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스무살 때의 첫사랑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반년을 홀로 바라봤고 삼개월가량 서로를 바라봤었다.
그 짧은 기간동안 내 세상은 글자 그대로 온통 핑크빛이었고 그의 손가락하나라도 내게 스치는 순간
나는 가슴떨리는 설렘에 전율했다.
그 애도 나도 철이 없었던 시절이었고 혈기와 청춘을 앞세워 지독하게 서로를 탐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빨리 타버렸던걸까. 웃기게도 그 애는 어느샌가부터 내 가장 절친한 동기와 몰래 만나고 있었고
나는 그렇게 스무살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함께 보냈던 두 사람을 한꺼번에 잃었다. 사랑을 잃은 슬픔,
믿음에 대한 배반, 그리고 실망과 회의 끝에는 자책과 자학마저 따랐다.
반년이 넘도록 다른 남자는 쳐다볼수조차 없었다. 어느 하루도, 그에 대한 생각을 놓아본적이 없었다.
기억 속의 그는 항상 나를 향해 웃고 있었고 함께 하던 날의 향기는 더 짙어져가는 듯 했다.
그가 미칠듯이 그리웠다. 휴대폰에 번호를 눌렀다 지웠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하루에 한 번은 그 애의 미니홈피에 꼭 접속해 근황을 확인했다. 더이상 얼굴 볼 일도,
기회도 없었지만 우연을 바라는 마음으로 무섭게 집착했었다.
일년즈음 지났을 때는 첫사랑을 떠올리면 버릇처럼 욕을 했다.
친구들과 잡담도중 그 애와 있었던 추억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와 닮은 사람, 같이 갔던 장소,
함께 봤던 영화 따위를 떠올리면 느닷없이 멍해졌다. 몇년이 지난 지금 나는 가끔,
아주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서 혹은 내리쬐는 태양볕 아래서 그를 느낀다.
스무살의 그는 나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는 살풋 웃어보이던 그의 천진난만한 얼굴도 흐릿해졌지만
평온함 속에서 그를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첫사랑은, 가끔 앨범을 펼쳐보면
그 추억에 웃음 지을 수 있는 박제 된 기억이다. 그를 잊었다, 잊지 못했다 하는
사실 자체도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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