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아랫글분께(과거 서울대 대숲글 펌)

난쟁이 흰여로2017.05.15 11:46조회 수 3516추천 수 37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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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배운 것들 모두 다 잊어버리십시오."

경제학부 유명한 노교수의 마지막 강의였다. 시험기간도 끝났지만 책도 여러 권 쓰고 명망 높으신 교수님의 마지막 강의라 모두들 참석해 듣고 있었다. 그런 그가 마지막 한마디로 경제학으로부터 배운 것을 모두 잊어버리라고 한 것이다.

"힘든 과정을 거쳐 경제학이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학문을 열심히 배운 그대들의 노력을 존중합니다. 잘은 모르겠으나 스스로 자랑스러워 해도 될만큼 훌륭한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이 늙은이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두 잊으십시오. 모든 경제학 이론은 잊으셔야 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명인 칸트는, 마지막 비판서인 <판단력 비판>을 통해, 일생을 통해 쌓아온 그의 이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엊그제 말한 사실의 참, 거짓 여부에도 쩔쩔 매는 우리를 생각해 본다면, 일생을 바쳐온 학문이 부정받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가뿐 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물론 경제학은 분명 세상을 이해하는 좋은 도구입니다. 그러나 결코 유일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 지극히도 가난했습니다. 그 때 대기업과 경제학 대학원을 동시에 합격했지요. 경제학 원리를 통해 기회비용을 고려한다면 나는 대기업을 선택했어야 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구멍가게를 하셨고 저희 집은 가난한 편이었거든요. 대학 공부를 마친 것만도 감사해야 했죠. 석사라니요. 가당치도 않았죠. 하지만 저는 4년 동안 착실히 배운 경제학의 원리를 모두 무시하고, 그냥 대학원의 길을 택했습니다. 경제학이 궁금했고 공부하고 싶었거든요. 그 결과, 비록 돈을 조금 덜 벌고, 큰 권력을 갖지는 못 했지만 교수라는 자리를 얻어 여러분들 앞에서 이렇게 강의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행복하냐구요? 행복합니다. 백프로 만족하지는 못 하지만, (그런 삶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나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눈빛 초롱초롱한 여러분께 가르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내 삶은 이 정도면 괜찮았습니다."

학점 하나에 목숨 걸고, 동아리랴 알바랴 대외 활동이랴 분주했던 학생들은, 어느새 연말 연예대상의 대상 발표를 기다리듯 숙연해졌다.

노교수는 쓴 블랙커피 한 잔을 하고 나서, 우리를 찬찬히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것은, 절대 경제학적 선택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떤 여성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기회비용이 얼마나 크든 상관없이 그 여성을 선택하세요. 학점 따위는 신경쓰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미치도록 소설이 쓰고 싶다면, 계획 조금 빗나가는 것은 그냥 넘기십시오. 그 시간에 꼭 쓰고 싶은 이야기를 완성시키세요. 여러분의 삶을 진정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완전히 탈-경제학적인 선택입니다. 우둔해지세요. 마음가는대로 행동하세요. 잠에 들다가도 떠올리면 괜스레 좋아지는 것, 그것을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4년동안 경제학을 배웠고, 그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내 삶에는 무언가 부족했다. 영혼없이 육체만 살아간다고 하면 조금은 맞을 것이다. 그런 나는 경제학에 일생을 바친 노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통해 마침내 깨달았다.

사랑하고 싶을 때면 사랑하자. 
그것이 경제학적으로 아무리 비효율적이고 기회비용이 큰 행동이라도 상관없다. 
대가는 상관없다.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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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윗글은 결과적으로 교수로써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일 수 있습니다. 본인이 선택했지만 잘 안되었을 경우도 감안해야겠죠.

    수학과로 전과를 할지, 재수를 할지 고민하는것 같던데 저는 수학이 정말 좋고 잠들때까지 생각나는 정도면 재수를해서 서울대나 카이스트로 가는것을 추천합니다. 그러면 대학원 이후의 학자를 위한 삶을 살기에 적어도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은 할 수 있겠죠. 이건 대한민국 사회구조상 어느정도 인정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좋아하는건 아니라면, 기회비용을 따져봤을때 저는 기계과에 남아있는걸 추천드려요. (기계과 학생은 아닙니다.) 수학에 대한 열정이 어느정도냐에 따라, 학자로의 길을 선택할지 아니면 취미의 영역으로 남겨둘지를 선택하시길 바래요.
  • 그것도 재능이 뒷받침 돼야 그럴 수 있는거~
    그런 거 없으면 경제학적 원리대로 사는게 맞지요
  • @포근한 배초향
    재능의 유무도 중요한게 맞죠. 다만, 아랫글에서 고등학교때 선생님이 서연고 수학과를 추천하셨고 수능수학도 마킹실수로 하나 틀렸다고 하셨더라고요. 그걸 보고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해서 얘기드렸습니다.
  • 여자만 사랑받아야하나 저교수 여혐하는거아닌가? 완전 편협한 사고방식이네 ㅋㅋ;;
  • 여자만 사랑받아야하나 저교수 여혐하는거아닌가? 완전 편협한 사고방식이네 ㅋㅋ;;
  • @흐뭇한 궁궁이
    그만 좀 하세요.. 진짜 화딱지 나네요;;어휴;;;;;
  • 기회비용 얘기할때 항상 사랑 얘기나오는데
    결국 사랑의 효용이 기회비용보다 크니까 사랑을 선택하는거 아니겠음? 가벼운 사랑은 기회비용이 더 크니까 쉽게 관두는거고. 결국 기회비용보다는 작지만 사랑을 선택하라는거도 말이 안됨. 그 사랑의 효용이 그사람에겐 더 큰거지
  • 교수님 스웩있으시네 잘보고 갑니다
  • 공대라서 비공감이네요. 비추드립니다.
  • 이런 마음가짐으로 굴직굴직한 선택들은 한다면 문제 있겠지만
    살면서 가슴속에 이런 스웩정도 품고사는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잘읽었습니다 ~ 저는 추천 누르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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