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년 전, 강처녀 여사님은 평생동안 곰탕집을 하시며 힘들게 모으신 재산을 "나라를 위한 인재를 양성하는
고귀한 일에 쓰였으면 한다" 라고 하시며 부산대학교 학생들을 위해 흔쾌히 기부 하셨습니다.
강처녀 여사님을 기려서 만든 "남안 장학금"은, 천여명이 넘는 부산대 학우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제 1 도서관 앞, 강처녀 여사님의 흉상이 있습니다. 학우여러분들도 오늘 하루 흉상앞에 들려 꼭 그 뜻을
기려 주셨으면 합니다.
날씨가 많이 춥네요. 옷 따뜻하게 입고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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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곰탕집할머니' 남안장학생 1000명 돌파
11월5일 오전 11시... ‘남안 여사 16주기 추모행사’
![]() 고 강처녀 여사. /사진제공=부산대 © News1 ‘곰탕집 할머니’가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하면서 조성된 기금으로 장학금을 받은 부산대 학생들이 16년 만에 1000명(1019명)을 돌파했다. 1996년 부산 남포동에서 곰탕집을 운영하던 한 할머니가 당시 시가 50억원(공시지가 22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부산대에 기부했다. “나라를 위한 인재를 양성하는 고귀한 일에 쓰였으면 한다”는 뜻을 밝힌 기부자는 부산 남포동에서 곰탕집을 운영하며 근검절약해 ‘또순이’로 유명했던 고 남안(南安) 강처녀 여사였다. 같은 해 11월 5일 남안 여사는 숙환으로 별세했고 부산대는 고인의 아호(雅號) ‘남안’을 따 남안장학기금을 설립했다. 부산대는 남안 여사의 뜻에 따라 기부 부동산을 처분해 남안장학기금 25억2747만원을 마련했다. 이 장학기금의 운영수익금(연 1억원 정도)으로 1997년부터 지금까지 1019명이 10억 4568만원의 장학금 혜택을 받았다. 부산대는 지난해부터 150만원의 남안장학금 지급액을 등록금 전액으로 확대,가정형편이 곤란한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도움 받을 수 있도록 개선했다. 장학생 선발도 비공개 추천선발에서 공개모집·심사선발 방식으로 변경하고 남안장학생 지도교수를 위촉하는 등 장학생들이 자긍심을 고취하고 기부자의 선행을 유지 계승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했다. 남안 여사는 1928년 경남 진주에서 가난한 집안의 둘째딸로 태어나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곤궁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친척집을 전전하다 20세에 홀로 부산에 와 파출부, 주방일 등으로 온갖 고생을 하던 중 1962년 남포동에 4평 남짓한 곰탕집을 열었다. 5년 후 3층 건물을 구입해 종업원 20명을 둔 대규모 식당으로 키워냈다. 특유의 근면과 절약정신의 결과였다.자신은 평생을 혼자 몸으로 지내면서도 2명의 오빠와 언니가 사망한 후 남겨진 조카 3명을 대학교육까지 받도록 했다. 남안 여사는 젊은 날의 힘든 여정으로 고혈압과 중풍을 앓게 됐고 1996년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남모르게 공증해 부산대에 기부한 후 동래구 온천동 전셋집 한 칸을 얻어 생활하다 그 해 11월 숙환으로 별세했다. 부산대는 1996년 8월 14일 남안장학기금을 설립해 이듬해인 1997년 제1기 남안장학생 21명에게 1390만원을 전달했다.같은 해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남안 여사의 흉상을 제작해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제1도서관 뜰에 세워 여사의 기일인 11월 5일을 전후해 추모행사를 갖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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