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도서관의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 '책 읽는 대학, 책 읽는 효원인'에 당선된 독후감 수상작 10편을 싣습니다. 원문은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겁기를 원한다. 파악되지 않는 현상 속에 진리가 있다고 믿으며 상대적인 가치 속에서도 불변의 도덕법칙을 추구한다. 이것은 분명 무책임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소피스트적인 단순함, 간단명료함을 궤변으로 치부하고 그 표면적인 가벼움을 싫어한다. 만일 누군가 도덕이 한낱 강압적 교육의 결과이며 정치가들의 체제 유지 전략이라고, 또는 신이란 인간의 허상이며 나약한 인간의 창조물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의 주장을 불편해한다. 스스로가 퇴폐와 파멸의 욕구를 느끼고 데카당을 외치면서도 우리는 그의 가벼움, 유희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이 일회적이며 덧없이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어떤 것도 쉽게 판단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한 번이기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여겨지고 만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웠던 것이 깃털보다 더 가벼운 것이 된다. 비극은 순간의 희극으로 전락한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져본 이라면 그는 곧 이러한 부조리, 비일치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B와 D사이에 갇혀 매순간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해야 하지만 그것조차 가볍다는 생각에 이르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한다. 유한한 존재의 숙명적 비극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고뇌이며 도저히 좁힐 수 없는 간극이다. 우리는 가장 무겁고자 하지만 필연적으로 가벼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를 절망에 빠뜨린다. 그것은 존재가 당면한 가장 치명적이며 피곤한 문제다.
모든 것은 이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차이가 고뇌를 부르고 고뇌가 창조를 낳았으며 창조가 아름다움을 가져왔다. 실제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인간이 가지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모든 것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언어와 실재, 육체와 정신, 가벼움과 무거움, 유한과 무한, 현상과 물 자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그것은 어두운 밤을 거쳐 새로운 아침을 맞을 때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으며 우리는 가장 절망적 어둠속에서만 이 희미한 빛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문제는 존재의 역사를 관통해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의 중심에 놓인다.
나약한 존재에게는 거리의 나무 한 그루, 떨어지는 낙엽 하나가 때로는 큰 사건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빛나고 있는 존재 자체의 경이로움이며 언어로 감당할 수 없는 충만함이다. 그것은 존재가 한계를 느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희미하게, 그리고 점점 더 강렬해지는 존재의 비밀 그 틈을 잡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모든 존재가 가지는 간절한 부름을 듣는 것이다. 이것이 체계 밖의 인간, 테레사의 그것, 니체의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처음엔 아무생각 없이 존재를 긍정했고 어느 순간 그들이 낯설었고 곧이어 그들을 부정했으며 신기하게도 다시 내 안에서 그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래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역시 그래야만 한다.’ 이다.
원문출처 : http://weekly.pusan.ac.kr/news/articleView.html?idxno=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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