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이란 같은 등급에서 청순하게 예쁘니, 섹시하게 예쁘니의 차이일뿐.
왜 현실을 외면하려 드나.
배우 졍우셩씨(인용해서 미안함)와 필자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필자의 여자친구가 될 여자가 있다고 하자.(사귀기 전)
둘과의 만남이 제로인 상태에서, 공유된 경험이 제로인 상태에서 당연 누구에게 호감이 가겠나?
당연히 말도 할 것 없이 전자이다. 그리고 한번 누군가가 호감이 가고, 누군가는 배제된 상태에서 그 두 남자와 다양한 일상을공유할 때,
당연 처음 호감이 간 남자 쪽을 그렇지 못한 남자가 상황역전하기는 실로 어려운 것이다.
(무엇보다 잘생긴 외모는 계속해서 월세처럼 이미지를 플러스 해줄 것이고, 못생긴 외모(혹은 변변찮은)는 잘해봐야 0, 못하면 매달 원리금 갚아나가는 마이너스인 것이다.)
여자들도 안다.
목욕탕가면 쫄리거나, 우쭐하거나.
나보다 크면 쫄리고 작으면 우쭐~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구와 나를 누구와 누구를 비교하고 산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타고나기를 그리 타고 났는데 어찌하나?
오히려 나의 옆구릿살을, 나의 짤막한 키를, 나의 부실한 아랫도리를 혹은 궁뎅이나 흉부를 ( 물론 필자는 안짤막하고, 또한 안부실하며, 묵직하다.)
다양성이란 참으로 개足같은 변명으로 묻어버리는 것이다.
당장에 바깥에 나가봐라.
예쁜 여자가 대접받고, 잘생긴 남자 주위엔 여자가 늘상 있다.
못생긴 놈 소위 '이빨까야' 그나마 이쁜 여자들이 웃어주고 관심도 주는 것을(진짜 재밌기 때문)
잘생긴 놈은 되도안한 깔깔유머집 수준의 개그만 던져도 손바닥으로 가볍게 어깨 툭치고 리액션 하는 체 하며 어깨 근육 만져보고 감잡는다.
전자와 후자의 관심은 심심한 일상의 재미와 이성적 매력(번식,교미)의 관심으로 서로 다르다.
누구는 연애하고 사랑사랑이니 러블리니 쳐싸대며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을 도배하는데, 누구는 못난 외모로 늘 꽃이나 강아지나 뭐 여튼 되도안한 걸 프사로 붙여두고 거의 관리를 안한다. 사실 할 필요도 없다. 할만한 스토리도 없고, 관심 가져주는 사람도 없기에. 경쟁에서 도태된 열등 종자가 되는 것이다.
못생겼으면 변명말고 열등감을 가져라.
열등감을 가지되 스스로를 욕해라.
욕만 할 것이 아니라 또 그 욕을 응집한 에너지를 자기 계발에 분출해야한다.
일단 잘생겨지고 예뻐지는 것이 우선이다.
모든 것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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