지금은 흘러가는 세월 속, 나의 오래 된 관성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부모님이 하루도 빠짐없이 되뇌었던 돈, 돈, 돈, 돈. 나는 이 세상이 모두 돈으로 흘러가기 바쁜줄만 알았다. 그저 돈을 위한 사회적인 성장만, 나의 성장이라고 느꼈고, 나의 내면의 성장은 그저 시간이 가면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심이 없었다. 서민들의 예술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것에도 내면을 돌아볼 여유가 전혀 없기 때문일거다.
곡소리가 울려퍼지는 우리동네, 고립된 그 속에서 술에 취해 단 한순간도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 어른들 아래에서 성장한, 절망만 가득했던 사람들 옆에서 나는 더욱 냉혹해져야 했다. 우리가족의 생존을 위해서 나의 사회적인 성장이 필요했고, 부정적인 사람들은 나에게 긍정적인 요소가 될 턱이 전혀 없었거든.
그래서 사람들을 계산하고, 의도를 파악하기 바빴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내면은 더 깊어졌고,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더 많이 계산하고 의심하던 시기들을 지나, 결국에는 내 내면을 더 꽁꽁 숨기기 바빴고, 시간이 지나 세상 모든 것을 삐딱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꽁꽁 숨겨버린 내 자신은 나도 모르는 미지의 존재가 되었다.
진심으로 누군갈 사랑해보기도 했다. 허나 나도 모르는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서툴렀고 어리숙하고 미성숙했던 내 모습은 부담으로 다가왔을테고, 실패했다고 느꼈던 나는 무참히 끊어버렸었지. 그 뒤였던 것 같다. 가슴이 뛰어도 아닌 척 해왔고, 사람들에 대한 의심이 더욱 증폭되었던 건 말이야. 그 뒤로 내 솔직한 감정은 나도 볼 수 없는, 내가 쌓아버린 높은 벽 아래 숨겨져 있었다.
문득 사진 정리를 하며, 짧은 머리의 내 모습을 회상했다. 널 알게 된 지 고작 이틀 되었던, 아프단 말을 듣고 약 봉투와 너의 집 앞 공원으로 떠났던 그 날. 너의 이름과 전화번호만 알 던 그 때, 처음 와 보는 너희 동네의 추웠지만 기약 없던 기다림을 떠올렸다. 약 봉투는 전해주지 못했지만, 그냥 기뻤던. 그리고 순수하게 가슴이 뛴 걸 인정했던, 그냥 열정적이었던 그 때. 그 때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너는 날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게 맞을테다.
누군갈 만난다는 건, 내 안의 나와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너와의 만남이 새로웠던 건, 항상 새로운 내 자신과 만났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항상 하나 이상의 교훈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사람은 너였기에, 처음 써 보는 서투른 생각들과 장문의 글들은 그리고 지난 나의 눈물들은 깊은 곳에 숨겨진 내 안의 모습과 마주하게 했고, 그 옆엔 항상 네가 있었다.
그치만, 너무나 높았던 나의 마음의 벽을 허물기는 쉽지 않더라. 시간이 지나 더 견고해져버린 나의 마음의 벽.
나의 벽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 너에게, 나는 '실패'라고 생각했던 나의 과거와 너를 뒤섞었고 아무것도 확정짓지 못한 답만을 남겼다. 견고한 벽의 틈새를 만들어 준 너의 노력에 감사하진 못할 망정.
나의 상처를 막을 마지막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그 높았던 단단했던 벽을 두드리는 너에게 경계심을 느꼈다. 너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고, 너를 판단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너의 모습은 나의 어떤 판단 근거로 정의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나의 벽을 허물어줄 한줄기 빛이었던 너를 지키려는 내면속의 나와 충돌하고, 그래서 나는 밤을 지새우고 나의 주변에 있던 모든것들을 불안이라는 존재로 만들었다. 잠을 잘 수 없었고 심장이 요동침을 느꼈다. 심히 답답했다. 아마 나의 벽이 허물어져 가는 과정이었기에 느꼈던 고통일거라. 나의 사회적 생존에 있어 마지막 방어 수단이라고 오랫동안 믿었던 나의 벽들이 무너짐을 느끼는 순간들이었기에.
그 날 밤 새벽 4시. 나의 모든 감정을 쏟아낸 후, 그 벽들이 무너졌음을 느꼈다. 내가 사랑했던 노래와 아침을 시작했고, 마구잡이로 던져져있던 나의 옷가지들은 옷걸이에 차분히 정리되었고, 냄새 나던 그릇들은 깔끔히 설거지 된 채, 나는 신을 신고 네가 있는 곳을 향해 출발했었다.
허물어진 벽의 잔해를 밟고 내딛는, 첫 날이었다.
엑스트라 타임이라 표현했던 이 시간들동안
가슴이 뛰는 걸 인정했고
나의 한계를 인정했고
결코 끝내지 않고 싶단 걸, 드디어 인정했다.
채 일주일이 안 된
쑥쓰러운 웃음을 지으며.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