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유권자 가운데 정말 정치에 관심이 있고 주요 후보의 공약을 숙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자세한 통계는 없지만 저는 3할이 채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지방선거든요.
그럼 잘 알지도 못하는 유권자들은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할까요?
크게 분류하자면 추상적인 고정관념(이미지)과 지역주의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 추상적인 고정관념
적폐세력을 청산하자! 부패한 친일파 후손을 단죄하자!
or
저 놈이 집권하면 적화통일된다! 저거 빨갱이다!
# 지역주의
이건 뭐 딱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후보가 동향사람이다, 같은 학교 동문이다 그러면 눈길이 한 번이라도 더 가는 게 사람 심리죠. 거기에 자기 지역 발전을 위해서 좀 더 힘써 줄 것 같다는 느낌도 들 겁니다.
이런 것도 있고, 자기 주변에 특정 후보 지지자가 많이 있으면 정치색이 옅은 무당층은 거기에 쉽게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백지상태인데 주변에서 자꾸 정치색을 주입하면 그렇게 물들어 가잖아요.
여기서 특히 추상적인 고정관념은 지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무효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예전부터 그런 느낌을 받긴 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다시 확인했어요.
문재인 개인에 대해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그것이 실제 판도에 영향을 주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지자들은 그런 것보다는 적폐청산이 우선이었고 또한 의혹이 진짜 의혹이 아니라 의도적 흠집내기라고 받아들여졌죠. 그런 것보단 정권교체를 이뤄내고 박근혜최순실 부역세력을 처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홍준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친박세력을 안고 갔던 것이나 각종 막말, 돼지발정제 논란이 과연 지지자들의 마음을 흔들었을까요? 아니요. 홍 지지자들은 그런 것보단 북한에 퍼주지 않는 정권이 들어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네거티브가 통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이번 선거에서 네거티브는 상대 후보를 흠집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문재인이 아무리 해명을 거듭해도 다른 후보 지지자들에게는 문준용이 부정취업자로 받아들여지고, 홍준표가 아무리 해명을 거듭해도 다른 후보 지지자들에게는 돼지발정제 강간미수범 + 장인을 영감탱이라 부르는 패륜아로 받아들여집니다(여기서 사실관계를 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말하는 바는 일반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입니다).
결국 이번 대선은 정책대결이 아니라 이미지대결이었습니다. 문재인보다 안철수, 홍준표의 이미지가 더 구려서 낙선한 겁니다.
이념이나 정책은 자신의 이미지를 꾸미기 위한 도구고요.
오늘 몇몇 분들이 말씀하시기를 각 후보에 대해 자세히 알고 투표에 임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투표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하셨어요.
유권자들이 정치에 대해 잘 알고 투표하면 물론 좋겠죠. 그치만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거의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 일반 유권자들의 현실 아닙니까? 만약 정말로 이런 사람들을 다 걸러내면 아마 투표율이 30% 이하로 내려갈 겁니다.
당장 주위를 둘러봐요. 어떤 거창한 정치적 취향이 있고 어떤 정책이 마음에 들어서 지지할 후보를 고르는 사람보다는 별 이유 없이(청렴해 보인다, 잘 할 것 같다, 싫어하는 사람 낙선시키고 싶다 등) 고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차기 대권을 준비하려면 정책이나 비전보다는 종합적인 이미지를 고려하여 보다 유리한 위치에 포지셔닝하고 그걸 어필해야 할 것입니다. 후보의 캐릭터성도 중요하고요.
아이돌이 나이가 차면 노래는 차츰 그만두고 연기나 다른 쪽으로 빠져나가듯이... 정치도 하나의 돌파구가 될 지 모릅니다. 폴리페서에 이은 폴리테이너쯤 되겠죠. 이미 레이건이나 슈워제네거 등의 성공사례가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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