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신문

봄비와 강

부대신문*2012.03.08 16:30조회 수 113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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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월은 아직은 겨울 같다. 이따금씩 불어대는 찬바람이 매섭기로 치자면 시시한 겨울바람 못지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삼월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들썽거리는 것은 봄을 기다리는 설렘 때문이리라. 예나 지금이나 봄을 맞이하는 흥취는 매한가지인가보다. 정몽주는 <춘흥>(春興)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봄비 가늘어 방울지지 않더니/ 밤 깊어 희미하게 빗소리 들려라/ 눈 다 녹아 남쪽 개울에 물 불어날 것이니/ 풀싹은 얼마나 돋았을까”[春雨細不滴(춘우세부적)/ 夜中微有聲(야중미유성)/ 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 多少草芽生(다소초아생)]. 봄비에서 떠오른 상념은 불어날 개울물과 파릇파릇하게 돋아날 새싹에까지 이른다.
  첫 봄비가 언제 내리는가는 꼭 집어 말하기 힘들지만, 우수(雨水) 무렵이 아닐까 싶다. 눈이 비가 되고, 쌓인 눈이 녹아 물이 되는 절기가 우수이니까. 예부터 중국에서는 우수가 드는 날(양력 2월 19일경)로부터 경칩(양력 3월 5일경) 직전까지 15일간을 5일간씩 나눠 이렇게 특징지었단다. 첫 번째는 강물이 풀려 수달이 물고기를 잡는 때고, 두 번째는 기러기가 봄기운을 패해 북쪽으로 날아가는 때고, 마지막은 초목에 새싹이 돋는 때라고 했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옛말이 있다. 눈이 녹고, 강물이 풀리는 건 따지고 보면 모두 봄비 덕이다. 봄비에서 비롯된 작은 물줄기가 크기순으로 실개울을 거쳐, 실개천, 도랑, 개울, 내, 하천, 마침내 강으로 흘러드니 말이다. 봄비에 불어난 작은 물줄기가 강에 이르고, 그렇게 해서 모인 장대한 물줄기가 바다에 이르게 된 것은 강물이 강을 잃었기/버렸기 때문이리라.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은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선재동자의 구법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선재가 어머니를 찾아가는 도중에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법계, 곧 지혜의 바다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지혜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일 텐데, 그 중 최고는 나를 잃는/버리는 일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나’를 잃고서야 비로소 ‘나’가 되는 셈이다. 그 과정은 흡사 강물이 강을 잃고서야/버리고서야 바다에 이르게 되는 지난한 여정과 같다. 영화의 마지막에 선재가 읊조리는 구절은 숱한 유혹에 맞닥뜨리는 우리가 마음속 깊이 새겨둬야 할 노래이기도 하다. “세상은 자신을 잃어가면서 세상이 되네요. 하늘은 비를 잃고 허공이 되구요. 강은 강을 잃어 바다가 되지요. 꽃은 꽃을 잃어 열매가 되구요.” 후반을 흔히 말하는 투로 바꿔보면,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원문출처 : http://weekly.pusan.ac.kr/news/articleView.html?idxno=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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