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근대라는 역사의 열차에 오른 마지막 탑승객이었다. 달리 말해 가장 오랫동안 중세의 질서를 따른 국가 중 하나였다. 천 년의 세월동안 조선에서는 조정과 양반의 성리학 해석에 근거한 정치가 나라를 다스렸다. 유학의 근본기치인 천(天)을 받드는 것이 곧 통치였으며, 다만 천의 실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른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주리론과 주기론의 갈등으로 요약되는 이 대립은 역설적으로 천의 지위를 우주의 근원으로서 결코 의심될 수 없는 확고한 진리로 공고히 자리 잡게 했다. 천의 해석은 오직 한문을 구사할 수 있는 조정과 양반의 권능이었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 그는 조선의 중세적 질서에 구멍을 낸 최초의 인물이다. 최제우는 양반들만을 위한 천에 대항해 ‘한울님’이라는 인격신을 도입했다. 그는 모든 개인이 수양을 통해 신을 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한울님의 뜻은 모두에게 평등하며 이에 관해서는 사농공상의 차별이 없다고 했다. 최제우는 한울님의 뜻을 만백성에게 전하기 위해 순한글체로 <용담유사>를 썼다. 한글을 통해 일반백성이 ‘의식’을 갖고 정치담론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1 1894년 갑오해 동학농민운동은 이러한 백성의 의식이 폭발적으로 구현된 사건이었다.
# 종말론
근대의 출현은 중세와의 단절을 요한다. 발터 벤야민은 이를 ‘정지의 변증법’이라고 표현한다. 벤야민에게 역사의 단절이란 기존의 사회적 질서가 더 이상 상징적으로 존속할 수 없도록 커다란 구멍을 내어버리는 폭력적 사건(Event)의 산물이다. 나아가 벤야민은 그러한 사건을 두고 당당히 ‘신적 폭력’과 동일시, 즉 메시아에 의해 구체제의 폭압이 종말을 고하며 새로운 인류사의 서막이 등장했다고 그 상징성을 오롯이 표방할 때 역사는 진보한다고 주장했다.2 풀어 말하자면 역사의 진보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찾아오는 예고된 무엇이 아니라, 해당 시대의 상징적 구조를 사멸시킬만한 의미를 함축한 폭력적 대사건에게 그에 걸맞은 가치를 부여하고 그 사건을 결절점으로 삼아 능동적으로 시대정신의 상징성을 해체하고 새롭게 구성해 나가는 역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을 단순한 폭동이 아닌 루이 16세의 목을 잘라 중세 질서를 정지시킨 종말론으로 해석할 때에만 근대의 시작을 이해할 수 있듯 말이다.
동학도들은 한울님의 나라가 건설되는 ‘메시아적 순간’을 꿈꿨다. 동학농민운동은 중세와의 단절을 명시적으로 선언, 중세의 종말을 고하는 결절의 순간이었다. 삼정의 문란으로 대표되는 부패사회를 끝장내고 동학의 가치가 천지에 현현하는 혁명을 꿈꾼 것이다. 백성이 시민이 되는 순간, 평민의 정치 참여를 이루려는 순간이었다. 그 염원은 동학혁명이라는 신적 폭력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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