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전기공학과 학생 창작물
인문과 과학의 아름다운 만남
*스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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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1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이날이야말로 301동 안에서 빵판꼽이 노릇을 하는 박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평소에는 그리 찾아도 없던 저항이 집히는 것마다 찾던 것이기도 하며, 조교가 평소엔 남는 소자가 없다고 해서 그렇게 서랍을 찾아도 없던 소자들이 뒤지는 족족 나오는 터였다.
비단 거기서 그치지 않았던 운수는 결과값 대박으로 이어졌으니, 첫째번에 서른 밀리 암페어, 둘째 번에 쉰 밀리암페어 셋째번에 일백 밀리암페어 --- 이렇게 딱딱 맞다니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실험에 재수가 옴 붙어서 근 한달 동안 검사하는 조교 구경도 못한 박첨지는 아웃풋 3가지가 찰깍하고 옷일로스코프에 떨어질 제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그의 학점이 바닥에서 쿨룩거리기는 벌써 3학기가 넘었다. 이 점 오 근처에서 학점이 기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18학점 넘게 넣어본 일이 없다. 구태여 쓰려면 못쓸 바도 아니로되, 그는 학점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信條)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따라서 교수님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대체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해동구석에 반듯이 앉아 가지고 공부하긴 하는데 연습문제는 커녕, 예제도 못푸는 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이렇게 안되는 일에 실험도 한몫 했으리라.
그때 논설실험때도 박첨지가 오래간만에 소자를 얻어서 플립플롭과 카운터를 구현해 주었더니 실험파트너의 말에 의하면, 오라질빵판이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CC를 띄우고 소자를 태우는 바람에 손도 못쓰고 실험실을 나갔음이라. 누가 빼앗을 듯이 볼티지가 아래로 처박질하더니만 한나절 후부터 옷일로 스코프는 게인이 낮다, 파형이 켕긴다 하고 눈을 홉뜨고 지랄을 하였다. 그때 박첨지는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오라질빵판, 이놈의 실험은 할 수가 없어, 소자 없어서 병, 있으면 CC 떠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아웃풋이 바루 뜨지 못해!"
하고 앓는 옷일로스코프의 오토-셋을 한 번 후려갈겼다.
홉뜬 개형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파형에는 이슬이 맺히었다. 박첨지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하였다.
망할놈의 빵판년은 그러고도 소자 처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가변저항이 필요하다고 박첨지를 졸랐다.
"이런 오라질 빵판년! 실험 1. 실험도구 및 옷일로스코프 사용법 실험도 못하는 년이 가변저항은. 또 처먹고 지랄병을 하게!!!"
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끼워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Scene #2
이제 실험이 잘되서... 인제 조교에게 검사를 받을 수도 있다. 앓는 빵판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실험 파트너(세살먹이)를 집에 보낼수도 있다. 일백 킬로옴 가변저항을 손에 쥔 박첨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흐르는 땀을 기름 주머니가 다 된 왜 목 수건으로 닦으며, 소자를 챙겨서 돌아올 때였다.
뒤에서 "박첨지 학생!"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그 실험 죠교인줄 박첨지는 한번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조교는 다짜고짜로,
" 1번 실험 전류값이 얼마요? "
라고 물었다. 아마도 어떤조가 실험이 잘되었다는 말을 듣고 검사하려 함이로다.그 와중에 다른 실험 조를 검사하려다 박첨지를 보고 뛰어나왔음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왜 다른 조들의 외침에도 뿌리치고 왔으랴.
" 1번 실험 말씀입니까?"
하고, 박첨지는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이 우중에 실험을 종결하고 귀가하기 싫었음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고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나올 제 빵판의 요구가 마음에 켕기었다. 1번 실험 결과를 보자고 한 말을 들은 순간에 말썽만 일으키던 빵판 출력을 문 옷일로스코프의 화면이 박첨지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그래, 1번 실험 결과값이 얼마란 말이오?"
하고 조교는 초조한 듯이 박첨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잣말같이,
"일번 실험 결과(結果)치 차가 서른 밀리 암페어 가까이 만치 정도면 아주 잘 나오 점에 있고, 그 다음에는 오십 미리암페어 점 정도던가...."
라고 중얼거린다.
"서른 미리 암페어가 나오던뎁쇼..."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박첨지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결과치에 놀래었다. 한번 실험만에 이런 결과값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만인가! 그러자, 그 검사받을 용기가 빵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안으로 어떠랴 싶었다.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 인제 검사를 받고 당당히 귀가할 수도 있다. 앓는 빵판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실험파트너(세살먹이)에게 이제 집에 가자고 할 수도 있다. ---일백옴 가변저항을 손에 쥔 박첨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Scene #3
이제 마지막 실험 값 만 검사받고, 그래프만 디스켓에 저장하면 된다는 말에 박첨지는 디스켓을 얻으러 밖으로 달려갔으랴. 그럴 즈음에 마침 매점에서 친구 치영이가 나온다.
"여보게 박첨지, 자네 실험 하다가 나온 모양일세 그려, 실험 잘되는 모양이니 나와 한잔 만 빨리게."
박첨지는 이 친구를 만난 게 어떻게 반가운지 몰랐다. 디스켓을 빌려줄 은인이나 무엇같이 고맙기도 하였다.
"자네는 벌써 검사 받은 모양이네 그려. 자네도 재미가 좋아 보이."
하고 박첨지는 얼굴을 펴서 웃었다.
"압다. 실험 망한다고 찡그릴 낸가. 그런데 여보게, 자네 너무 지쳐 보이니 어서 들어와 음식좀 들리게."
매점안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커피를 데우는 온장고를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선반에 놓여진 빵이며, 포카칩이며 나초며 오감자며 신라면 진라면 사리곰탕면…….이 너저분하게 늘어 놓은 과자더미 컵라면 더미에 박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 먹이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배고픈 이는 우선 분량 많은 컵라면 두개를 쪼이기로 하고 커피캔을 한 그릇 청하였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컵라면국 한 그릇을 그냥 물같이 들이키고 말았다. 박첨지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하였다. 컵라면 두개를 부어라 하였다.
치영은 의아한 듯이 박첨지를 보며,
"여보게 또 먹다니, 자네지금 실험중이 아닌가."
"아따 이놈아, 실험하나가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실험을 대통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끄끄끄 "
"그래 얼마가 나왔단 말인가?"
"서른 밀리암페어가 나왔어, 서른 밀리암페어!! ……괜찮다, 괜찮아.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실험이 대박쳤는데."
"어, 이사람 돌았군, 그만두세."
"이놈아, 이걸 먹고 말 박첨지 인가?? 또 물 부어, 물 부어!!."
라고 외쳤다.
Scene #3
또 한 그릇 먹고 나서 박첨지는 치영의 어깨를 치며 문득 껄껄 웃는다. 그 웃음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매점에 있던 삼백 하나 동의 공돌이 들의 눈이 박첨지에게로 몰린다 .
웃음소리들은 높아졌다. 그런 그 웃음소리들이 사라지기 전에 박첨지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치영은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금방 웃고 지랄을 하더니 우는 건 무슨 일인가?"
박첨지는 연해 코를 들여마시며,
"우리 실험이 망했다네 ㅠㅠ ...."
"뭐, 아까 잘된다더니, 왜? 언제실험이 이사람아"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예끼 미친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망했어…… 참말로. 빵판 전선뭉치와 세살먹이 실험파트너를 실험실에 뻐들쳐 놓고 내가 컵라면이나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ㅠㅠ"
하고 박첨지는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치영은 흥이 조금 깨어지는 얼굴로,
"원 이사람아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 하나. 그러면 실험실로 가세, 가."
하고 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치영의 끄는 손을 뿌리치더니 박첨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싱그레 웃는다.
"망하긴 누가 망해."
하고 득의 양양.
"망하기는 왜 망해, 생떼같이 잘 되기만 하고 있단다. 그 오라질빵판년이 나를 죽이지. 인제 나한테 속았다 ."
하고 어린애 모양으로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 사람이 정말 미쳤단 말인가. 나도 자네 실험 안되서 끙끙 앓는단 말은 들었었는데."
하고 치영이도 어떤 불안을 느끼는 듯이 박첨지에게 또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안 망했어, 안 망했데도 그래."
박첨지는 홧증을 내며 확신있게 소리를 질렀으되 그 소리엔 혹시나 안망한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이 있었다. 기어이 만 원어치를 채워서 캔커피를 한 잔씩 더 먹고 나왔다.
궂은 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내린다.
Scene #4
박첨지는 배가부르고 졸려오는 중에도 가변저항을 사가지고 실험실 자리에 다다랐다. 만약 박첨지가 배가 부르고 졸리웁지 않았다면, 구석진데 위치한 망할놈의 인터넷도 안되는 컴퓨터와 콘센트도 없는 자리인 실험자리에 한 발을 들여놓았을 제,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靜寂)에 다리가 떨렸으리라.
쿨룩거리는 오토셋 소리도 들을 수 없다. 틱틱 거리는 CC 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깨뜨린다느니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무엇인가 타고있는 듯한 그윽한 향기, 그 빵 굽는듯한 냄새 날 뿐이다.
혹은 박첨지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맞을 빵판년, 남편이 들어왔는데 켜지지도 않아. 이 오라질년."
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박첨지의 몸을 엄습해오는 무시무시한 증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인 까닭이다.
하여간 박첨지는 그 지랄맞은 옷일로스코프를 왈칵 켰다. 구역을 나게 하는 Ch2 의 아웃풋 파형 --- 인풋 조차도 제대로 안들어오고있는 Ch1 의 파형..., 가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전선 다발... 게다가 수상한 빵 굽는 냄새가 무딘 박첨지의 코를 찔렀다.
실험실에 책상에 들어서며 가변저항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 오라질 빵판년, 주야장천(晝夜長川) 전선만 쳐 꼽고 바닥에 누워 있으면 제일이야!
가변저항 처꼽아 줘도 왜 아웃풋을 내지를 왜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빵판의 전원단자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빵판이 아니고 단지 한조각의 플라스틱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에 빽빽 오토-셋 소리가 울음 소리로 변하였다. 실험파트너(세살박이)가 꼽아놓았던 오실로 스코프를 빼어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붙어서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응애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게 아니고, 마치 옷일로스코프에서 나는 듯하였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오토-셋 누를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박첨지는 빵판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파뿌리 같은 빵판을 흔들며,
"이년아, 아웃풋을 내, 아웃을!!! 전선이 끊겼어!!??, 이 오라질빵판!"
"(오실로 스코프)……"
"으응, 이것 봐, 아무말이 없네."
"(오실로 스코프)……"
"이년아, 타버렸냔 말이냐, 왜 아웃풋이 없어?"
"(오실로 스코프)……"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타버렸나보이."
이러다가 빵판위의 흰 단자들을 덮은, 녹아버린 검은 소자를 알아보자마자,
"이 파형! 이 파형! 왜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노이즈만 나오느냐!!! ,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이었다. 그러자 실험자의 눈에서 떨어진 닭똥 같은 눈물이 빵판위의 뻣뻣한 단자를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박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빵판에 비벼대며 중얼거렸다.
"가변저항을 가져 놓았는데 왜 파형을 못내나..., 왜 파형을 내지를 못하나……괴상하게도 오늘은 실험이 잘되더니만…… 실험이 잘되더니만...."
인문과 과학의 아름다운 만남
*스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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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1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이날이야말로 301동 안에서 빵판꼽이 노릇을 하는 박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평소에는 그리 찾아도 없던 저항이 집히는 것마다 찾던 것이기도 하며, 조교가 평소엔 남는 소자가 없다고 해서 그렇게 서랍을 찾아도 없던 소자들이 뒤지는 족족 나오는 터였다.
비단 거기서 그치지 않았던 운수는 결과값 대박으로 이어졌으니, 첫째번에 서른 밀리 암페어, 둘째 번에 쉰 밀리암페어 셋째번에 일백 밀리암페어 --- 이렇게 딱딱 맞다니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실험에 재수가 옴 붙어서 근 한달 동안 검사하는 조교 구경도 못한 박첨지는 아웃풋 3가지가 찰깍하고 옷일로스코프에 떨어질 제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그의 학점이 바닥에서 쿨룩거리기는 벌써 3학기가 넘었다. 이 점 오 근처에서 학점이 기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18학점 넘게 넣어본 일이 없다. 구태여 쓰려면 못쓸 바도 아니로되, 그는 학점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信條)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따라서 교수님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대체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해동구석에 반듯이 앉아 가지고 공부하긴 하는데 연습문제는 커녕, 예제도 못푸는 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이렇게 안되는 일에 실험도 한몫 했으리라.
그때 논설실험때도 박첨지가 오래간만에 소자를 얻어서 플립플롭과 카운터를 구현해 주었더니 실험파트너의 말에 의하면, 오라질빵판이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CC를 띄우고 소자를 태우는 바람에 손도 못쓰고 실험실을 나갔음이라. 누가 빼앗을 듯이 볼티지가 아래로 처박질하더니만 한나절 후부터 옷일로 스코프는 게인이 낮다, 파형이 켕긴다 하고 눈을 홉뜨고 지랄을 하였다. 그때 박첨지는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오라질빵판, 이놈의 실험은 할 수가 없어, 소자 없어서 병, 있으면 CC 떠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아웃풋이 바루 뜨지 못해!"
하고 앓는 옷일로스코프의 오토-셋을 한 번 후려갈겼다.
홉뜬 개형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파형에는 이슬이 맺히었다. 박첨지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하였다.
망할놈의 빵판년은 그러고도 소자 처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가변저항이 필요하다고 박첨지를 졸랐다.
"이런 오라질 빵판년! 실험 1. 실험도구 및 옷일로스코프 사용법 실험도 못하는 년이 가변저항은. 또 처먹고 지랄병을 하게!!!"
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끼워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Scene #2
이제 실험이 잘되서... 인제 조교에게 검사를 받을 수도 있다. 앓는 빵판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실험 파트너(세살먹이)를 집에 보낼수도 있다. 일백 킬로옴 가변저항을 손에 쥔 박첨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흐르는 땀을 기름 주머니가 다 된 왜 목 수건으로 닦으며, 소자를 챙겨서 돌아올 때였다.
뒤에서 "박첨지 학생!"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그 실험 죠교인줄 박첨지는 한번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조교는 다짜고짜로,
" 1번 실험 전류값이 얼마요? "
라고 물었다. 아마도 어떤조가 실험이 잘되었다는 말을 듣고 검사하려 함이로다.그 와중에 다른 실험 조를 검사하려다 박첨지를 보고 뛰어나왔음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왜 다른 조들의 외침에도 뿌리치고 왔으랴.
" 1번 실험 말씀입니까?"
하고, 박첨지는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이 우중에 실험을 종결하고 귀가하기 싫었음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고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나올 제 빵판의 요구가 마음에 켕기었다. 1번 실험 결과를 보자고 한 말을 들은 순간에 말썽만 일으키던 빵판 출력을 문 옷일로스코프의 화면이 박첨지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그래, 1번 실험 결과값이 얼마란 말이오?"
하고 조교는 초조한 듯이 박첨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잣말같이,
"일번 실험 결과(結果)치 차가 서른 밀리 암페어 가까이 만치 정도면 아주 잘 나오 점에 있고, 그 다음에는 오십 미리암페어 점 정도던가...."
라고 중얼거린다.
"서른 미리 암페어가 나오던뎁쇼..."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박첨지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결과치에 놀래었다. 한번 실험만에 이런 결과값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만인가! 그러자, 그 검사받을 용기가 빵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안으로 어떠랴 싶었다.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 인제 검사를 받고 당당히 귀가할 수도 있다. 앓는 빵판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실험파트너(세살먹이)에게 이제 집에 가자고 할 수도 있다. ---일백옴 가변저항을 손에 쥔 박첨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Scene #3
이제 마지막 실험 값 만 검사받고, 그래프만 디스켓에 저장하면 된다는 말에 박첨지는 디스켓을 얻으러 밖으로 달려갔으랴. 그럴 즈음에 마침 매점에서 친구 치영이가 나온다.
"여보게 박첨지, 자네 실험 하다가 나온 모양일세 그려, 실험 잘되는 모양이니 나와 한잔 만 빨리게."
박첨지는 이 친구를 만난 게 어떻게 반가운지 몰랐다. 디스켓을 빌려줄 은인이나 무엇같이 고맙기도 하였다.
"자네는 벌써 검사 받은 모양이네 그려. 자네도 재미가 좋아 보이."
하고 박첨지는 얼굴을 펴서 웃었다.
"압다. 실험 망한다고 찡그릴 낸가. 그런데 여보게, 자네 너무 지쳐 보이니 어서 들어와 음식좀 들리게."
매점안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커피를 데우는 온장고를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선반에 놓여진 빵이며, 포카칩이며 나초며 오감자며 신라면 진라면 사리곰탕면…….이 너저분하게 늘어 놓은 과자더미 컵라면 더미에 박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 먹이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배고픈 이는 우선 분량 많은 컵라면 두개를 쪼이기로 하고 커피캔을 한 그릇 청하였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컵라면국 한 그릇을 그냥 물같이 들이키고 말았다. 박첨지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하였다. 컵라면 두개를 부어라 하였다.
치영은 의아한 듯이 박첨지를 보며,
"여보게 또 먹다니, 자네지금 실험중이 아닌가."
"아따 이놈아, 실험하나가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실험을 대통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끄끄끄 "
"그래 얼마가 나왔단 말인가?"
"서른 밀리암페어가 나왔어, 서른 밀리암페어!! ……괜찮다, 괜찮아.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실험이 대박쳤는데."
"어, 이사람 돌았군, 그만두세."
"이놈아, 이걸 먹고 말 박첨지 인가?? 또 물 부어, 물 부어!!."
라고 외쳤다.
Scene #3
또 한 그릇 먹고 나서 박첨지는 치영의 어깨를 치며 문득 껄껄 웃는다. 그 웃음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매점에 있던 삼백 하나 동의 공돌이 들의 눈이 박첨지에게로 몰린다 .
웃음소리들은 높아졌다. 그런 그 웃음소리들이 사라지기 전에 박첨지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치영은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금방 웃고 지랄을 하더니 우는 건 무슨 일인가?"
박첨지는 연해 코를 들여마시며,
"우리 실험이 망했다네 ㅠㅠ ...."
"뭐, 아까 잘된다더니, 왜? 언제실험이 이사람아"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예끼 미친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망했어…… 참말로. 빵판 전선뭉치와 세살먹이 실험파트너를 실험실에 뻐들쳐 놓고 내가 컵라면이나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ㅠㅠ"
하고 박첨지는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치영은 흥이 조금 깨어지는 얼굴로,
"원 이사람아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 하나. 그러면 실험실로 가세, 가."
하고 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치영의 끄는 손을 뿌리치더니 박첨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싱그레 웃는다.
"망하긴 누가 망해."
하고 득의 양양.
"망하기는 왜 망해, 생떼같이 잘 되기만 하고 있단다. 그 오라질빵판년이 나를 죽이지. 인제 나한테 속았다 ."
하고 어린애 모양으로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 사람이 정말 미쳤단 말인가. 나도 자네 실험 안되서 끙끙 앓는단 말은 들었었는데."
하고 치영이도 어떤 불안을 느끼는 듯이 박첨지에게 또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안 망했어, 안 망했데도 그래."
박첨지는 홧증을 내며 확신있게 소리를 질렀으되 그 소리엔 혹시나 안망한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이 있었다. 기어이 만 원어치를 채워서 캔커피를 한 잔씩 더 먹고 나왔다.
궂은 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내린다.
Scene #4
박첨지는 배가부르고 졸려오는 중에도 가변저항을 사가지고 실험실 자리에 다다랐다. 만약 박첨지가 배가 부르고 졸리웁지 않았다면, 구석진데 위치한 망할놈의 인터넷도 안되는 컴퓨터와 콘센트도 없는 자리인 실험자리에 한 발을 들여놓았을 제,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靜寂)에 다리가 떨렸으리라.
쿨룩거리는 오토셋 소리도 들을 수 없다. 틱틱 거리는 CC 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깨뜨린다느니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무엇인가 타고있는 듯한 그윽한 향기, 그 빵 굽는듯한 냄새 날 뿐이다.
혹은 박첨지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맞을 빵판년, 남편이 들어왔는데 켜지지도 않아. 이 오라질년."
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박첨지의 몸을 엄습해오는 무시무시한 증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인 까닭이다.
하여간 박첨지는 그 지랄맞은 옷일로스코프를 왈칵 켰다. 구역을 나게 하는 Ch2 의 아웃풋 파형 --- 인풋 조차도 제대로 안들어오고있는 Ch1 의 파형..., 가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전선 다발... 게다가 수상한 빵 굽는 냄새가 무딘 박첨지의 코를 찔렀다.
실험실에 책상에 들어서며 가변저항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 오라질 빵판년, 주야장천(晝夜長川) 전선만 쳐 꼽고 바닥에 누워 있으면 제일이야!
가변저항 처꼽아 줘도 왜 아웃풋을 내지를 왜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빵판의 전원단자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빵판이 아니고 단지 한조각의 플라스틱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에 빽빽 오토-셋 소리가 울음 소리로 변하였다. 실험파트너(세살박이)가 꼽아놓았던 오실로 스코프를 빼어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붙어서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응애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게 아니고, 마치 옷일로스코프에서 나는 듯하였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오토-셋 누를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박첨지는 빵판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파뿌리 같은 빵판을 흔들며,
"이년아, 아웃풋을 내, 아웃을!!! 전선이 끊겼어!!??, 이 오라질빵판!"
"(오실로 스코프)……"
"으응, 이것 봐, 아무말이 없네."
"(오실로 스코프)……"
"이년아, 타버렸냔 말이냐, 왜 아웃풋이 없어?"
"(오실로 스코프)……"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타버렸나보이."
이러다가 빵판위의 흰 단자들을 덮은, 녹아버린 검은 소자를 알아보자마자,
"이 파형! 이 파형! 왜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노이즈만 나오느냐!!! ,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이었다. 그러자 실험자의 눈에서 떨어진 닭똥 같은 눈물이 빵판위의 뻣뻣한 단자를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박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빵판에 비벼대며 중얼거렸다.
"가변저항을 가져 놓았는데 왜 파형을 못내나..., 왜 파형을 내지를 못하나……괴상하게도 오늘은 실험이 잘되더니만…… 실험이 잘되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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