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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에서 보내는 사연 - 도토리소주

부대신문*2011.12.08 13:35조회 수 130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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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동안 부산대 교수로 봉직한 뒤 이제 한국학중앙연구원 파견 연변대 객좌교수로 연길에 와 산다. 내가 묵고 있는 외국인 숙소엔 여러 외국교수들과 외국 유학생들이 있다. 1층 식당은 자연스럽게 외국교수 또는 유학생들과 만날 수 있는 장소다.
  며칠 전부터 옷차림이 조선사람(여기서는 북한을 조선이라 한다) 같기도 한 일행과 옆 자리에서 아침을 먹었다. 나는 북한 언어학자들 몇 명이 연구차 여기 와 있단 말을 이미 들은 바 있다. 어느 날 ‘도토리소주’라 적힌 빈 술병이 식당 식탁에 얹혀 있길래 주인에게 “도토리소주 여기 파느냐”고 물었다. 그때 주인 말이 북한 손님들이 갖고 와 마신 것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내가 “도토리소주 여유가 있으면 한 병 구하면 좋겠다”고 했더니 여유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 “내 갖고 있는 술로 한잔했으면 좋겠는데 어떠냐”고 물었더니 바빠 그럴 틈이 없다는 것이었다.
  북한사람들이 외국에 나올 수 있는 기회는 참으로 적고 특수한 신분이 아니면 가능하지도 않다. 외국(이래야 중국 오는 게 보통이다)에 나갔다 해도 한국사람과 어울릴 수 없다는 것쯤은 나는 잘 안다. 그냥 해본 소리로 한 잔하자는 것이었을 뿐이고 예상했던 답이 돌아왔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한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그래서 어디를 가든 그들은 뭉쳐서 같이 다니는 걸까.
  아침 밥 값은 반찬에 따라 다르지만 10위엔 안팎이다. 그들은 국도 없이 맨 밥으로 아침을 먹고 있었다. 국 값은 1위엔(1위엔은 대략 180원)인데도 국도 없는 아침밥을 먹는 모습이 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오늘 아침에도 내 식탁 너머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밥을 많이 담은 그들의 밥상, 오늘은 다행히 국이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운동장을 도는데 운동을 하면 건강에 좋으니 선생들도 운동 하시라고 했다. “운동 좋지요” 그들의 대답은 수식어가 없이 간단했다. 옆에 같이 밥을 먹던 연변대 교수는 나에게 “그런 말 하지 말라”했다. 이유인즉 몸에 기름기가 없는 사람들보고 운동하라는 말이 맞는 말이냐는 것이었다.
  여기 와서 사귄 외국교수 중에 영어권에서 온 교수가 있어 이 교수와는 자주 한 잔하는 사이인데 이 분에게 들은 이야기다. 이 학교에 유학 온 북한 학생 중 자기에게 영어를 배우는 학생이 있는데 그 학생은 생활에 여유가 있어 자주 여행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민족이란 이름으로 북한사람과 대화하는 일은 그들을 괴롭히는 처사란 것을 알기 때문에 말을 삼가기로 하였다. 다만 도토리소주의 맛이 어떨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유학 온 그 학생들은 김정일 부자의 모습과 흡사한 모습은 아닐까. 아마 나처럼 운동이 필요한 그런 사람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다.


원문출처 : http://weekly.pusan.ac.kr/news/articleView.html?idxno=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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