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제19대 총장 김기섭 박사 취임사
존경하는 내외 귀빈과 효원 가족 여러분 여러분!
오늘 부산대학교 제19대 총장 취임식에 귀중한 시간을 내어 참석해주신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멀리서 저의 총장 취임을 격려하고 축하해주신 많은 분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부산대학교 총장이라는 직책이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생애 최고의 영광이면서도, 부산대학교라는 지역거점국립대 총장의 위치는 사회적으로 대단히 중요하고 어려운 자리이기에, 저는 오늘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것은 미리내의 여명을 구가하기에는 아직 밤의 어려움이 도처에 짙게 드리워져 있고, 우리가 저지른 지난 과오는 치유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저는 특별히 이 자리를 빌려, 지난 총장추천후보 선거과정에서의 불미스러움으로 인해 효원 가족들의 자긍심을 깎아 내리고, 지역사회에 큰 실망을 안겨주었던 점에 대해 총장으로서 여러분에게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또한 부산대학교를 위해 거액을 기부해주신 경암 송금조 회장님 내외분의 명예를 지켜드리지 못하고 큰 실망을 안겨드린 점에 대해서도, 학교를 대표하여 깊이 사과드립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대학의 존립 목적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교육의 제공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대학은 정신적인 것에서부터 물질적인 것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라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보전하고, 물려받은 지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며, 물려받은 지식과 새로운 지식의 결합체를 교육을 통해 전수합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교육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대학이 사회와 적절한 관계를 맺고 지속적으로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사회의 일부로서 사회와 함께 변화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이며 대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대학이 사회의 역동적 조류에 신축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제도적 개혁을 수시로 수행함으로써 오늘날 가장 경쟁력 있는 대학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대학이 사회적 요인에 항상 민감하여야 된다는 것은 대학에 대한 도전적 요소가 됩니다. 대학이 시대의 새로운 도전에 신축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정체되거나, 자기혁신을 소홀히 해서 지적 발전이라는 대학 고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사회는 가차 없이 대학에 개혁과 변화의 압력을 가해왔음을 우리는 대학의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가치 창조를 통해 사회적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야 할 대학은 그 본래의 사명을 잃고 스스로 정체성의 위기, 경쟁력의 위기, 그리고 전문성의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대학이 급격한 사회적 변화 과정에서 그 본래적 기능과 역할을 수월하게 수행하지 못한 결과, 이제 대학은 사회적 변화와 혁신의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대학이 당면한 내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대학의 본질과 역할을 다시 한 번 반성하고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은 학문적인 관심과 지적 인식에의 의지를 지닌 교수와 학생들의 자치단체로 출발했습니다. 대학은 본질적으로 스스로 강력하게 독립을 지향하는 자유집단이었습니다. 대학을 뜻하는 ‘유니버스티’도 바로 자율적 공동체를 뜻합니다. ‘멀티버스티’는 거대하고, 다양하며, 복합적이면서 종합적인 구조와 기능을 갖춘 현대적 의미의 다원적인 대학을 일컫는 말입니다. 멀티버스티 역시 강제나 획일적 규제로서는 통하지 않는 자율적 유기체입니다. 자율적 유기체가 전체적으로 원활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자발성과 창의성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시대에 따라 삶의 방식과 가치관은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제도나 체계는 역사적으로 볼 때 일시적입니다. 대학 역시 시대의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진리에 대한 인간적인 열망은 바뀌지 않습니다. 진리에 대한 탐구와 학문의 연마가 대학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학이 자유로운 곳이어야 합니다.
많은 대학인들은 지금의 상황이 대학의 위기라고 말합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밝은 시대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어야 할 대학이, 사회적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지금 우리들에게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성적 성찰의 토대에서 뼈를 깎는 자기 개혁을 통해 대학이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와 혁신의 주체가 될 때, 대학의 위기는 기회로 반전될 것입니다. 어떠한 권위에도 구속되지 않고 실천의 절대적 원리를 스스로 통찰하여, 그것에 따라 자신을 스스로 규제해 가면서 시대의 진운에 능동적으로 호응할 때, 대학에 대한 외부의 간섭은 관심과 애정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필요하지 않는 것은 간섭이고 필요한 것이 관심입니다.
대학은 사회를 떠나 존립할 수 없습니다. 대학은 사회와 명멸을 함께 하는 공동운명체입니다. 진리를 탐구하고 학문을 연마하며 차세대의 지도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의 본질적 사명이 궁극적으로 구현되는 곳은 바로 사회입니다. 사회에 대한 봉사가 대학 존립의 궁극적인 목적이기에, 사회는 대학이 자신의 본질적 사명을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대학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간섭이 아닌 관심과 애정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대학은 인류의 번영과 사회의 진화를 선도적으로 추동함으로써, 사회의 관심과 지원에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세계는 지금 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는 큰 변혁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를 휩쓸었던 신자유주의의 벽이 무너지면서,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무한경쟁이라는 화두는 편협한 시장주의의 탈을 쓴 채, 우리 사회와 대학을 옥죄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19세기에 시작되었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가 끝나가고 이제는 아시아의 시대, 직선이 아닌 순환의 시대, 개혁보다는 조화를 강조하는 새로운 문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문명은 인터넷과 정보기술, 그리고 모바일로 대표되는 디지털경제의 혁명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지식기반경제와 정보사회를 외치지만, 이미 세계는 디지털경제 그 이후의 세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누구나 지식과 정보 그리고 창의성을 강조하지만, 이와 함께 개인의 감성과 이미지 그리고 넓고 깊은 교양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21세기의 대학은 ‘새로운 문명의 창조’라는 거대 담론의 중심에서 새로운 변화와 그에 상응한 가치를 창출하고, 동시에 그 변화의 파고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면서 변화의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춘 창의적 인재를 양성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존경하는 효원 가족 여러분!
부산대학교는 고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윤인구 박사의 헌신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대학교입니다. 진리ㆍ자유ㆍ봉사를 건학이념으로 1946년 5월 15일 개교한 부산대학교는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가슴 아프게도 무한경쟁에 입각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시책은 모든 지식과 정보 그리고 자원의 중앙 집중을 가속화시켜, 지역과 지역대학을 지방과 지방대학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늘 이 자리를 빌려 부산대학교의 획기적 발전을 위한 비전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부산대학교는 부산과 동남권이라는 지역을 포용하면서 중앙이 아니라 세계를 지향하고, 더 나아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새로운 가치 체계를 만들어, 세계 전체의 흐름을 견인하는 대학으로 변화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목표를 향해서 먼저 우리 부산대학교는 지역거점대학으로서 부산과 동남권이라는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산학협력이라는 막연한 구호보다는 진취적인 동반자적 관계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실행에 옮길 전략을 제시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그 이상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와의 상생과 협력으로 출발하지만 우리 부산대학교는 중앙과 지역이라는 이분법적 사고, 한국과 세계라는 이원적인 사고를 넘어서, 지역거점대학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효원 가족 여러분!
저는 이런 원대한 목표를 우리 효원 가족과의 진심어린 소통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저는 모든 대학사회의 구성원들과 진심어린 교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의 목표를 향한 대장정을 우선 소통으로 시작하려 함을 감히 선언하고자 합니다.
이제 우리 부산대학교는 ‘소통으로 하나 되는 부산대학교’입니다.
존경하는 효원 가족 여러분!
저는 이런 소통의 기반 위에서 우리의 원대한 목표를 향한 구체적인 지향점으로서, 우리 부산대학교를 무엇보다도 ‘대학다운 대학’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대학다운 대학! 이 말에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대학다운 대학이란 첫째, 시대의 흐름을 먼저 헤아려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그것을 이 사회, 세계와 나누는 지성(intelligence)의 장입니다. 이런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연구자를 시대와 사회를 이끄는 전문가와 지성인으로 존중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둘째, 대학다운 대학이란 자율과 창의에 기초한 의미(meaning)의 장입니다. 무한경쟁과 실적위주, 전시행정이 아니라, 상생과 협력 그리고 공동체 정신에 근거하여 자유로운 연구와 새로운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대학다운 대학이란 상상력과 창의력을 기반으로 감성과 지성을 나누는 교류(exchange)의 장입니다. 단순한 지식을 암기하고 전달하는 기능적 지식인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하면서 이웃과 사회와 공감하고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폭과 깊이를 겸비한 통섭형 인재를 배출해야 합니다.
돌이켜보건대 우리 부산대학교는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역사와 시대의 고비마다 제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진리, 자유, 봉사라는 건학이념을 되새기며, 대학다운 대학을 위한 우리의 소망을 더 다져간다면, 대한민국 뿐 아니라 이 세계를 향한 우리의 봉사와 기여는 더 확대될 것입니다. 부산대학교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우리 다 함께 힘을 합쳐 지혜와 소망을 나누지 않겠습니까?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입니다.
존경하는 효원 가족 여러분!
대학총장은 사회의 지성으로서 단순한 대학경영자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인간의 내면에서부터 생겨나고 내면에 뿌리를 내리는 학문만이 인격을 형성할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지식이나 말이 아니라 인격과 행위이다”라는 교육사상가 훔볼트의 명언을 가슴에 새겨두고, 부산대학교의 명예와 여러분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5년 후면 우리대학은 개교 7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인생으로 치면 ‘고희’에 해당하는 연륜을 가진 대학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고희를 맞을 준비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 대학이 한국 최고의 대학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주시기를 두손 모아 빌겠습니다.
여러분들의 건승을 축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2월 9일
부산대학교 제19대 총장 김 기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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