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 그대들의 감성에 불을 붙이겠다

우아한 쇠뜨기2016.12.14 22:51조회 수 1557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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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대나무숲
#24138번째포효

오늘 새벽, 사랑했던 너에게서 문자가 왔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난 더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서 그대로 산산조각나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꼬박 일 년 만에 핸드폰 액정에 비친 네 이름 세 글자는 아직도 내 심장을 터질듯이 빨리 뛰게 했다.

너와 나는 수 년간 서로의 제일 친한 친구였고 그 중에서도 일년 가까이를 연인으로 지냈다. 주위 사람이 마음고생 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지 못하는 성격 탓에 별 생각없이 건넸던 내 작은 손길에도 자기는 내가 아니었으면 혼자 그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없었을 거라며 고마워하던 마음이 예뻤고, 언젠가 기댈 곳이 없어 힘들어했던 나를 감싸 안아주던 듬직함이 참 고마웠다. 오지랖 넓은 것도, 사람 좋아하고 외로움 타는 성격도, 좋아하는 음료부터 취미까지 우리는 서로 너무 닮아 있었고 그런 너에게 더 친밀감을 느꼈다. 유학생이었던 나 때문에 너는 잠도 못 자고 새벽에 내게 전화를 걸었고, 여름이 되어 아주 잠깐 동안만 한국에 들어왔을 때에도 입시학원을 다니느라 시간이 없었던 나를 위해 네 스케쥴도 과감히 포기한 채 내가 있는 곳으로 어디든 언제든 달려오곤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에게 왠지 모를 호감을 내비치는 너를.

아니겠지, 아닐거야. 정이 많은 네가 친한 친구인 나를 그만큼 편하게 대하는 것 뿐인데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네가 부담스러워 너를 밀어내려 할수록 너는 내가 열심히 쌓아둔 방파제를 아득히 넘는 파도가 되어 내 마음에 밀려왔다. 우리가 처음 친구가 되었을 땐 내가 너의 버팀목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네가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우리는 고3이 되었고, 밤공기가 시원했던 여름방학의 어느날 밤 어두운 운동장 스탠드에서 너는 내게 고백했다. 나는 아직도 그 밤의 네 떨리는 눈빛을, 촉촉한 음성을, 너와 처음 나눴던 수줍은 키스를 잊지 못한다. 내가 너를 만난 지 4년이 좀 넘었을 즈음, 우리는 그렇게 친구에서 연인이 되었다.

나는 너를 내 마음 다 바쳐 사랑했다. 장거리 연애를 힘들어하는 너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있고 싶어서 전에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아시아 대학 여러 곳에 원서를 넣었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었어도 여태까지 서로에게 든든한 서포터가 되어왔고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해 왔으니까, 남은 유학생활 1년 정도는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잠시, 여름이 끝나고 우리 사이는 급격히 틀어지기 시작했다. 일만 킬로미터가 넘는 둘 사이의 거리, 12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시차, 두 고3의 너무도 다른 하루 일과와 수험 스트레스. 친구였던 시절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들이 어느 새 큰 벽이 되어 우리 앞을 가로막았지만, 수능이 끝나면 나아질 거라 믿었다. 나는 겨울방학에 다시 한국에 가서 너를 볼 생각 하나로 매일을 버텼다.

내가 그 해 겨울에 한국에 돌아갔을 때 너는 이미 어딘가 변해 있었다. 쌀쌀해진 공기처럼 네 마음도 차갑게 식어버린 것만 같았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말처럼, 너는 내 출국을 2주 정도 남겨둔 어느 날 새벽에 내게 네 진심을 털어놓았다. 내가 보고싶을 때 보지 못하는 것도 힘들고, 내가 힘들어할 때 그런 나에게 자기가 당장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게 제일 힘들다며, 사실은 내게 헤어지자 말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너무도 이기적인 네 말에 화가 났지만 너를 절대 잃을 수 없다는 생각이 더 컸기에 어떻게든 널 설득하려 했다. 자신있었다. 너는 내 말이라면 항상 끝까지 들어주고 믿어줬으니까.

다행히도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우리 사이는 전보다 더 돈독해졌다. 너와 난생 처음 커플링도 맞췄고 크리스마스에 데이트도 했다. 너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술을 마셨고 새해를 함께 맞았다. 너와 했던 많은 경험들은 내게 처음이었다. 약 3주간의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고 그 하루하루는 내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나날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꿈처럼 달콤한 시간이었다.

출국하기 하루 전날 너는 나를 마주한 채 숨죽여 울었다. 우는 너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아려서, 나는 네 두 손을 꼭 붙잡고 괜찮을 거라고 되뇌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울면 너도 무너질까 봐, 나는 우는 너를 바라보며 애써 울음을 삼켰다. 5달만 더 참으면 돼, 우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고 그날 밤 우리는 우는 대신에 웃으면서 헤어졌다. 교대 앞 사거리에서 택시 차창 너머로 멀어지는 너. 그게 내가 본 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너와 연락이 안 되는 시간이 늘어났고 나는 점점 더 외로워져 갔다. 그러나 나의 외로움은 너에 대한 집착이 되어 너를 더 힘들게만 할 뿐이었다. 그 때의 내게 남은 거라곤 너 하나 뿐이었으니까. 괘씸한 것 보다 불안함이 더 컸다. 초조해진 나는 너에게 자꾸만 보채기 시작했다. 더 좋아해 줘, 날 더 아껴 줘. 네가 날 사랑하는 걸 내가 더 잘 느낄 수 있게 지금보다 더 노력해 줘. 너도 분명 나처럼 힘들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이기적이고 미성숙한 칭얼거림일 뿐이었다.

내가 너에게 울면서 전화하는 날이 늘어갔고, 그 전화를 받을 때 마다 네 목소리는 점점 더 차가워져만 갔다. 나는 무서웠다. 널 잃게 될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네가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내 집착이 커질수록 너는 더 내게서 멀어져갔고,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네가 먼저 연락을 끊었고, 나는 너의 선택을 받아들였다. 가끔 네가 술에 취해 연락할 때도 나는 최소한의 반응만 하고 네 연락을 무시했다. 그게 서로를 위해, 더 정확히는 나를 위해 더 나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내 기억속의 널 지우지도 추억으로 남기지도 못하고, 너와 나눈 약속들을 맺지도 끊지도 못한 채 엉켜버린 시간 속을 헤매이고만 있었다. 새내기가 되어 너를 많이 닮은 동기를 만났을 땐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네 생각이 나서 혼자 한숨짓곤 했다. 네게 연락이라도 한번 해 볼까, 하고 수십번은 더 망설였지만 너는 날 완전히 잊었을 것만 같았고 나는 너에게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으로 남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내 관두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와중에도 너는 여전히 내 맘속 깊은 곳에 박힌 가시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오늘 새벽, 사랑했던 너에게서 문자가 왔다. 내가 애닳도록 그렸던 너에게서 연락이 왔다. 두근대는 마음에 네가 보냈다는 것만 확인하고 한참을 가슴이 떨려 메세지를 읽을 수가 없었다. 답장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문자를 보내면 혹시라도 네가 답장을 하지 않을까 봐 급히 전화를 걸었다.

십수 개월만에 들은 너의 목소리는 내게 익숙했던 밝고 활기찬 목소리보다 많이 가라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궁금한 것도, 하고싶은 말도 많았지만 감정이 앞선 탓에 말을 좀처럼 이을 수가 없었고 간간이 오가는 짧은 문장들 사이에는 긴 침묵만 이어졌다.

사실은 나도 많이 미안하다고, 먼저 연락하고 사과해줘서 고맙다고, 예쁘고 따뜻한 말을 해 주고 싶었는데 그만 심술보가 터져서 냉기가 잔뜩 서린 미운 말 밖에 해주지 못했다. 나랑 꼭 닮은 너는 어쩜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나와 비슷한지. 너와 내가 서로 때문에 아파한 이유는 네 잘못만이 아닌데 굳이 지금 와서까지 내게 사과하고, 내 행복을 빌어주기까지 하는 네 모습에 나는 대체 무엇이 너와 나를 이 지경까지 몰아넣었나 싶어 조금 허탈한 한편 무서웠다. 네가 이랬던 적은 처음이 아니고 나는 네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끝냈는지 알고 있으니까. 내가 이제와서 너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더라도 아마도 전과 비슷한 이유로 상처받게 될 테니까. 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판단이 서질 않아서 오늘은 너에게 내 솔직한 마음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저 술기운에 감정이 앞서서 연락했겠거니 하고 넘기려 했는데, 보고 싶었다는 너의 단 한 마디에 마음이 요동치는 걸 보니 역시 너를 아직까지 못 잊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아 착잡하다.

너와 나는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긋난 걸까, 그리고 대체 왜 지금까지도 이렇게나 아픈 걸까. 마음속에 남아있는 감정들을 모두 쏟아내고 아무것도 남김없이 비울 수 있다면 좀 나을 것 같은데, 나는 아직 그게 어려워서 또 너에게 닿지 못할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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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14 22:55
    #24115번째포효

    나는 육 년 짝사랑을 했다. 딱히 대단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나는 그 아이를 육 년 좋아했던 거고, 그 아이는 육 년 동안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거였다. 나는 육 년을 기다렸는데, 정작 걔는 플레이 버튼조차 누르지 않았던 거였다.

    아, 우리가 처음 만난 계기는 단순했다. 같은 학교였고, 우리 집 사 층 위에는 걔가 살았다. 학교 갈 때 자주 만났고, 워낙 말이 많고 친구를 좋아했던 나는 말을 걸었고. 단지 그렇게 친해진 거였는데, 어려서 뭘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그냥 좋아졌다. 언제부턴가 숨을 쉬던 것처럼. 그냥 정말 그렇게 시작된 거였다. 나는 걔를 만나는 게 그냥 친구로서 좋은 것인 줄로만 알았다. 비가 올 때, 걔가 우산을 내밀던 손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나는 몰랐다. 단지 내가 순간의 비를 피할 수 있어서 좋은 거로구나, 그렇게만 생각했다. 보고 싶은 감정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동성 친구들만큼 걔를 아끼는 거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같이 우산을 쓰고 갈 때, 사귀냐고 놀리던 친구들을 타박하면서도 얼굴이 빨개지던 이유를 나는 몰랐다. 참 어리고, 순진했다.

    좋아하는 걸 깨닫게 된 계기는 참 어이없고도 단순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것 같다며 고민을 털어놓은 아는 동창에게, "자꾸 보고 싶어?" "다른 여자들이랑 있으면 속상해?"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있어?" 하는 말 따위를 늘어놓던 도중,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도 사랑에 빠진 것일 수도 있겠다고.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은 현실이 됐고, 나는 곧 인정했다. 어쨌거나, 걔는 나한테 정말 특별한 사람이었으니까. 사랑에 빠진 증상은 그렇다. 과연 내가 이 사람에게 무얼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그 사람이 좋아한다던 책을 괜히 사 보고, 혀가 절단될 정도로 달달한 말을 해 주고 싶은 것. 언젠가 숨이 막힐 것만 같고, 과연 내가 이 사람 없이 살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되며, 마음 속에서 괜히 실험을 시도하는 것. 당신을 저울질함으로써 내가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드는 것.

    나는 학교에 갈 때마다 걔를 기다렸다. 나는 팔 층, 걔는 십이 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한참을 서서 십이 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나는 종종 지각을 했다. 맨날 만나는 걸 보니까 정말 소울메이트 같다며, 알고 보니까 우리 텔레파시가 통하는 사람 아니냐며 맑게 웃는 너를 보며 속이 쓰렸다. 그 텔레파시, 실은 내가 만드는 거야.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겨우 삼키며 웃었다. 그러게, 우리 정말 잘 통한다. 알고 보니까 너, 일부러 내가 나오는 시각에 맞춰 나오는 건 아냐? 하며 너스레를 떨었던 때. 말하고 싶었다. 머리도 못 말리고 나온다며 타박하던 너에게 정말 외치고 싶었다. 있지, 실은. 혹시 네가 빨리 나올 것만 같아서 머리만 감은 채 엘리베이터 앞에서 삼십 분을 서 있었어. 있지, 실은. 내가 널 참 좋아해.

    어린 나는 잘 우는 편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눈물부터 삼켜야 했지만, 아득바득 참아 절대 감정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했다.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래야 한다고 했다. 그런 내가 네 앞에서 딱 한 번 운 날이 있다. 모두의 앞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내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던, 그런 바늘 같은 날에. 생각해 보면 재수가 참 없었던 날이라고만 했으면 될 텐데, 사춘기 감성으로는 도저히 그러지 못했다. 네가 보는 앞에서 펑펑 울었고, 눈물이 뺨에서 얼어서 많이 추웠다. 너는 당황한 표정으로 손수건을 건네 줬고, 거기에서는 익숙한 섬유유연제 향이 났다. 조만간 섬유유연제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밀인데, 사실 그 손수건은 방에 걸어 놓았다. 향은 다 빠졌지만 그 곰돌이가 너무 귀엽다는 핑계로, 버리기 애매하다는 핑계로, 소품이라는 핑계로. 집에 도착하니까 너에게 한 개의 카톡이 왔었다. 유튜브 링크였는데, 커피소년의 '내가 네 편이 되어 줄게' 라는 노래였는데, 제목만 보고도 눈물이 흘러서 답장을 하지 못했다. 두 개의 카톡이 더 왔다. "울고 있어?" "미안해." 왜 걔가 미안한지 난 아직도 모른다. 단지 두 마디였는데, 펑펑 울었다. 단지 두 마디였는데, 마음에 꽂혔다.

    나는 학교에서 인기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가끔 고백도 종종 받았는데, 그럴 마음이 없다고 거절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도 했는데,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는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걔한테 고백을 두 번 정도 했는데, 한 번은 장난을 가장해서, 한 번은 진지하게 한 거였다. 둘 다 반응이 몹시 좋지 않았다. 표정이 굳으면서 거짓말은 나쁜 거라고 했다. 내가 장난이라고 어색하게 웃자, 걔는 그제서야 표정을 풀었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인데, 없어질까 봐 놀랐다는 말을 했다. 다시는 그런 장난을 하지 말라고 했다. 미안해, 장난이 아니었어. 미안해, 사실은 내가 널 좋아했던 거였어. 너같이 좋은 사람이 왜 나를 만나 주겠냐고 웃으면서 건넨 말에도 나는 웃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왜 그래, 네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모르는 거야? 웃으면서 말하고 싶었는데. 난 그렇게 넉살이 좋은 사람인 아닌가 보다.

    나는 낮은 목소리를 좋아한다. 땅으로 곤두박질쳐서 언젠가는 맨틀에 도착할 것도 같은 그런 목소리. 그런 목소리를 너무 좋아한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걔는 내가 좋아할 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가끔 손이 시리다고 투정을 부리면 손을 잡아 줬고, 덥다고 투정을 부리면 손으로 부채질을 해 줬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대로 평생을 살 수만 있다면 나는 차라리 독신으로 살고 싶었다.

    그런 너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

    포기하고 싶었는데 놓아지지를 않았다. 모두 다 무능한 내 탓이었다. 단지 걔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내가 잘못이었다. 나는 너를 만난 후 두 번째로 울었다. 눈가가 아플 정도로 울었는데, 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뭐 하냐." 아무 대답 없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싶더니 곧바로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야, 울어?"그렇다고 대답하자 당황한 듯 쏟아지는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왜 울어. 누가 그랬어? 무슨 일 생긴 거야? 야. 너 설마 아파?" 평소의 너와 정말 달랐다. 너를 좋아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어 버렸다. 속상했다.

    그리고 나는 너와 연락을 전혀 하지 않았다. 연락을 하면 내가 죽어 버릴 것 같았다. 일 년 정도였다. 헤어졌다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고, 하루에도 카톡이 열 개 정도는 왔는데, 내가 다 씹어 버렸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마주치면 통화를 하는 척했다. 지금 와서 말하는 건데, 그냥 연락할 걸 그랬다. 피하는 게 답이 아니었다는 걸 이제 알았고, 걔는 이사를 가 버렸다. 죽었다는 소문도 돌았는데, 그럴 리가 없어서 그냥 무시해 버렸다. 사실 이사를 갔다는 그 날부터는 카톡이 한 통도 안 왔다. 그 빈 집에는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적응이 안 된다. 걔의 친구들, 선생님, 그리고 가장 친했던 나마저 행방을 알지 못했다. 이사를 갔다는 걸 안 다음 카톡을 주욱 읽었다. 안 읽어? 왜 그래. 무슨 일 있는 거야? 그 세 문장을 읽고 난 다음 나는 카톡을 탈퇴했다. 사실은 333+가 될 정도로 많았던 문장들인데, 더 읽을 엄두가 안 났다. 세 번째 울음이었고, 보고 싶었다.

    지금은 전혀 연락이 되지를 않는다. 네가 없어도 사계는 여전히 흐른다. 네가 없어도 나는 숨은 쉰다. 어쩌면 아직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쓰는데 옛날 생각이 나서 숨죽여 울었다. 언제부턴가 숨을 쉬던 것처럼. 그냥 정말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 이렇게 길 줄은 몰랐는데.

    보고 싶다.

    찾고 싶다.

    이 말밖에 나오지가 않는데,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가끔 십이 층에 사는 사람과 마주친다. 옛날의 너와 비슷한 소년, 나와 비슷한 소녀가 사는 듯했다. 이제는 이름과 생일, 그리고 간단한 정보만 기억나는 너지만, 아직도 손수건의 향기가 생생해서 그들을 볼 때마다 걔가 생각난다.

    안녕, 잘 지내? 혼자 둬서 너무 미안해. 있지, 그 손수건 아직도 나한테 있어. 돌려주라고 말을 안 하길래 너무 좋아서 내 방 한 켠에 뒀어. 받으러 와 주면 안 될까. 그 구실로 내 얼굴, 한 번만 더 봐 주면 안 될까. 그러면 안 되는 걸까.

    네게 전해 주고 싶었던 소식들이 참 많았어.

    피해서 너무 미안해.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어리석었던 사람이라 너무 미안해. 사실은 말야, 너를 몇 번이고 찢고 싶었어. 다 내팽겨치고 확 떠나고 싶었어.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아직도 널 사랑한다는 것, 고작 그게 전부였어. 할 수만 있다면 매일 죽어 버리고 싶어서, 탈주하고 싶어서, 널 잊고 싶어서, 내가 행복해지는 걸 보고 싶어서. 그래서 그랬어. 미안해.

    육 년 동안 네게 익사하게 해 줘서 고마웠어. 네가 있어서 사람에게서 헤엄치는 방법을 알게 됐어. 덕분에, 쓰나미같이 밀려오는 감정에도 떠밀려가지 않을 수 있게 됐어.

    잘 지내? 너는 지금, 안녕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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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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