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를 보낸다.

글쓴이
  • 2015.06.08. 23:41
  • 5707

처음 너를 만났던 날이 기억난다.

멘토링을 하던 분이 가시고 네가 오늘부터 하게 되었다며 웃으며 인사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처음 본 날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널 좋아하게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네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날인가 네가 남친이랑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남자친구를 만나도 즐겁지 않고 그러다가 헤어졌다고.

위로했지만 사실 속으로 기뻤다.

속물이라고 욕해도 좋다.

두어번 고백했을 때 너는 나와 사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 나와 만나면 헤어질 것이 두렵다며.

그 말을 들은 뒤로 나는 너에게 연락을 끊어버렸다.

어차피 나와 너의 생각이 다르다면 굳이 만날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지라 많이 보고싶었다.

그래서 네가 연락을 했을 때 많이 기뻤다.

하지만 그 날 내가 너를 만나러 나간 건 우리의 관계를 확실히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는 말을 하러 나간 것이다.

하지만 너를 만난 후에 그 모든 결심들은 사라져버렸다.

자발적 회복이라던가...

그런 비슷한 단어를 들어본 것 같다.

다시 자극을 제시하면 원래의 반응이 나오는 현상...

어쩌면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웃으며 내게 왔고, 나는 다시 너에게 빠져버렸다.

얼마 후 나는 다시 너에게 고백했고, 너는 또다시 나중을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어느 유행가 제목처럼 사랑과 우정사이에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채로 너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에 선정되어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네가 그렇게 하고싶어 하던 일이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렇게 6개월동안 나는 사람이 얼마나 타국의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지 깨달았다.

지구반대편의 나라에 얼마나 사람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가...

그 곳의 날씨, 사건 사고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여름이 되어 너는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시험을 준비하고, 너도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라 별로 만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인가...

우리가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러다가 시작도 못하고 끝나겠다고...

어쩌면 나는 그 때 조금은 '이별'이라는 것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이별은 어느새 우리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너는 나에게 시험은 어찌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떨어졌다고 말하고 며칠 뒤, 너는 나에게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내가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너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이렇게 우리는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많은 것들이 기억난다.

너를 데려주고 1시간이 넘는 시간을 온천천을 따라 걸으면서 학교까지 오던 길에 수없이 바라보던 달과 별들.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네가 점심을 먹자고 해서 하루에 점심을 두 끼씩 먹던 날들.

네가 미국에 가 있던 동안 너에게 쓰던 편지들.

그리고 우리가 같이 함께 보냈던 날들.

이제 너의 모습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쩌면 나는 이제 조금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다.

누가 나에게 다시 이런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누군가를 쳐다만 보아도 좋은 것.

같이 있으면 공기마저 좋아지는 느낌.

네가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게 좋다는 느낌들.


솔직히 말하면 지난 몇 달동안 참 많이 힘들었다.

폐인처럼 살지는 않았지만 휴대폰도 없애고 정말 공부만 한 것 같다.

내가 만약 시험에 붙었다면 네가 떠나지 않았을까...

내가 만약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네가 떠나지 않았을까...

내가 만약...

수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하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해주었기에 이제는 정말 너를 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네가 어디에서 누구와 지내던지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해라.

권한이 없습니다.
댓글 75
끌려다니는 고사리 15.06.08. 23:54
멋지네요 앞으로의 사랑에 좋은 디딤돌이 될거예요 힘내시길..!
0 0
글쓴이 글쓴이 15.06.09. 23:44
끌려다니는 고사리
감사합니다.
0 0
무례한 호랑가시나무 15.06.08. 23:59
해줄수 있는거 모두 해줬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단지 인연이 아니었음을... 인연이란거.. 사링이란거 참 어렵다. 정말로...
0 0
글쓴이 글쓴이 15.06.09. 23:44
무례한 호랑가시나무
어렵네요.
0 0
무례한 호랑가시나무 15.06.09. 00:01
그사람 밉겠지만... 그래도 사랑을 알게해 준 사람이니... 감사한 사림이다. 나도 이젠 미워하는 보단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0 0
글쓴이 글쓴이 15.06.09. 23:44
무례한 호랑가시나무
저랑 비슷하신가봐요.
0 0
무례한 주걱비비추 15.06.09. 00:05
나도 이렇게 정말로 보낼수 있는 날이 오길.
지금은 그런날 자체가 상상이 안되지만.. 꼭 오길
0 0
글쓴이 글쓴이 15.06.09. 23:46
무례한 주걱비비추
그런 날이 올 거예요.
0 0
못생긴 반하 15.06.09. 00:06
멋진사랑을 하셨네요... 감동적인 실화입니다..
0 0
글쓴이 글쓴이 15.06.09. 23:46
못생긴 반하
감사합니다.
0 0
처절한 옥수수 15.06.09. 00:11
ㅜㅜ 공감되는 글이라 더 마음아파요...
0 0
글쓴이 글쓴이 15.06.09. 23:46
처절한 옥수수
이런 사람이 많은 가봐요.
0 0
저렴한 애기현호색 15.06.09. 00:32
지어낸건줄 알았는데 실화 일수도 있단 생각이 드네요

멋지네여
0 0
글쓴이 글쓴이 15.06.09. 23:46
저렴한 애기현호색
이런 이야기를 왜 지어내겠습니까.
0 0
건방진 능소화 15.06.09. 01:02
이런 글 읽어보면 진짜 차라리 사랑을 모르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듬... 가슴아프내요.
0 0
글쓴이 글쓴이 15.06.09. 23:46
건방진 능소화
그래도 또 다음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겠죠.
0 0
센스있는 야광나무 15.06.09. 01:41
정말 멋진 글입니다
0 0
글쓴이 글쓴이 15.06.09. 23:46
센스있는 야광나무
멋진 이야기죠.
0 0
꼴찌 박달나무 15.06.09. 02:15
아시발 눈물 난다..
0 0
글쓴이 글쓴이 15.06.09. 23:47
꼴찌 박달나무
울지 마세요.
0 0
꼴찌 박달나무 15.06.09. 23:47
글쓴이
글쓴이님 정말 대단해요... 정신적으로 초월하셨을듯
0 0
교활한 튤립나무 15.06.09. 02:25
정말 가슴에 와닿네요 어찌보면 저도 그런 상황아닌상황인데
0 0
글쓴이 글쓴이 15.06.09. 23:47
교활한 튤립나무
먼저 경험해 본 사람으로 충고하자면...
본인을 힘들게 하지 마세요.
본인이 좋다면 상관없지만...
저는 정말 좋았거든요.
0 0
교활한 튤립나무 15.06.09. 02:25
상황버섯ㅋ
0 0
글쓴이 글쓴이 15.06.09. 23:48
교활한 튤립나무
상황버섯이요??
0 0
훈훈한 남산제비꽃 15.06.09. 16:38
추천!!
0 0
글쓴이 글쓴이 15.06.09. 23:48
훈훈한 남산제비꽃
추천!!
0 0
귀여운 메밀 15.06.09. 18:02
아 제가 다 먹먹하고 그때 상황을 경험한 느낌이네요ㅠ
0 0
글쓴이 글쓴이 15.06.09. 23:48
귀여운 메밀
지나고보면 좋은 이야기죠.
당시에는 아니었지만.
0 0
따듯한 호박 15.06.09. 20:39
하 샹.... 군대 가기 전 첫사랑 생각난다..갑자기 슬퍼졌네요... 술사러 갑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0 0
글쓴이 글쓴이 15.06.09. 23:48
따듯한 호박
부산이라면 같이 마셔드리고 싶지만... ㅠㅠ
0 0
조용한 갈대 15.06.10. 04:04
와 진짜 성숙한 사고를 하시는거같아요
존경합니다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0. 18:28
조용한 갈대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
0 0
정중한 겹벚나무 15.06.10. 17:27
여친한테 잘해주고싶은 글이다..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0. 18:28
정중한 겹벚나무
잘해주세요.
0 0
절묘한 나도풍란 15.06.10. 23:10
와 글 진자 감동적으로 잘 쓰신다.
그냥 스압이라서 내리려고했는데 읽다보니 빠져들고 가슴 뭉클해지네요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랍니다.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1. 20:43
절묘한 나도풍란
풍란님도 좋은 사람 만나세요.
0 0
기발한 연꽃 15.06.11. 03:53
ㅋㅋ 일년동안 순수하게 옆에있어줬는데 ..ㅎㅎ 떠나갔어요ㅠ저랑 함께한 1년을 뒤로한채.. 한달짼데 사실.아직도 실감이 안나요.. 이제저는.모르는척하는사이로 지내기로 맘먹엇는데.. 저와같네요 다신 이런순수한사랑못할거같아요 저도...ㅎ 20대중반에온 첫사랑이거든요..ㅠ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1. 20:44
기발한 연꽃
처음은 참 좋은 단어죠.
흔적이 남으면 더 이상 새롭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처음을 좋아하나봐요.
0 0
기발한 연꽃 15.06.11. 17:55
점심두끼마저.. 저랑모든게 너무나 비슷 합니다 ㅠ 다시한번읽어보게되네요 대부분이 일치해서..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1. 20:44
기발한 연꽃
사람이 다 비슷한가봐요.
0 0
기발한 연꽃 15.06.13. 20:16
글쓴이
근데 이글.적으셨으면... 아직 못 보낸거 같네요 제가보기엔 ㅎ 충분히이해가요 사랑이뭔지알거같다는 느낌
아직 못잊으신게 맞아요..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4. 00:11
기발한 연꽃
이제 보내기 위해 시작하려는 거죠.
0 0
밝은 자귀나무 15.06.11. 22:41
와.... 진짜 한편의 노래를 들은것 같습니다.... 솔직한 마음이 화면 너머까지 느껴지네요...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2. 00:00
밝은 자귀나무
부끄럽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0 0
아픈 환삼덩굴 15.06.12. 00:16
저도 언제쯤 보낼수있을까요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2. 00:37
아픈 환삼덩굴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겁니다.
0 0
기쁜 분단나무 15.06.13. 00:48
몇년 걸려요?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3. 20:07
기쁜 분단나무
사람마다 다르겠죠.
0 0
해맑은 오미자나무 15.06.13. 12:57
멋있습니다..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3. 20:07
해맑은 오미자나무
당신도 멋진 사람입니다.
0 0
싸늘한 미국쑥부쟁이 15.06.13. 16:44
저도 그런 첫사랑을 하고 짧게 사귀었지만 그게 오히려 독이 되었네요. 아직도 친구로 연락하고 있는데 뭔가 암세포같다랄까.. 왜 끊지를 못할까요 나는 널 친구로 볼 수 없는데 너는 날 친구로 보니까 그게 너무 힘들어요. 완전 같지는 않지만 글쓴님도 많이 힘들었겠어요ㅠㅠ 고생하셨습니다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3. 20:07
싸늘한 미국쑥부쟁이
당신을 힘들게 하지 마세요.
0 0
가벼운 나도밤나무 15.06.13. 17:18
저도 지금 이런 입장에있네요. 그래도 그사람이 우울해있다가도 만나서 재밌게해주면 잠시나마 웃는걸보면 제가 더 행복하네요.. 저도 몇년쯤이면 이런생각을 하겠죠?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3. 20:08
가벼운 나도밤나무
본인이 깨닫는 날이 올 거예요.
0 0
센스있는 라벤더 15.06.13. 19:34
와.... 진심... 지구반대편 일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 수 있는지.. 이 문장 읽을때 개소름 돋았네... 정말 좋은 사랑 하셔서 다행이고 그만큼 더 좋은 인연 만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3. 20:08
센스있는 라벤더
감사합니다.
0 0
피로한 자리공 15.06.13. 20:46
생각하시는 멋지신거같아요
짧은글에 빠져드네여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4. 00:11
피로한 자리공
감사합니다.
0 0
상냥한 제비동자꽃 15.06.13. 22:02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쓴줄알았네요 ....ㅋㅋㅋ 이제는 헛웃음밖에 안나오는 그사람이지만 저한테는 분명 좋은시간들이었습니다..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4. 00:11
상냥한 제비동자꽃
다행이네요.
0 0
바보 산단풍 15.06.14. 14:12
마이피누판 건축학개론이네... 완벽해... 원래 안이루어진 사랑이 가장 완벽한 사랑이예요. 건승!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4. 22:22
바보 산단풍
다음 사람을 만나면 더 잘하라는 하늘의 뜻인가봐요.
0 0
무심한 시클라멘 15.06.14. 15:12
글 정말 잘쓰시네요... 감정이입 지대로.... 멋있는 사랑 하셨네요 힘내요!!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4. 22:22
무심한 시클라멘
감사합니다.
0 0
납작한 도꼬마리 15.06.14. 22:37
그사람이 행복하길 바라지만, 한편으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상상 하면 마음이 아파요... 전 이제 두번째 세번째 사랑은 못할 것 같네요ㅠㅠ 글 잘 읽었습니다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4. 23:45
납작한 도꼬마리
그래도 좋은 사람 만날 거예요.
0 0
화난 히아신스 15.06.14. 23:58
하.. 이런심정 뭔가 복잡하죠
0 0
화난 히아신스 15.06.14. 23:58
하.. 이런심정 뭔가 복잡하죠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5. 18:47
화난 히아신스
그렇죠 ㅎㅎ
0 0
고고한 섬초롱꽃 15.06.16. 01:45
'첫'이라는 단어에 설렘도 있지만 후회도 많네요 아무것도 더이상 새롭지 않은 지금 많이 허탈해요
0 0
고고한 섬초롱꽃 15.06.16. 01:45
'첫'이라는 단어에 설렘도 있지만 후회도 많네요 아무것도 더이상 새롭지 않은 지금 많이 허탈해요
0 0
글쓴이 글쓴이 15.06.16. 18:29
고고한 섬초롱꽃
처음은 참 신비로운 단어죠.
생각만해도 설레니까요.
0 0
살벌한 머루 16.04.13. 01:52
사랑을 해봤던 사람이 좋더라고요..
믿었던 사랑이 끝나 다른 사랑을 시작할 엄두도 못내던 그녀가 님과 사랑이란 걸 하고 싶어한다면 혹은 님이 그녀에게.
님의 감성이라면 알아볼거에요.
다시 그 힘든 걸 하게 하는 사람이구나 행복하다
너와 함께인 순간이 하루가 요즘의 내 삶이 더욱 감사하다

하시는 일, 함께일 연인 모두 님에게 행복이길 바랍니다. 그리고 쓰신 글이 너무 따뜻해서 세 번 읽었어요! 핵부럽
0 0
글쓴이 글쓴이 16.04.26. 21:39
살벌한 머루
예전에 쓴 글인데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답글 쓰신분도 하시는 일 잘되기를 바랄게요.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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