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육군 나왔습니다.
후방 부대입니다.
그래서 눈 안 치웠습니다.
어디 가서 힘들었다고 말은 못 하는데
대신에 좀 많이 맞았습니다.
몸이 지치면 피곤해서 애들 괴롭힐 힘도 없을텐데 시간은 안 가고 심심하니 애들 괴롭히면 시간이 빨리 가지 말입니다.
아무튼 그러니 내무부조리에 관해서 이야기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정치 얘기만 하는 것 같기도 해서 환기 차원에서 이 글을 씁니다.
사실 군대에서 때리지 말라 괴롭히지 말라 이렇게 얘기하는 건 수십년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80년대 신문에서도 선진 병영문화, 군생활 편해졌다 뭐 이런 얘기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전혀 나아지지 않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내가 보기에는 "잘못된 사법체계"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군대는 징병제이고 또 갔다 와도 아무런 메리트가 없기 때문에
(군대 가서 이것저것 배우면서 사람 된다고 하는데, 그런 건 사회생활 하면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군대 가고싶어서 가는 사람 없습니다. 거의 다 억지로 끌려와요.
억지로 끌려온 인간들에게 청소해라 작업해라 훈련해라 시키면 말 들으려 하겠습니까? 안 듣죠.
하는 척만 하다가 대충 시간만 때우다가 끝내고 싶어합니다. 머릿속에는 대개 집에 가는 것 말고 없어요
결국 이런 인간들을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안 하면 얻어맞는다, 괴롭힘 당한다, 사회적으로 병신 된다는 등의 "공포"를 이용해서 사람을 통제합니다.
뭐 여기까진 좋습니다.
문제는 몇몇 븅신같은 놈들이 공포분위기 조성의 본 목적을 한참 벗어나서 남용하는 데에 있습니다.
바닥에 침 뱉어놓고 핥으라 시키고 변기에 남은 똥자국 핥으라 시키고..
시키면 무서우니까 하기는 합니다. 근데 대체 하는 이유가 뭐죠? 그걸 해서 뭐가 남을까요?
담당구역 청소상태가 미비하고 불량하여 해당 병사의 뺨을 때렸다.. 이건 뭐 이유라도 있습니다(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그치만 세상에는 이유나 논리 따위가 전혀 통하지 않는 또라이들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런 인간들이 군대에서 권력을 잡으면 피곤해집니다.
단지 심심하다는 이유로 우리 소대 막내랑 옆소대 막내 불러다가 환복대결 시키고, 포켓몬대결 시키고, 아무튼 뭐 이것저것 시키는 것 정도는 양반이죠. 안 때리고 욕 안하는 것만으로도 감사천만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같은 장면을 자꾸 보다보면 무감각해져요. 아무렇지도 않게 된단 말입니다. 목 자르는 동영상도 처음 볼 때나 징그럽지 계속 보다보면 그저 그렇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집단폭력에 무감각한 또라이 집단이 탄생합니다.

(자기도 당했고 남들도 하고 있으니 그저 당연하기만 한 군대문화이자 부대전통일 뿐이며 여기에 대해 의문 다는 놈은 사회부적응자다! 참고 견디는게 남자고 해병이지 니들 그딴 마인드로 할 거면 해병 왜 왔어?)
그러다가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터져나오면
상부에서 내려오는 공문은 항상 똑같습니다.
애들 괴롭히지 마라 때리지 마라 욕하지 마라, 병장도 걸레 잡아라, 솔선수범해라, 위험한 작업은 이등병들 시키지 마라 등등등.
부대마다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군생활 할 무렵에는 여러 악폐습이 거의 사라져 가던 시기였습니다. 전역하고 좀 지나서는, 같은 계급끼리 생활하는 동기생활관을 만들기도 했고요.
애들한테 잘 대해주고, 과자 사주고, 담배 사주고, 이거 해주고, 저거 해주고, 친해지고, 뭐 다 좋습니다.
좋은데요.
문제는 얘들한테 뭐 시키면 안 합니다.
아니 그 전에 할 줄을 몰라요. 해봤어야 알지. 맨날 상병장들이 대신 해 주니까 모릅니다. 아무것도.
물론 나는 가르쳐주려고 했습니다만 열의를 가지고 배우려는 애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부사수 만들어서 억지로 가르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간부들이 관심을 가지고 관리해야 할 문제인데 기타 잡무가 많기도 많거니와 관찰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이런 문제에는 관심이 없더라고요.
결국 될 대로 되라, 나는 모른다, 집에 오면 끝이다, 나머지는 니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시간만 때우다가 인수인계는 하나도 안 해주고 전역했습니다(그래봤자 1111 소총수이지만, 부대 특성상 백지전술이나 개인 주특기에 관해서나 가르쳐야 할 내용이 좀 많았습니다. 평생 안하던 공부를 군대 와서 하게 되었다고 하는 애들도 있었죠. 기타 미장이나 용접이나 도색 등등 사역작업에서도 꼭 하나씩은 후계자를 만들어놓고 전역하곤 했는데 우리 동기들은 아무것도 안 가르쳐주고 전역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대목에 동감할 겁니다.
부대 내의 실무를 책임지던 애들이 전역하고 나면, 그제서야 간부들은 깨닫습니다. 자기가 직접 발로 뛰면서 애들을 가르쳐야 된다는 것을요. 근데 머리만 굵어진 애들이 하려고 듭니까? 안 하죠. 아니 하려 해도 못 하는거지.
일병 새끼가 자기 총도 제대로 못 닦는 장면을 봤다고 칩시다. 옛날 같았으면 손에 집히는거 몇개 던지고 시작했겠지만 가서 일단 차분하게 물어봅니다. 왜 할 줄 모르냐. 그러면 자기는 훈련소에서 k-2만 만져봤는데 자대 오니까 m16을 주길래 분해할 줄을 모르겠다. 뭐 대충 이런 얘기를 하겠죠. 기가 차고 얼탱이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방법을 모르면 군 생활이 끝나나? 적극적으로 알아봐야 할 것 아닌가? 일병 달 때까지 자기 총 닦는 법을 배우려고도 안 하는 이 녀석의 됨됨이도 그렇거니와 대체 일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이놈의 맞고참은 무엇을 했는가? 이 병신들의 분대장은 대체 무엇을 했는가? 사지방에서 페북이나 들여다보던 그 놈의 뒤통수가 떠오르겠죠. 당장이라도 "2분대장 가서 오라 그래" 해서 페북 볼 시간은 있고 후임들 관리할 시간은 없더냐고 조목조목 따지고 싶을 겁니다. 머릿속에 갈구는 레파토리가 10개 이상 떠오르지만
그러나 참습니다. 괜히 또 애들 건드렸다가 휴가짤리고 영창 가서 동기들보다 뒤늦게 전역하는 사태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조용히 타이르면 이 일병이는 대답만 열심히 하고 나중에 총기 꺼내서 열어보면 그대로겠죠
(이등병새끼 견착하는 꼬라지나, 족같이 덜렁거리는 탄입대, 엑스반도 끈처리 등등 쟤 고참들이 너무 직무유기를 하고 방치한 티가 난다. 사진으로 보는 내가 대신 해주고 싶을 지경이다. 언론에서 사진 찍을 정도로 규모 있는 훈련을 하는데도 저지랄인데, 그렇다고 옆에 있는 중대장이 일일이 저런걸 다 챙겨줘야 하는가? 그것이 불가능하므로, 또는 귀찮으므로 대신에 소대장을 털고, 탈탈 털린 소대장은 고참들 붙잡고 갈구고... 이하생략)
결국 큰 훈련이나 검열에서 대판 깨지고 나면 다시 옛날로 회귀합니다. 간부는 군대가 자기 직장이니까 진급이 걸린 문제잖아요. 어떻게든 되게끔 만들어야 됩니다. 단기간에 가장 빠른 효과를 보는 방식은 결국 공포와 폭력이고, 병영문화를 다시 옛날의 그 일본식 병영문화로 돌려 버립니다. 그럼 사건은 다시 원위치...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그리고 또라이들이 출현하며, 또라이들은 인명사고를 유발시키고, 인명사고가 터지면 또다시 공문이 내려와서 애들 풀어주라고 시킵니다.
이거 무한반복이에요. 한국 군대문화사는 이 과정을 되풀이하여 왔습니다.
때리는 놈은 잘못됐습니다. 이유가 어떻든 상호간에 때리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알고 있을 겁니다.
무고하게 맞는 사람은 잘못 없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저질러서 맞은 사람(누가 봐도 자기 잘못인 것. 예를 들자면 야간 경계 근무 갔다와서 탄창 반납 안하고 그대로 건빵주머니에 처넣고 잤다거나) 에게는 분명히 잘못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맞아도 되는 건 아닙니다.
동양 문화인지 한국 문화인지 아무튼 일을 크게 키우지 않고 "내 선에서 적당히" 덮으려는 것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위의 예시에서, 새벽에 탄창 하나가 모자란 것을 발견한 당직병이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근무자새끼들 다 깨워서 확인해보라고 시키고, 결국 저 멍청한 일병 호주머니 안에서 탄창이 나왔다. 간부는 티비보면서 처 자느라 아직 모른다.
상황이 그렇다면 간부한테 굳이 보고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씨씨티비 안 보이는 곳에 데려가서 때려 패든, 상병급들만 깨워서 집합시키든, 아니면 푸닥거리 안하고 그냥 넘어가든 <자기가 알아서 판단하여 처벌하고 자기 선에서 일을 마무리>짓습니다. 일을 괜히 크게 키우느니 자기 선에서 무마하는게 가장 낫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거 위험합니다. 재량권이 전부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처벌에 한계가 없다는 점에서 위험해요.
대개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가슴 몇 대 때리고 나서 아팠냐고 달래주고 담배 하냐고 물어보고 입에 물려주고 불 붙여주고 "나도 너한테 악감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잖아 너도 알지? 군생활 잘하자 뭐 어쩌고저쩌고" 이렇게 마무리 짓습니다만
당직병이 또라이다(또는 너무 오랫동안 폭력적 환경에 노출되어 무감각해졌다). 그래서 변기를 핥으라고 시켰다. 여기에는 이유도 논리도 인권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시키는 거고, 하는 겁니다.
(니 미쳤나? 아닙니다. 니 하는 짓거리 보면 미친놈 같은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닌데? 이 씨발새가 표정봐라 ... 이하생략)
모든 법률에는 처벌 범위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빵 훔쳤다고 손모가지 자르고 그러지는 않잖아요.
과거 서구 군대에서도 구타와 가혹행위가 만연했습니다(특히 19세기 전열보병시대). 차라리 싸우다가 얼른 죽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요. 그러나 폭력은 무제한적인 재량에 의해 휘둘러지진 않았습니다. 어떤 잘못을 저지르면 어떠한 처벌을 받는다고 군법에 명기되어 있었습니다. 체벌은 간부가 직접 행해야 했고 모든 소대원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물론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니 그 와중에도 많은 미친놈들이 계셨겠지만 적어도 군대 체계가 그렇게 막장으로 흐르진 않았습니다.
내 생각에 해결방법은 이것 말고는 없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적법한 절차에 의거해 처벌하는 것.
자기 총기 관리를 불량하게 했으면 응당 그에 맞는 처벌을 받고, 때렸으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자기 부대에서 영창 많이 보내면 진급에 불이익 있을까봐 은폐하고 축소하고 자기 선에서 마무리 짓는 간부들도 많은데, 그러면 그럴수록 사법체계에 혼란이 옵니다. 자기 재량으로 주관에 따라 처벌하게 되니까요. 그 재량권이 현명한 사람에게 돌아간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또라이에게 주어졌다? 그러면 인명사고 터지는 겁니다.

(세계 4위의 강력함을 자랑하는 선진 대한 육군의 한 단면)

(시간 이틀 준다. 우리 내무반 고참님들 이름 계급 군번 다 외워라. 그리고 이거 간부한테 보여주지마. 암기강요니까 걸리면 나 좆되는데, 어차피 너 군생할 편하라고 외우게 시키는거야. 알지? 니 동기들한테 뒤처지기 싫으면 열심히 해.. 나중에 병신 취급받기 싫으면)
자기가 어떤 액션을 행하면, 그에 상응하는 리액션이 날라온다는 것을 학교에서도 교육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군대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마찬가지거든요. 교권이 침해된다고 하여 선생님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 주면 학생을 죽도록 때려패는 미친 교사가 나오고
아이들에게 열린교육이니 뭐니 하면서 애들 편만 들어주면 선생을 때리는 미친놈이 나옵니다.
중앙에서 균형을 잘 잡으라 이 말이 아니라 학교에서 폭력 사건 발생하는 순간 미국처럼 경찰이 바로 출동해서 체포하고 잡아넣는게 맞다고 봅니다. 자기가 저지른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죠. 그게 선생이든 학생이든 말입니다.
어.. 이상입니다. 제 말에 동의하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을 테죠.
느낀 점이라든가 보충할 부분이라던가 혹은 내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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