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한테 부산대가 어떻다고 하면, 저는 부산대를 지잡대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를 들을 때나, 조별과제에서 다른 학우들한테 피해를 볼 때면 '지잡대 클라스'라고 생각했습니다.
작년 학생총회 때 4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넉터에 모였을 때,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부산대학교'라는 타이틀을 지키려는 이익을 위해 모였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최순실게이트 당시 군대에 있었던 저는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분노했고 학교와 학생들의 행동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지만,
속으로 '과연 반대쪽 진영에서 같은 비리가 일어나도 학생들이 이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여러분은 제 모든 선입견을 완벽하게 깨부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이익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이, 그저 사회 정의를 위해 움직여 주셨고,
진영논리와 정치색에 상관없이, 그저 잘못된 사태에 대해 그 진실을 밝히고자 목소리를 내 주셨습니다.
저는 이번 일에 대해 찬성, 반대표를 던진 분들, 그리고 표를 던지지 않은 분들도 자기 의견을 표현한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반을 넘어 개표가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저는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묻히지 않은 아우성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우리가 한 일은 누군가를 몰아내려는 일도 아니고, 누군가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일도 아닙니다. 단지 일련의 사태에 대해 총학생회 차원에서 이 일을 다뤄도 될지에 대한 의견을 묻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해낸 일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함께 모여 시국에 대해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며,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실현하는 한 걸음입니다.
비록 다른 학교보다 조금 늦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리고 우리가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몰아붙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대학교 학생들은 불의에 맞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이 시대의 지성답게 행동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총학생회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총학생회 여러분들이 투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주신 덕분에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학생총투표를 위해 열심히 외치는 총학생회를 보면서, 그간 제 마음속에 있었던 총학생회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바뀐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은 선입견을 갖고 바라봤던 점 깊이 반성합니다.
그리고 입학한 이래, 부산대학교가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민족효원과 부마항쟁의 후배들이라는 타이틀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순간입니다.
정말 좋아하는 시 중에 김수영의 <풀>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 연을 적어보고 싶습니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