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줄 알았는데

글쓴이
  • 2016.08.07. 04:46
  • 6993
낮엔 학생 저녁엔 고기집 아르바이트.
먹고 살기 위해 바둥바둥 살던 나에게 찾아온 너
술을 마셔서 그랬던 건지, 부끄러웠는지
'저기요, 저 정말 이상한 사람 아니구요..'
라며 운을 띄우기 시작해서 횡설수설 말을 하던 너에게
말귀를 잘 못 알아 듣는 나는
'네? 뭐 필요하신거 있으세요?' 라며 계속 반문하자 술냄새 가득하게 푸하하, 웃던 너.
'내일 술깨고 다시올께요.' 라며 인사하던 너. 우리의 첫만남.
다음날 퇴근은 몇신지, 기다려도 되는지 묻는 너의 얼굴에 묻어나던 진심. 생각보다 많은 너의 나이와 생각보다 적은 나의 나이.
두번의 영화와 여러번의 만남, 그리고 너의 고백.
망설이는 나에게 확신을 준 너와의 약 16분간의 통화.
그리고 1년 남짓했던 연애의 시작.
니가 동안이고 내가 노안이라 참 다행이야 아저씨- 라며 장난치면 아줌마라고 놀리던 너.
직장인이 대학생 만나도 되는거냐며 친구들에게 욕먹는게 세상에서 제일 기쁜 욕이라며 웃던 아련한 모습.


초라한 당신의 삶에 초대해서 미안하다며, 늘 나를 누구보다 예뻐해줬던 너, 어딜가도 나부터 챙기던 오빠이자 아빠같았던 너. 오빠덕분에 알게된 사람도, 알게된 곳들도 지금은 솔직히 가물가물해.


지하철역 떡볶이집, 새벽 5시까지 하던 고깃집, 정문 토스트집, 온천장 맥주집, 테라스 원, 정문 스타벅스, 시험기간이면 한번에 절대 다 먹지 못할 간식들을 가득 챙겨 중도앞에 서있는 니모습, 예대앞에서 운전이 서툰 학생이 오빠차 접촉사고 낸것, 북문 밥집. 셀 수도 없는 많은 기억들. 나의 대학생활엔 너, 아니 오빠가 참 많더라.


인연이라는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듯, 서로 삶에 지친 모습을 숨길 수 없게 되자 시작됬던 잦은 다툼과 느슨한 연락에 우린 서로에게도 지치기 시작했고, 많이 울고 많이 힘들었지.


많은 대화와 한숨으로 끝이난 우리의 관계에 내가 다치지 않기 위해서 sns, 바뀐 폰번호 등 모든걸 숨겼던 비겁한 내모습에 너는 원망도 했겠지. 근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너를 찾을 것 같았어.


근데, 오늘 우연히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기다리다, 반대편에 서있는 오빠를 봤어.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잘 살고 있는 모습보면 기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나더라. 뒷걸음질 치며 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보다 혹시나 니가 내가 우는 모습을 봤을까봐 그게 더 걱정이였어.



정말로 왜 울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오빠 나 정말 잘 살고있어 많이 여유로워 졌고, 살은 조금 더 쪄서 보기좋아졌고, 이제 병원도 안미루고 꼬박꼬박 가고, 저혈압도 많이 괜찮아졌어. 학기중엔 알바 안해도 될만큼 돈도 모아놨고, 약간 매운음식도 즐길줄 알게되고 술도 조금 마실줄 알게됬어. 밥 먹는 속도는 더 느려졌고, 니가 좋아했던 빵집은 왠지 안가게 되더라. 그리고 아직도 라면은 맛없게 끓여. 그것도 재주인데..

아 맞다 오늘도 친구들이랑 맥주 한잔 할때, 우리가 자주 앉던 자리에 앉았어. 신기하지. 그리고 일층 미용실 점장님이 오빠 이용권 많이 남았는데 왜 안오냐고 데리고 오라더라. 하하 그럴께요, 라고 말은 했는데 차마 못전했네. 이 글을 볼 수는 없겠지만 돈 아까우니까 머리 자르러가.


나도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 앞으로 마주치게 된다면 지금처럼 잘 살고 있는 모습 다시한번 보고싶다. 그땐 안울고 우리 처음 만난 날 니가 웃던거 처럼 환하게 웃어볼께. 너도 꼭 잘살아.
권한이 없습니다.
댓글 30
best 유능한 범부채 16.08.07. 05:06
감동주려쓰신건아니 시겟지만 참 감동적이네요.. 힘내세요
8 0
즐거운 홑왕원추리 16.08.07. 06:23
애틋해
0 0
서운한 마삭줄 16.08.07. 08:42
다시 잘해보세요ㅜㅜ 슬퍼요
0 0
날씬한 백정화 16.08.07. 09:12
저기요. 그거 어딨나요? 그거!
3줄 요약!
0 6
살벌한 참나물 16.08.08. 17:54
날씬한 백정화
ㅉㅉㅉㅉ
0 0
날씬한 백정화 16.08.09. 15:07
살벌한 참나물
0 0
best 피곤한 속털개밀 16.08.07. 10:20
장소가 사람을 힘들게 하는것 같아요. 그 공간들을 떠나면 많이 잊혀질겁니다 힘내요
5 0
유능한 옥수수 16.08.07. 15:17
먼데이키즈-미행
0 0
촉박한 세쿼이아 16.08.07. 20:11
이쁘당
0 0
찌질한 이삭여뀌 16.08.07. 22:06
사개론에서 읽은 글중에 손꼽힐정도로 애틋하고 좋네
4 0
힘좋은 왕원추리 16.08.07. 22:11
슬퍼요
0 0
조용한 갯완두 16.08.07. 23:02
읽다가 예전 여자친구가 생각나서 너무 힘들었네요... 힘내세요. 보란듯이 잘 삽시다
0 0
점잖은 갈대 16.08.08. 02:27
저도 모르게 같이 감정이입 했네요. 슬프네요..
0 0
고상한 물푸레나무 16.08.08. 13:02
공감되고 슬프네요
0 0
초라한 바위떡풀 16.08.08. 17:23
슬퍼요..
0 0
귀여운 다정큼나무 16.08.08. 18:28
서로의 바쁜 삶 지친 모습 다툼 느슨한 연락
사랑하지만 힘들자요 그래서 연락처를 바꾸지요 바꾸지 않으면 다시 연락할것 같아서 왜냐하면 힘들었지만 사랑하니까
오랜만에 보고 울었던 이유 역시 그렇게 힘들었지만 사랑했으니까
지금 조금 여유 있어 지셨으면 다시 사랑하고 괜찮지 않을 까요?
아니면 다른 남자를 만나 서로 좋아하게 되고 사귀고 더 알게 되고 실망하게 되고 서로 다투고 사랑이 조금 식고 힘들고 그걸 다시 반복할 자신이 있으신가요?
잘 생각해보시기 바라요
0 0
센스있는 흰씀바귀 16.08.08. 23:50
부럽다
0 0
멍청한 향나무 16.08.09. 00:27
나도 부럽다
0 0
화려한 노랑어리연꽃 16.08.09. 08:46
감동적이네요..
0 0
해괴한 브룬펠시아 16.08.09. 16:02
결과가안타깝군요..
0 0
다부진 접시꽃 16.08.10. 00:34
눈물이 고이네
0 0
추운 변산바람꽃 16.08.10. 08:28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

0 0
추운 변산바람꽃 16.08.10. 08:36
추운 변산바람꽃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

0 0
글쓴이 글쓴이 16.08.10. 14:47
추운 변산바람꽃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

0 0
냉철한 쑥갓 16.08.11. 08:43
글쓴이
멘탈잡으셈...여긴 동물원이아님..
0 0
글쓴이 글쓴이 16.08.11. 22:22
추운 변산바람꽃
앗 죄송해요 반말하신줄알고 저도 반말로 글을 적엇네요 ㅠㅠㅠㅠㅠ 감사합니다 ㅎㅎㅎ
0 0
건방진 시금치 16.08.11. 17:01
미쳤다..
0 0
글쓴이 글쓴이 16.08.11. 22:07
건방진 시금치
왜용..?
0 0
명랑한 쥐오줌풀 16.08.11. 23:19
이 글을 보니 저두 5년 전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 생각나네요.. 지금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 결혼했지만 너무 아름다웠던 추억이라 제삶의 원동력이 되고있어요. 글 보는데 정말 감정이입되서 뭉클했어요.. 이젠 아름다운 기억이 되겠죠..^^
0 0
푸짐한 봉선화 16.09.03. 04:43
헐... 감동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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